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 연합 모임이 있었는가?
만일 초대 교회가 오늘날 어떤 사람들의 주장처럼 한 도시 안에 작은 여러 가정 교회들로 이루어져 있었다면, 그들은 어떻게 서로 관련을 맺고 있었을까? 이에 대해 홍인규 교수는 그들 가정 교회들은 때때로 전체 모임을 가졌을 것이라고 본다. 그 증거는 고린도전서 14:23의 ‘온 교회(hJ ejkklhsiva o{lh)’가 함께 모였다는 기록이다. 그리고 로마서 16:23에도 고린도 교회에 대해 말하면서 ‘온 교회(o{lh hJ ejkklhsiva)’의 모임 장소가 가이오의 집에 있었다고 말한다. 홍 교수는 여기의 ‘온 교회’란 고린도에 있는 모든 가정 교회들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을 의미한다고 본다.11) 그리고 ‘온 교회’의 회합은 이교도의 모임들의 경우를 따라 한 달에 한 번 정도 있었을 것이라고 본다.12)
1. 온 교회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해석에 대해 큰 의문을 가진다. 첫째로, ‘온 교회’에 대한 이해이다. 고린도전서 14:23의 ‘온 교회’가 과연 그런 ‘연합 예배’의 의미인지는 의심스럽다. ‘온(whole)’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홀로스(o{lo")’는 ‘범위에 있어서 전체에 속하는(pertaining to being complete)’ 것을 가리킨다. 그래서 ‘온, 전체의, 완전한(whole, entire, complete)’으로 번역된다.13) 즉, ‘부분’에 대해 대비되는 ‘전체’의 개념이다.
따라서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무식한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는 문장에서 ‘온 교회’는 가정 교회들의 ‘연합 모임’이라기보다도 교회가 전체로, 즉 공적으로 모이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 모임에서 성도들이 다 방언으로 말하면 어떻게 되겠느냐는 말이다. 따라서 이것은 ‘가정 교회’에서는 방언을 해도 되는데 ‘연합 모임’에서는 안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개인적으로는 방언으로 기도할 수 있지만 교회의 공적 모임에서는 하지 말라는 뜻이다. 이것은 28절의 말씀에서 분명히 알 수 있다. 거기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거든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및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여기서 ‘교회’에서 잠잠하라는 것은 ‘연합 모임’에서 잠잠하라는 말이 아니다. 바울은 지금 “연합 모임에서는 잠잠하고 가정 교회에서는 방언해도 된다”고 말하지 않는다.
바울은 “너희 중 누가 방언으로 말하려고 하거든 혼자서 개인적으로 하라”는 뜻으로 말한다. 꼭 교회의 모임에서 하려거든 통역자가 있는 가운데 두 세 사람이 순서를 따라 하고 통역하라”고 말한다(27절). 따라서 사도 바울이 말하는 바는 ‘가정 교회’와 대비되는 ‘연합 모임’에서 잠잠하라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기도’와 대비되는 ‘공적 모임’으로서의 교회에서는 (통역이 없으면) 잠잠하라는 것이다. 따라서 23절의 ‘온 교회’는 가정 교회 주장자들의 주장처럼 가정 교회들의 연합 모임으로 볼 것이 아니라, 성도들이 다 모이는 공적 모임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온 교회’라는 표현이 사용되고 있는 또 다른 구절들인 사도행전 5:11과 15:22을 살펴보자. 사도행전 5:11에서는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이 있고 난 후에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고 말한다. 여기서 ‘온 교회(o{lh hJ ejkklhsiva)’란 교회의 일부분이 아니라 전체를 말한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은 너무나 엄청난 사건이어서 온 교회 성도들이 두려워하였다는 뜻이다. 여기에 무슨 ‘연합 교회’의 개념이 들어갈 게재가 아니다. 이 본문 전체에서 소위 ‘가정 교회’와 ‘연합 모임’ 사이의 대비를 찾을 수 없다. 이 사실은 여기의 ‘온 교회’에 이어서 나오는 ‘듣는 사람들이 다’라는 표현에서도 알 수 있다. 앞의 ‘온 교회’가 조직체로서의 교회 공동체를 말한다면,14) ‘듣는 사람들이 다’란 표현은 개별적으로 이 사건에 대해 듣는 자들을 가리킨다. 이 일을 듣는 자들은 다, 예외 없이 두려워하였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불신자들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믿는 자든 믿지 않는 자든, 누구든지 예외 없이 다 놀라고 두려워하였다는 뜻이다. 여기에도 마찬가지로 무슨 ‘가정 교회’나 ‘연합 모임’에 대한 시사는 찾아볼 수 없다. 따라서 여기의 ‘온 교회’는 말 그대로 온 교회이지 다른 뜻이 아니다.
