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은 장례예배가 아니라 기독교적 의례이다. 장례를 중심으로 하여 되풀이 되는 예배형식은 전반적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임종예배 입관예배 발인예배 하관예배 등을 ‘예배’로 이해하는 것은 잘못이다. 기독교적 장례에서 가지는 절차상의 모임 정도로 이해해야 한다.
세상에 태어났다는 사실 자체가 곧 죽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그것을 뻔히 알면서도 죽음을 피해보려는 욕망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함께 살던 가족이나 이웃이 죽게 되면 슬퍼하며 아쉬운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이제 다시 얼굴을 볼 수 없으니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인간의 죽음과 그 후의 삶에 대해 무지하거나 오해하는 자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이성적 판단에 따라 죽음을 해석하며 대응하려 한다.
그러나 성도들은 인간의 죽음이 하나님의 심판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인간의 삶은 이 세상에서의 죽음으로 인해 모든 것을 끝내는 것이 아니다. 신약성경 히브리서에는 그에 대한 교훈이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우리는 인간의 죽음을 통해 공의로운 하나님을 기억하게 된다. 사망한 인간의 모습을 보며 죄의 무서운 본성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즉 이웃이 죽음을 당했을 때 인정에 얽매인 애석한 마음 너머 존재하는 삶과 죽음의 본질적 의미를 간과해서는 안된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성도의 죽음을 통해 진리를 한층 더 분명히 깨닫게 되는 유익을 얻는다. 성도의 장례예식은 그런 신앙적인 사고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성경에서 교훈하고 있는 신앙의 본질에서 벗어난 미신적인 종교행위가 그 가운데 용납될 수 없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종족과 민족들이 살아가고 있지만 장례의식은 매우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죽은 시체를 큰 호수나 강 바다 등의 물에 던짐으로써 장례를 치르는가 하면 죽은 시신을 토막 내어 새들의 먹이가 되도록 하기도 한다. 우리로서는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장례 방법이다.
사람들 가운데는 우리처럼 시신을 땅에 묻어 매장하는 것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장례방식으로 여기는 자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시체를 땅에 묻게 되면 죽은 사람의 영혼이 땅에 가둬져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이렇듯이 다양한 형태의 장례방법이 있지만 사람들은 제각각 자신의 풍습이 가장 정당하다고 믿는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점은 다양한 장례의식들은 대개 종교성을 띠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기독교를 받아들인다 해도 토착화된 이교적인 장례풍습의 요소가 그에 강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우리 역시 그와 같은 입장이므로 장례에 대한 올바른 개념을 정리하지 않으면 안된다.
성도의 장례의식은 죽은 자가 아니라 산 자들을 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장례는 죽은 사람의 마지막을 잘 정리해주는 것을 본질적인 목표로 삼지 않는다. 즉 이제 두 번 다시 저를 위해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다는 생각으로 마지막을 잘 장식해주는 것이 장례의 본질적인 의미가 아니다. 나아가 죽은 자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보며 그에게 애도의 마음을 표한다는 것은 이교도적인 사고이다.
하지만 한국 기독교의 장례의식 가운데는 미신적인 요소들이 많이 들어와 있다. 한국교회의 장례는 다른 지역의 기독교와 비교해 볼 때 매우 독특하다. 이는 한국인의 민간 신앙적인 요소가 그 가운데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것은 단순한 문화적인 습성이 아니라 신앙과 신학적인 해석을 요하는 문제이다.
한국 기독교인들의 장례 가운데는 마치 매듭과 같은 다양한 절차들이 따른다. 임종 입관 발인 하관 등이 곧 그것들이다. 그 때마다 대개 목사를 비롯한 성도들이 모여 성경을 읽고 설교를 하며 찬송가를 부른다. 그와 같은 형식은 단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죽은 자의 시신과 가족 친척들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계속해서 되풀이된다.
죽은 자를 염두에 둔 임종예배 입관예배 발인예배 하관예배 등이 있지만 그런 형식들을 ‘예배’로 이해하는 것은 잘못이다. 기독교적 장례의 그런 모임들은 절차상의 의미를 지닐 따름이다. 즉 그 시간에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생각을 할 것이 아니라 성도들이 함께 모여 말씀을 나누며 교제하는 기회인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에서 지나치게 되면 기독교 형태를 띤 이교적 의례로 발전할 우려가 있다.
그러므로 신앙이 어린 교인들 가운데는 되풀이하여 예배를 봄으로써 악귀의 접근을 막게 된다고 믿는 자들이 있다. 또한 그런 예배를 통해 유가족을 위로 한다고 여기는 자들도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죽은 시신이 놓여있는 자리에서 교인들이 밤을 새워 기도하면서 찬송가를 부르기도 한다. 그것은 무속신앙의 영향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우리는 장례의 절차에 따라 매번 예배를 드림으로써 하나님이 기뻐할 것이라든지 죽은 자가 천국에 갈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된다. 또한 유족을 위로하기 위한 목적으로 하나님께 되풀이하여 예배를 본다는 것도 올바른 말이 될 수 없다.
장례식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행위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설령 순수하고 좋은 의도로 그렇게 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찬을 통한 방편 이외 다른 어떤 것도 하나님을 찬송하는 예배의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이광호(홍은개혁신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