IV. 한 도시에 여러 가정 교회가 있었는가?
가정 교회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한 도시에 여러 가정 교회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신약 시대에는 지금처럼 한 도시에 여러 교회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한 도시에는 교회가 하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즉, 로마에는 로마 교회 하나밖에 없었고 골로새에서는 골로새 교회가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그 밑에는 가정이 중심이 된 수많은 교회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27) 또 다른 곳에서 이렇게 말한다. “각 도시마다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 도시에 교회가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에베소에는 에베소 교회 하나, 로마에는 로마 교회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도시마다 집집에서 모이는 수많은 가정교회가 있었습니다.”28)
그러면 과연 신약 시대에는 한 도시에 교회가 하나밖에 없었고 그 안에 수많은 ‘가정 교회’가 있었는가? 아니면 한 도시에 여러 ‘교회들’이 있었는가? 아니면 한 도시에 ‘하나의 교회’가 있고 그 안에 여러 개의 ‘가정 모임’이 있었는가? 이 문제는 쉽사리 답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각각의 경우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1. 예루살렘 교회
예루살렘 교회는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성도들이 ‘성전’에서 모이고 또 ‘집’에서도 모였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었다.”(행 2:46) 5장 42절에서도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것은 예루살렘 교회가 수많은 가정 교회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원문을 조심스럽게 살펴보아야 한다. 2장 46절에서 ‘집에서(kat! oi\kon)’라고 하는 것은 ‘성전에서(ejn tw'/ iJerw'/)’와 대비되고 있다.29) 따라서 누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초대 교회 성도들은 날마다 한 마음으로 ‘성전에’ 모였을 뿐만 아니라 또한 ‘집에서도’ 순전한 마음으로 사랑의 교제를 나누었다는 것이다. 즉, 그들은 은혜와 기쁨이 충만하여서 ‘성전’에 있을 때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순전한 마음으로 교제하고 형제 사랑을 실천하였다는 것이다. 그들이 성도의 집에서 소그룹 모임을 가졌다거나 가정 교회 모임을 가졌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그들은 각자 집에서 가족끼리 모였을 수도 있고, 몇몇 사람이 같이 모였을 수도 있다. 그리고 ‘모였다’는 것이 꼭 무슨 공식적인 순서를 가졌다는 뜻이 아니라 그냥 모여서 함께 식사를 나누고 교제했다는 뜻이다. 여기서 초점은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었다는 데 있다. 이것은 성령의 역사의 결과였다. 따라서 초대 교회에 역사한 성령의 능력은 성전에서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는 것이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다. 칼빈도 “집에서 떡을 떼고”에 대한 주석에서 같은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누가가 말하는 것은 그들은 참 경건의 표시를 단지 공적으로만 보인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사적 생활의 진행과 분위기도 동일한 것이었다는 것이다.”30)
어떤 사람들은 사도행전 2장 42절과 46절의 “떡을 뗀다”31)는 표현에 대해 ‘성찬’32) 또는 ‘애찬’33)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은 성도의 가정에서 ‘성찬식’을 거행하였고, 따라서 ‘가정 교회’를 이루고 있었다고 주장할 수 있다. 물론 성경에서 ‘떡을 떼다’는 표현이 성찬 또는 애찬의 의미로 사용된 곳들도 있지만(행 20:7, 고전 10:16), 이 구절의 표현을 성찬으로 이해하는 것은 문맥에 맞지 않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42절에서 ‘떡을 떼다’는 말은 ‘교제하며’ 다음에 나오며 또한 접속사 ‘카이(kaiv)’가 없이 바로 연결되어 있다. 즉,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다음에는 ‘카이’가 나오고 ‘떡을 떼며’ 다음에도 ‘카이’가 나오지만, ‘서로 교제하며’와 ‘떡을 떼며’ 사이에는 ‘카이’가 없다. 그래서 ‘교제 하는 것’과 ‘떡을 떼는 것’은 하나의 개념으로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떡을 떼는 것’은 ‘교제하는 것’ 다음에 나오는 새로운 항목으로 볼 것이 아니라 ‘교제하는 것’에 속한 항목으로서 교제의 구체적 방법을 말한다고 보아야 한다.34) 즉,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은 ‘떡을 떼는 것’ 곧 함께 식사하는 것을 통해 ‘교제’를 실천했던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 ‘떡을 떼는 것’은 성도들이 교제를 실천하는 방편으로서 ‘함께 먹는 것’을 의미하며 ‘성찬’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35)
46절의 “날마다 ...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도 마찬가지로 이해된다. 여기에 ‘서로 교제하며’가 따로 언급되지 않은 이유는 ‘떡을 떼며 음식을 먹는 것’이 바로 교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누가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초점은 초대 교회 성도들은 성전에서나 집에서나 어디에서든지 다 ‘한 마음’이 되었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교제하였다는 것이다. 칼빈도 이 점을 잘 보았다. “어떤 사람들은 이 본문에서 떡을 떼는 것이 성찬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나의 견해로는 누가의 의미와는 매우 다른 것으로 생각된다. 그는 우리에게 그들은 자주 함께 먹었으며 또 검소하게 함께 먹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36)