이것은 사도행전 15:22의 ‘온 교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사도들과 장로들과 온 교회”란 표현에서 ‘온 교회’란 말 그대로 ‘온 교회’이지 다른 무슨 ‘연합 교회’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이 표현의 뜻은 사도들과 장로들과 온 교회가 일치단결하여 결정하였다는 것이며, 교회 안에서 의견이 나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도행전에 나오는 다른 표현인 ‘온 집(o{lo" oJ oi\ko")’도 마찬가지다.
로마서 16:23의 ‘온 교회’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나와 온 교회 식주인 가이오”라는 표현은 바울뿐만 아니라 교회 성도들 전체에 대해서도 식사를 제공하고 대접했다는 뜻이다. 여기서 ‘온 교회’는 고린도 교회 전체 성도들을 말할 수도 있지만, 다른 지역에서 오는 '외지인 그리스도인들(Christian strangers)’을 가리킬 수도 있다.15) 왜냐하면 여기에 ‘식주인’으로 번역된 ‘크세노스(xevno")’는 원래 ‘낯선, 외국의(strange)’를 뜻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즉, 가이오는 외지에서 오는 낯선 그리스도인들을 재워주고 대접하는 일을 많이 하였는데, 단지 바울에게뿐만 아니라 로마나 다른 곳에서 오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리하였다는 말이다.16) 그렇다면 바울은 여기서 고린도에 연합 모임이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것이 된다.
2. 모임의 회수
그리고 소위 그러한 ‘온 교회’의 모임이 한 달에 한 번 정도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근거가 없다. 홍인규 교수의 그러한 주장은 로버트 뱅크스의 추측에 근거한 것인데, 뱅크스는 이에 대해 그저 추측으로 말할 따름이다. “온 교회가 모였다고 언급할 때 바울이 취한 다소 분명치 않은 표현은 그 모임들이 한 주에 한 번 꼴로도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자발적인 이교도들의 회합이 한 달에 한 번 정도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그리스도인의 큰 모임들도 자연스럽게 그러한 예를 따랐을 것이다.”17) 그러나 이것은 근거 없는 추측에 불과하다. 더구나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이교도들의 회합을 따랐을 것이라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는 것 같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이교도들의 제사 행위에 대해 우상 숭배이며 귀신과 교제하는 것으로 보았다(고전 10:7, 20). 따라서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이 그러한 이교도들의 회합을 모방했을 것이라는 추측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홍인규 교수도 로마 교회에 대해서는 어떤 한 장소에서 전체 모임을 가졌다는 증거는 없다고 인정한다. 아마도 로마라는 도시의 크기 때문에 전체 모임은 엄두도 못 냈을 것이라고 본다.18) 그렇다면 중요하게 문제되는 것은 고린도 교회인데, 이에 대해서는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여러 개의 가정 교회들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단 하나의 교회가 있었다. 따라서 고린도 교회에 대해서는 ‘연합 모임’ 또는 ‘전체 모임’을 논하는 것 자체가 합당치 않다.
