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 안에 들어온 물질주의와 성공주의
우리의 현상을 다음 같은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누가 보아도 문제인 “아주 현저한 물질주의와 성공주의”가 과연 어떤 것인지를 간단히 살펴보고, 이와 함께 (2) 성도들의 판단을 어렵게 하여 많은 사람들을 현혹하는 “배후에 숨어 있는 물질주의와 성공주의”를 드러내어 보고, 그와 함께 (3) 겉으로는 이것들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 같으면서도 우리 안에 여전히 잔존해 있는 “아주 교묘한 물질주의와 성공주의”에 대해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의 문제를 노골적(露骨的)으로 적나라(赤裸裸)하게 드러낸 후에 우리는 과연 무엇이 우리들을 이끌어 이런 물질주의와 성공주의를 지향하도록 했는지 그 근원적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래야만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나아 갈 길이 바르게 제시될 수 있다.
문제 1: “아주 현저한 물질주의와 성공주의”
누가 보아도, 심지어 믿지 않는 사람들이 보아도 심각한 문제인 물질주의와 성공주의, 즉 우리가 “아주 현저한 물질주의와 성공주의”라고 이름 붙인 것은 개교회나 그 교회의 성원들, 그리고 교단이나 기독교 단체가 소위 “번영의 복음”(a gospel of prosperity)을 추구하는 모습에서 쉽게 관찰할 수 있다.
번영의 복음은 참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오는 세상에서 만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도 모든 면에서 잘 된다고 믿으면 그것을 추구하는 것이다. 삼박자 축복을 강조하며 오중 복음을 말하는 교회들과 마찬가지로 영적인 면과 죽음 이후에도 관심을 기울이나, 대개는 건강과 재물과 행복을 강조하니 상당히 현세 중심적인 강조점을 지니고 나타난다.
미국에서 번영의 복음을 앞서서 주창하던 여러 교회들이 지금 어떻게 되었는지의 문제를 비롯해서, 그것을 추구하다가 온갖 추태(醜態)를 다 노출시킨 모든 다른 사례들에서 이 번영의 복음의 문제는 쉽게 드러난다. 대부분의 문제는 결국 교회가 성경이 제시하는 길을 무시하고, 오직 개인과 교회의 성공을 지향해 가다가 드러난 것이기 때문이다. 근자에 우리나라 안에서 사회적으로 나타난 여러 사건들과 관련하여 자살로 그 생애를 마친 사람들의 상당수가 교회의 장로(長老)라는 직함을 가졌다는 것에서나 여러 대형 교회의 문제에서나 빚을 빌려 지은 커다란 예배당이 결국 이런 저런 이단에게 팔린 사건들에서 이 문제는 잘 드러난다. 사회적으로 저명인사이고 소위 성공한 사람들인데, 그리고 교회 공동체에서도 장로로 선임되고 한 사람들인데 결국은 이런 사회 문제의 핵심에 선 인물로 드러나서 결국은 자살로 생을 마친 것에서 한국 교회가 개인적으로도 성공을 추구하고 있었고, 그 성공의 기준이 세상의 지위와 물질적인 부(富)였다는 것이 잘 드러나고 있다.
교회 공동체도 마찬가지여서 결국 교회가 성도들을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가르치고, 그것을 어떤 말로 포장하든지 교회와 그 교회에 속한 개인이 이 세상에서 잘 되고, 건강하고, 그리고 소위 신앙생활도 잘 하기를 요구해 왔음이 드러난다. 개인이 잘 되기를 바라고, 그 척도를 이 세상에서 돈을 많이 벌고, 건강하고, 그러면서 교회의 여러 종교적 행사에 열심인 것으로 제시하는 교회들은 결국 그 교회 자체가 점점 커지고 융성하는 것을 바라게 되는데, 이때도 그 기준은 성도들이 얼마나 많이 출석하는가, 재정이 얼마나 많은가, 그 교회의 건물이 얼마나 되는가, 어떤 현저한 일을 하는가 등으로 나타난다면 이것이 현저한 물질주의와 성공주의의 예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에 세계적인 대형 교회들이(mega churches) 많이 나타난 것, 그리고 지금도 그것을 추구하는 교회들과 그런 목회자들과 그런 성도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 이것을 잘 드러내어 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현재 여러 가지 문제를 드러낸 곳만이 문제가 아니라 이런 지향성 자체가 문제이다. 각 교회가 과연 성경이 말하는 그런 방향을 지향하는가, 성경이 말하는 그런 모습을 드러내는가 하는 것이 아니고,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이느냐, 얼마나 많은 재정을 사용할 수 있느냐, 얼마나 놀라운 일을 많은 돈을 들여서 할 수 있느냐 등이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면, 우리는 심각한 물질주의와 성공주의에 빠져 있는 것이다.
여기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지 않은 한 대형 교회의 목사님이 있다고 해 보자. 그는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지 않았고 오히려 그런 물의를 일으키는 것을 비판하고 있으니 그의 목소리와 말씀을 우리가 더 듣고 그것이 기준이 되고 있다면, 사실 그것도 우리가 물질주의와 성공주의에 물들어 있다는 강력한 증거인 것이다. 그가 큰 교회를 섬기기에 그의 말을 들으려고 하는가, 과연 그가 하는 말과 제시하는 바가 성경이 말하는 바이기에 그의 말을 들으려고 하는 가에서 우리가 과연 어떤 상태에 있는 지가 잘 드러난다. 우리는 과연 어떠한 가 스스로를 반성하면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
발체: <목회와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