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교묘한 물질주의와 성공주의”
그런가하면 아주 교묘한 물질주의와 성공주의도 있을 수 있다. 그것은 겉으로는 물질주의와 성공주의를 지향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물질주의와 성공주의를 비판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비판에 근거해서 그리스도인과 교회가 나아 갈 바를 제시한다.
그런데 그 제시하는 바가 성경이 가르치는 것과는 사실은 다른 것이고, 그저 인본주의적인 것이며, 그 심정 깊은 곳에 이렇게 바른 것을 지적하는 자신이 옳고 바른 것이며,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마음이 있다면 이것이 “아주 교묘한 성공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중의 첫째 조건은 우리가 제시하는 바가 과연 성경을 온전히 따르는 것이냐 아니면 다른 것을 따르는 것이냐의 “객관적 기준”의 문제이고,
둘째 조건은 각자의 마음속을 들여다 보는 것이기에 극히 “주관적 기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주관적 기준에 대해서는 각자가 스스로 판단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것은 항상 중요하다. 우리는 항상 마음에 판관(判官)을 세우고 과연 우리가 어떻게 하고 있는 지를 살펴야 한다. 그리고 그 판관이 하나님이셔야만 한다. 우리가 바르게 하고 있다고 할 때에도 그리해야 마땅하다. 우리들도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 하리로다”(시 16:8)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 앞에 홀로 서야 한다(stand before God alone!).
하나님 앞에 서서 우리는 우리가 분석하는 것과 지시하는 것이 과연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부합하는 지를 살펴야 한다. 성경만이 객관적 기준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성경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 하느니라”(마 6:24)고 말씀하셨다. 그 앞에 말씀하시기를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들과 교회 공동체는 재물을 경(輕)히 여기며, 재물 자체에 대한 집착을 미워해야 한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지지 못한다고 예수님께서 친히 단언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이냐 물질이냐에 대해서 “이것이냐 저것이냐”(either/or)의 태도를 분명히 한 것이고, 우리도 그렇게 결단하라고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에 근거해서 판단할 때에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결단코 물질주의에 물들으면 안 된다. 그런데 이렇게 가르쳤을 때 사람들이 예수님을 잘 따르지 않을 것을 염려하여 “예수님을 잘 믿으면 재물은 당연히 따라오게 되어 있다”고 가르친다면 그것은 결국 물질주의를 허용한 것이니 잘못이다. 자기 자신은 예수님과 교회를 위한다고 주장하지만 결국은 예수님과 교회를 해(害)하는 결과를 낸 것이 된다. 이 때 예수님을 위하는 기준이 과연 무엇이냐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이다.
오늘날 이 세상에는 예수님과 교회를 위해서 성경의 기준이 아닌 세상적인 기준에 부합하는 것을 말하고 제시하는 일이 많이 있다. 그것이 “가장 교묘한 형태의 세속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의 근원적인 문제는 결국 우리가 과연 주님과 그의 말씀을 따르느냐 아니면 이 세상을 따르느냐 하는 것이다.
발체: 목회와 신학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