VI. 그러면 대안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우리의 대안은 무엇인가? 우리가 살펴본 바에 의하면 초대 교회는 어떤 사람들의 주장처럼 한 도시에 여러 개의 가정 교회들로 구성된 하나의 지역 교회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따라서 ‘교회 안의 교회’로서의 ‘가정 교회’는 없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성도의 가정에서 교회가 모이는 경우는 많았다. 이것은 성도 수가 많지 않은 초기 상황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획일적인 것은 아니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모이는 경우도 있었고 강의실이나 건물에서 모이는 경우도 있었다. 이처럼 그들이 속한 도시나 마을의 형편에 따라 모이는 장소는 달랐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가 현재 논란되고 있는 ‘가정 교회’ 문제와 관련하여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는가? 우리의 취해야 할 대안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기로 하자.
1. ‘교회’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소그룹 모임은 교회 생활에 있어서 중요하다. 따라서 각 교회가 형편에 따라 소그룹 모임을 가지는 것은 자유에 속하며 적극 권장할 만하다. 어떤 형태의 소그룹 모임을 가질지는 시대와 형편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며, 각 교회가 자유롭게 택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떠한 형태의 소그룹 모임을 가지든 간에 그것을 ‘교회’라고 부르는 것은 옳지 않다. 왜냐하면 ‘교회’가 되려면 참 교회의 표지인 말씀의 전파와 성례의 거행과 권징의 실시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직분들(목사, 장로, 집사)이 선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립적인 당회와 집사회(제직회)가 조직되어 운영되어야 한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아직 당회가 구성되지 않은 미조직 교회도 있지만, 그러나 그것은 조직 교회를 향하여 나아가는 과도기적인 것이다. 따라서 미조직 교회는 조직된 교회 안의 하부구조로서의 소위 ‘가정 교회’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소위 ‘가정 교회’는 조직된 교회 안에서 의도적으로 만든 소그룹 모임이며 장차 독립된 교회로 나아갈 의사가 애초부터 없다. 이에 비해 미조직 교회는 비록 당회는 없지만 당회장의 지도와 도움을 받아 정규적인 예배와 성례식을 거행하며 필요시에 권징도 실시한다. 제직회와 공동의회도 모인다. 따라서 ‘가정 교회’와 미조직 교회는 근본적으로 다른 성격의 것이다.
만일 교회 안의 소그룹 모임을 ‘교회’라고 부르게 되면, 그것은 ‘교회 안의 교회(ecclesiola in ecclesia)’가 되고 만다. 이러한 교회 구조는 신약 성경이 알지 못하는 것이다. 신약 성경에 나오는 ‘가정에 모인 교회’는 한 교회 안의 소그룹 모임이 아니라 하나의 독립된 개교회이다. 비록 성도의 집에서 모였지만 하나의 독립된 교회로서 예배와 성찬과 권징 등 교회로서의 모든 기능을 다 수행했던 것이다.
어떤 사람은 신자들이 몇 명 모이면 다 교회가 아니냐고 주장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이해는 개혁주의적 교회의 개념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참 교회의 표지와 직분을 무시하면 교회가 혼란스러워지고 무질서해진다. 그렇다면 굳이 소그룹 모임만 ‘교회’라고 부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유초등부 모임도 ‘유초등부 교회’라고 부르고, 중고등부 모임도 ‘중고등부 교회’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서 성도들이 부엌에 몇 명 모여 있으면 ‘부엌 교회’라고 부르고, 화장실에 모여 있으면 ‘화장실 교회’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교회’라는 용어를 남용하는 것은 개혁주의 교회 개념에 맞지 않다. 개혁 교회는 참 교회의 표지와 직분을 중요하게 여기며 교회의 질서를 중요하게 여긴다.
2. ‘장로’가 소그룹 모임을 인도해야 한다.
