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같은 너그러움으로
종들은 호전적이거나 무익한 말다툼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같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이런 결점도 교정되어야 합니다. 그들은 또한 더러운 것을 탐내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은 욕심을 내어서도 안됩니다. 자기의 직무를 이용하여 치부하려는 목사는 자기의 의무를 충성스럽게 이행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럴싸하게 꾸며서 사람을 기쁘게 하거나 만족시키기 위해서 애쓸 것입니다.
즉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모두 위장하고 날조하거나 어떤 방법이 자신에게 가장 유익한가를 확인하기 위하여 노력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탐욕이 말씀의 종을 다스린다면 그는 틀림없이 거짓 교사이며 그들의 주된 연구는 선한 교훈을 왜곡하고 진리를 거짓말로 바꾸는 것이 될 것입니다.
자기들이 맡은 직무에 충실한 종이라면 하나님의 교회를 교화시켜야 하고 모든 범죄와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들은 나그네를 대접해야 합니다. 그들은 나그네에게 친절해야 하고 그들은 정중하게 맞아들여야 합니다. 이것을 늘 지켜야 합니다. 사도 바울의 시대에는 그렇게 해야만 했던 특별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는 기독교인은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새와 같은 신세로 그들에 대한 박해가 일어남에 따라 이곳저곳으로 날아다녀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생명의 위협을 무릅써야 할 때도 자주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목자야말로 교회에 대해 마치 아버지와 같은 감독이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앞에서 설명한 상황에 비추어 나그네에게 관대하고 친절하게 대하여 그들을 정중하게 맞이하라고 요구한 데에는 이유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고 부름을 받은 그들은 선을 좋아해야 합니다. 이 덕목은 앞에서 말한 것과 비슷합니다. 그들은 궁핍한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동정적이어야 하며 그들의 부족한 것을 채워 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자신들이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음에 만족하여 다른 사람의 상태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들은 동료에게 동정심을 전혀 보이지도 않으며 핍박을 받고 환난을 당하는 사람들을 위로할 줄도 모릅니다. 이러한 이유로 사도 바울은 이 두 개의 덕목을 한 곳에 모았습니다.
세상과의 절교를 증명하라
우리는 다음과 같은 낱말을 접하게 됩니다. 즉 근신하는, 의로운, 거룩한, 절제하는 이라는 단어입니다. 근신은 사람의 생활을 가리킵니다. 의로움은 올바른 처사를 의미합니다. 그것으로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고유의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며 어떤 방법으로든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보다는 자기 자신이 그 고통을 기꺼이 감수해야 합니다. 이것이 사도바울이 한 의로움이라는 말의 뜻입니다.
거룩함은 원칙적으로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데 있습니다. 즉 우리는 우리 이웃에게 해를 주어서는 안되며 우리 몸을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온전히 바쳐서 순결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와 간구에 철저히 매달려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일에서 물러서야 합니다. 우리의 생활이 헛되지 않기 위해서 방종한 생활을 해서는 안되며 겸손하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여기서 말하는 거룩함입니다.
절제는 근신이라는 낱말이 뜻하는 내용을 다 함축하고 있습니다. 먹고 마시는 것을 절제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으며 그 외에도 우리는 모든 생활에 겸손하고 정직해야 합니다. 우리는 눈과 귀와 입을 조심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절제와 뜻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즉 사도 바울이 우리는 안정되고 확실해야 한다고 말한 바와 같이 우리는 부당한 처사와 헛되고 음탕하여 방종한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생활을 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가 이 세상과 결별했음을 알게 해야 합니다.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라고 했습니다. 이는 복음 사역자에게 요구되는 근본적인 것입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 위해 교육을 받아야 할 뿐만 아니라 믿음 안에서 굳게 서야 하며 진리의 교훈을 유지하여 안전하고 건건하게 남아 있도록 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그 진리를 꽉 잡으면 비록 마귀가 우리들로 하여금 그것을 흔들어서 떨치려고 애쓸지라도 우리는 돌아서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