따라서 우리는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공적인 모임을 성전에서 가졌으며, 집에서는 성도간의 교제와 기도와 전도를 하였다고 본다. 성도의 가정에서의 모임은 가족간의 식사였거나 또는 이웃들과 함께 하는 공동 식사였다고 볼 수 있다. 후자의 경우, 이것은 오늘날의 구역 모임이거나 비공식적인 교제 모임 또는 사랑방 모임에 가까운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이 사실에 대해 좀 다른 각도에서 접근해 볼 수 있다. 만일 예루살렘 교회가 각각의 독립된 가정 교회들로 구성되어 있었다면, 예루살렘 전체 교회에 대해 ‘복수’가 사용되었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왜냐하면 신약 성경은 ‘지역 교회’에 대해 사용될 때 하나 이상의 여러 교회를 가리킬 때에는 ‘교회’라는 단어가 항상 ‘복수’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갈 1:2, 고전 16:1), ‘아시아의 교회들’(고전 16:19), ‘마게도냐 교회들’(고후 8:1), ‘유대의 교회들’(갈 1:22)에서처럼 여러 교회를 가리킬 때에는 복수로 사용된다.37) 그러나 사도행전은 예루살렘 교회에 대해 말할 때 항상 단수로 말한다.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행 5:11),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일어나서 ...”(행 8:1),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 새”(행 8:3),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행 11:22), “그 때에 헤롯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행 12:1),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혀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행 12:5),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들과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행 15:4). 이처럼 예루살렘 교회에 대해 말할 때에는 항상 ‘단수’가 사용되고 있다. 이 사실은 예루살렘 교회가 하나의 단일한 교회였음을 시사한다.
2. 로마 교회
홍인규 교수는 도시 로마에 적어도 세 개의 가정 교회들이 있었다고 본다. 첫째는 브리스가와 아굴라의 집에서 모이는 가정 교회이고(롬 16:3,5), 둘째는 아순그리도와 블레곤와 허메와 바드로바와 허마와 그리고 그들과 함께 있는 형제들의 교회이고(롬 16:14), 세 번째는 빌롤로고와 율리아와 네레오와 그 자매와 올름바와 그리고 그들과 함께 있는 성도의 교회이다(롬 16:15; cf. 16:5,10).38)
조병수 교수도 “로마 교회 안에는 여러 개의 작은 교회들이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39)고 하면서, 그 증거로 다음 다섯 가지를 든다. 1) 브리스가와 아굴라의 가정(롬 16:5); 2) 아리스도불로의 권속(롬 16:10); 3) 나깃수의 권속 중 주 안에 있는 자들(롬 16:11); 4) 아순그리도와 블레곤과 허메와 바드로바와 허마와 저희와 함께 있는 형제들(롬 16:14); 5) 빌롤로고와 율리아와 또 네레오와 그 자매와 올름바와 저희와 함께 있는 모든 성도(롬 16:15).40) 이러한 사실에서 조병수 교수는 로마에는 여러 가정 교회 지도자들이 있었으며, 이들은 자신의 가족을 중심으로 ‘가족 교회(Family Church)’를 이루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가족 교회에 방문자들과 손님들이 가담하여 ‘가정 교회(House Church)’가 되었으며, 이 가족 교회들 또는 가정 교회들이 연합하여 하나의 ‘지역 교회’를 이루었다고 본다.41)
이러한 주장에 대해 우리는 조심스럽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로마서에서 바울은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교회’ 또는 ‘교회들’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라고 부르고 있을 따름이다(롬 1:7). 따라서 이 표현만으로는 로마에 하나의 교회가 있었는지 여러 개의 교회들이 있었는지 알 수 없다. 칼빈은 로마서 16:5의 ‘그들(브리스가와 아굴라)의 집에 모이는 교회’라는 표현에 대해 그들의 ‘가족’을 가리킨다고 본다. 바울은 그들의 가족을 ‘교회’라고 부름으로써 그들에 대해 커다란 존경을 표하고 있다고 말한다.42)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교회’라는 표현은 신약에서 그런 개인적인 가정에 대해 사용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43)
그렇다면 남은 가능성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브리스가와 아굴라의 집에 로마의 모든 성도들이 다 모였다고 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들의 집에 로마의 성도들 중 일부가 모였다고 보는 것이다. 이 중에서 첫 번째 것은 로마 시의 크기로 보아 가능성이 커 보이지 않는다. 로마에 있는 모든 성도들이 한 집에 다 모이는 것은 거리상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44) 그렇다면 로마에는 브리스가와 아굴라의 집에 모이는 교회 외에도 몇 개의 가정 교회들이 더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점에 있어서는 개혁주의 주석가들의 견해도 다르지 않은 것 같다.45) 물론 로마서 16장 14절의 ‘저희와 함께 있는 형제들(tou;" su;n aujtoi'" ajdelfouv")’이 ‘교회’를 뜻하는지 그냥 말 그대로 그들과 함께 있는 ‘형제들’을 뜻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리고 15절의 ‘저희와 함께 있는 모든 성도(tou;" su;n aujtoi'" pavnta" aJgivou")’란 표현도 꼭 ‘교회’를 뜻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그들과 함께 지내고 있는 ‘성도들’을 뜻하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우리는 로마 교회에 대해 더 이상의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실상을 알기 어렵다고 말하는 것이 정직한 태도가 될 것이다.