그리고 장로회 정치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장로교에서는 구역 모임과 같은 소그룹 모임의 지도자에 ‘장로’를 세우는 것이 원칙적으로 옳다. 왜냐하면 장로의 직분이 양들을 치는(돌보는) 것이기 때문이다(행 20:28, 벧전 5:2). 그래서 목사 혼자서 다 돌보기 어려운 성도들을, 구역을 나누어서 장로들이 각각 자기 구역의 성도들을 돌보는 것은 합당한 일이다. 따라서 구역 모임과 같은 소그룹 모임의 장은 장로가 맡는 것이 원칙이다. 참고로 화란 개혁교회에서는 장로가 구역장을 맡는다. 구역에서 일어난 일상적인 일들은 일차적으로 구역장 되는 장로가 돌아보며, 그 중에서 중요한 일이 있으면 목사에게 보고하고, 필요할 경우에는 당회에서 의논한다. 그래서 장로는 일주일에 한 두 차례 자기 구역 식구들을 심방하느라 바쁘게 움직인다. 그래서 장로직을 수행하는 것이 힘들어서 한 3~4년 정도 봉사하고 나면 장로직을 그만둔다. 휴무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장로직을 완전히 벗어버렸다가 1년 쉰 후에 다시 장로로 선출될 수 있다. 그러나 장로로 선출하려고 해도 본인이 사양하는 경우도 많다. 왜냐하면 그만큼 시간이 많이 소요되고 힘들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 한국 교회의 경우에 구역은 많고 장로가 부족한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경우 장로가 턱없이 부족하다. 이럴 때에는 두 가지 해결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장로 수를 늘리는 것이다. 이것은 원칙적인 해결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장로를 세우신 목적은 양들(교회 성도들)을 돌보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성도들을 돌보고 가르치고 권면하기 위함이다. 구역 모임 또는 소그룹 모임을 하는 목적도 바로 성도들을 효과적으로 돌보고 가르치고 권면하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구역을 맡아서 지도하는 사람이 바로 장로가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옳은 것이다. 화란 개혁교회에서는 교인이 늘어나서 구역이 늘어나게 되면 그 늘어난 구역 수만큼 장로를 더 뽑는다. 장로 선출과 임직 순서도 간단하여서 변화하는 상황에 빨리 대처한다. 그러나 한국적인 상황에서 이러한 해결책을 시도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한국 교회의 구역은 대개 규모가 작으며 장로 수가 적고 또한 장로 선출 절차와 임직 절차가 번거롭고 거창하다.
그래서 생각할 수 있는 두 번째 해결책은 몇 명의 구역장(소그룹 인도자)을 한 장로의 지도하에 두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한 장로가 3~4명 또는 5~6명의 구역장을 자기 관할에 두고 지도하는 방법이다. 그러면 장로가 매주 한 구역씩을 돌아보면 한두 달에 한 번씩 자기 관할하의 식구들을 다 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몇 개의 구역으로 이루어진, 한 장로가 돌아보는 영역을 예를 들어 ‘지역’ 또는 ‘지구’라고 이름 짓는다면 장로가 ‘지역장’ 또는 ‘지구장’이 되는 방식이다. 이렇게 되면 성도들을 돌아보고 지도하는 일에 장로가 소외되지 않으며, 당회가 제 기능을 감당하게 되므로 장로교의 정치 원리에 벗어남이 없다. 오히려 장로들이 단지 결정만 하고 감독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성도들을 돌아보고 지도하는 일에 나서므로, 이것은 성경의 원리에도 맞고 장로교의 원리에도 맞다. 이렇게 하는 것은 구역은 많고 장로 수는 부족한 한국 교회의 현실에서 당장 시행할 수 있는 현실적인 해결책이기도 하다.
3. 소그룹은 소그룹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구역 또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소그룹 모임은 그에 맞는 역할을 감당하여야 한다. 교회는 교회로서 감당해야 할 역할이 있고, 구역은 구역으로서 감당해야 할 역할이 있다. 공예배와 성례식, 권징은 교회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재정 운용과 교회적인 행사, 공동의회와 제직회와 당회도 다 교회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구역 모임에서 세례나 성찬을 행해서는 안 되며, 구역 모임이 공예배를 대신해서도 안 된다. 그리고 헌금 사용에 대해서도 각 구역에서 독립적으로 할 것이 아니라 당회의 지도를 받아서 해야 한다. 그리고 권징이나 치리에 관한 문제는 당연히 당회에서 다루어야 한다.
그렇다면 구역에서 다루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주된 것은 교제와 교육, 권면과 상담 등이 될 것이다. 교제는 중요한데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날마다 집에서 떡을 떼는 것(식사)을 통해 성도의 교제를 실천했다(행 2:42,46). 나아가서 서로 물건을 통용함으로써 경제적인 문제에 있어서도 참된 사랑을 실천했다(행 2:45, 4:32).
그리고 구역 모임과 같은 소그룹 모임에서는 공예배 시의 설교에서 자세히 배울 수 없는 것을 소그룹 성경 공부를 통해 배울 수 있다. 모르거나 궁금한 것을 질문할 수도 있고, 서로 의견을 나누면서 말씀을 배우는 것은 설교 못지않은 효과적인 교육 방법이다. 이것이 또한 소그룹 모임의 장점인데, 이것을 통해 성도들 각자의 신앙상태와 생활을 점검하며 개인적으로 적용하고 권면할 수 있다. 성경에서도 장로(감독)는 “가르치기를 잘해야” 한다고 말한다(딤전 2:2). 장로의 주된 임무가 ‘양을 치는 것’인데 양을 치는 일이 곧 양을 먹이는 것이다(행 20:28, 벧전 5:2, 요 21:15-17). 곧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다. 따라서 장로는 양을 치는 자로서 가르치기를 잘 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한국 교회의 장로는 그 동안 너무나 회의하는 일에만 치중하고, 주일학교에서 가르치거나 구역을 돌보는 일은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것은 장로의 본분을 소홀히 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의 소그룹 운동이 성경 공부를 강조하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임무를 장로들이 맡게 된다면 그것은 바로 성경이 가르치는 바라고 할 수 있다.
구역 모임(소그룹 모임)에서 해야 할 또 다른 중요한 것은 권면과 상담이다. 디도서 1:9에 보면 장로(감독)의 직무 중에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스려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는 것”이 들어 있다. 장로는 성도들을 각각 돌아보고 그들 개개인을 권면하는 일을 해야 한다. 이 때 권면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해야 한다. 자기 생각이나 인간적인 교훈을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의 교훈을 가지고 해야 한다. 그래서 장로는 말씀에 대한 지식을 충분히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혹 거스려 말하는 자가 있으면 필요한 경우에는 책망도 해야 한다. 이런 권면과 책망은 구역 모임과 같은 소그룹 모임에서 하는 것이 매우 적절하다. 물론 문제가 심각한 경우에는 모든 장로들이 모이는 당회에서 의논하고, 또 필요한 경우에는 공개적으로 책망하거나 시벌해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경우에는 구역 모임에서 장로가 권면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성도들의 개인적인 고민이나 갈등, 어려운 문제들에 대해 상담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한다.
이런 점들에 있어서 소그룹 모임은 전체 모임이나 예배에서 할 수 없거나 부족한 것들을 보충하고 가르치며, 성도간의 교제를 촉진하며, 개인적인 권면과 상담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하며 꼭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 일들의 성격상 그러한 것은 기본적으로 신약에서 말하는 장로의 직무에 속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장로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본래의 임무인 성도들을 돌보는 일(양을 치는 일 곧 목양)에 나서는 것이 필요하며, 그리할 때 현재 ‘가정 교회’와 관련하여 일어나는 많은 문제점들은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이며 오히려 더욱 더 성경적인 방향으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변 종 길 교수/고려신학대학원, 신약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