3. 고린도 교회
어떤 사람들은 고린도 교회에 대해서도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다. 홍인규 교수는 고린도에도 여러 가정 교회들이 있었다고 본다. 곧, 아굴라와 브리스가의 집(행 18:1-3), 디도 유스도의 집(행 18:7), 아볼로가 머문 집(행 18:27-28), 가이오의 집(롬 16:23, 고전 1:14), 스데바나의 집(고전 1:16, 16:15-16), 그리고 에라스도의 집(롬 16:23).1) 이처럼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는 곳이면 거기에 ‘가정 교회’가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이 점은 조병수 교수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는 가이오가 로마서에서 ‘온 교회의 식주인’(롬 16:23)으로 소개된 사실에서, 가이오의 집이 가정 교회로 사용되었지만 때때로 전체 교회의 회집 장소로 제공되었다고 본다. “만일에 이런 추측이 옳다면 고린도에는 하나의 지역 교회와 여러 가정 교회들이 병존했으며 다양한 회집 형태가 있었다고 결론을 내리게 된다.”2) 여기서 우선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조병수 교수가 주장하는 견해는 순전히 ‘추측’에 근거해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고린도에 여러 개의 가정 교회들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경우에 다 마찬가지다. 오늘날 소위 ‘가정 교회’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대부분 ‘추측’에 근거해 있으며 확실한 ‘증거’가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들의 이러한 ‘추측’이 타당한가 하는 것은 여전히 의문이며 나중에 다시 논의할 것이다. 조병수 교수는 또 사도 바울이 스데바나의 가족에게 세례를 베풀었다(고전 1:16)는 사실에서 그곳에 가정 교회가 있었다고 주장한다.3) 물론 고린도전서 16:15에 보면 “스데바나의 집은 ...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줄을 너희가 아는지라”고 말한다. 여기서 ‘성도들 섬기는 것’이 꼭 ‘가정 교회’를 통해 섬기는 것인지, 아니면 일반적인 의미에서 성도 대접하기를 힘쓰며 교회 봉사를 열심히 한다는 뜻인지 우리가 알기 어렵다. 미국의 고든 피(Gordon Fee)도 여기서 이 ‘섬김’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본다. 왜냐하면 이 단어는 가르치는 것과 설교를 포함해서 많은 봉사(섬김)들을 포함할 만큼 모호하기 때문이라고 한다.4)
그러나 홍인규 교수나 조병수 교수는 ‘교회’에 대해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다. 성도들이 어디에 몇 명 모여 있으면 거기에 ‘교회’가 있다고 추정하는 것 같다. 그래서 조병수 교수는 ‘가족 교회’, ‘가정 교회’, ‘지역 교회’에 대해 말하고 있다.5) 그러나 교회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교회에 대한 개혁주의적 견해를 무시하는 것이다. 개혁주의 교회관에 따르면, 교회가 되려면 교회의 표지가 있어야 한다. 곧 순수한 복음의 전파, 순수한 성례의 거행, 권징의 실시, 이런 참 교회의 표지가 있어야 한다(「벨직 신앙고백」 29조). 그리고 교회에는 직분자들이 있어야 한다. 곧, 하나님 말씀의 수종자, 장로와 집사들인데 이들은 교회에 의해 적법한 선거를 통해 선출되어야 한다(제31조; 엡 4:11). 그냥 성도들이 모였다고 해서 다 교회는 아니다.6)
우리는 고린도 교회에 대해 다른 각도에서 접근할 수 있다. 고린도전서 1:2에 보면 사도 바울은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에게 편지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하나님의 교회(hJ ejkklhsiva tou' qeou')’는 단수로 되어 있다. 여기서 ‘교회’는 지역 교회(local church)의 개념이다.7) 고린도후서 1:1에서도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도 ‘교회’는 단수로 사용되었다. ‘가정 교회’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것이 여러 개의 가정 교회들로 구성된 하나의 ‘지역 교회’를 가리킨다고 주장지만, 만일 고린도 교회가 각각의 독립된 완전한 교회들로 이루어져 있었다면 ‘고린도에 있는 교회들’이라고 복수를 사용하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신약 성경의 용법이기 때문이다. 갈라디아서는 갈라디아에 있는 여러 교회들에게 보낸 편지인데, 수신자에 대해 ‘갈라디아의 교회들(aiJ ejkklhsivai th'" Galativa")’이라고 복수로 말하고 있다(갈 1:2). ‘그리스도 안에 있는 유대의 교회들’이라고 할 때에도 복수를 사용하였다(갈 1:22). 마게도냐 지역에 있는 여러 교회들을 말할 때에도 ‘마게도냐의 교회들’이라고 복수를 사용하고 있다(고후 8:1).8) 그리고 사도행전은 바울과 실라가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녀가며 ‘교회들’을 굳게 하였다고 말한다(행 15:41). 그리고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장로들의 작정한 규례를 저희에게 주어 지키게 하니, 이에 ‘교회들’이 믿음이 더 굳어지고 수가 날마다 더하였다고 한다(행 16:5). 이처럼 신약 성경은 여러 지역에 있는 교회들을 말할 때에는 복수로 ‘교회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요한계시록에서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이라고 말할 때에는 아주 분명하다(계 1:4, 11, 20). 이 일곱 교회에 대해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고 분명히 복수로 말한다(계 2:7,11,17,28, 3:6,13,22, 22:16).
그런데 여기 고린도 교회에 대해 말할 때에는 ‘하나님의 교회’라고 단수로 말하고 있다(고전 1:2, 고후 1:1). 이것은 고린도 교회가 하나의 지역 교회로 되어 있음을 말한다. 그렇다면 가정 교회는 아마도 ‘가이오’의 집에서 모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나와 온 교회 식주인 가이오도 너희에게 문안한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롬 16:23). 여기서 ‘식주인(xevno")’이란 말은 원래 ‘나그네, 손님’이란 뜻인데, 여기서는 ‘손님을 대접하는 사람’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렇다면 바울은 고린도의 가이오 집에 머물고 있었으며, 그 때 로마서를 기록하였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가이오는 바울뿐만 아니라 ‘온 교회(o{lh hJ ejkklhsiva)’를 대접하였다. 여기서 ‘온 교회’가 정확하게 무슨 뜻인지는 분명치 않다. 고린도 교회의 전체 성도를 가리킬 수도 있고, 아니면 좀 더 넓은 의미로 고린도뿐만 아니라 그밖에 당시에 존재하던 모든 교회를 가리킨다고 볼 수도 있다.9) 어쨌든 가이오는 예수 믿는 자로서 바울뿐만 아니라 여러 성도들을 대접하기를 힘쓴 고린도의 유력한 성도로서, 고린도 교회는 그의 집에 모였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가이오의 집 외에 다른 집들에도 가정 교회가 모였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예를 들면, 조병수 교수는 “사도행전에 의하면 그리스보는 회당장으로서 ‘그의 온 집으로 더불어’ 주를 믿었다(행 18:8). 이것은 그가 자신의 집을 가정 교회로 제공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10) 그러나 이것은 그야말로 추측에 불과하다. 성경이 말하는 것은 회당장 그리스보의 온 가족이 예수를 믿었다는 것이지 그 이상은 없다. 어떤 사람이 온 가족으로 더불어 예수를 믿었다고 해서 그 집에 가정 교회가 모였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은 지나친 논리의 비약이며 잘못된 것이다. 오늘날 우리 나라에서 한 300명쯤 되는 교회에 온 가족이 다 믿는 가정이 약 50 가정쯤 있다고 치자. 그러면 그 50 집이 다 ‘가정 교회’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새로운 한 사람이 온 가족으로 더불어 새로 등록했다고 치자. 그러면 “아, 거기에도 하나의 가정 교회가 모였을 것이다.” - 이렇게 추측할 수 있겠는가? 어떤 한 가정이 예수를 믿었다는 것과 거기에 가정 교회가 모였다는 것은 별개의 사안이다. 그런데 이 둘을 묶어서 같다고 보는 오류를 오늘날 학자들이 많이 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