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1 바른 물질관 정립
오늘날을 흔히 ‘물질 만능의 시대’ 라고 한다. 돈이 최고의 가치를 가지게 되었고, 최고의 권력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돈이면 안 되는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소위 ‘맘모니즘(Mammonism, 배금주의)’이 지배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교회와 성도들도 예외가 아니다. 양명수는 Jacques Ellul의 『하나님이냐 돈이냐』의 번역서 서문에서 돈의 영향력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일갈하였다.
돈, 돈은 힘인 동시에 하나님이다. 돈만 있으면 안되는 것이 없는 세상이다. 돈은 사람의 능력을 나타내는 징표일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인격까지도 가늠하는 수단이다. 돈이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교회 역시 돈의 지배를 받고 있다. 돈이 있는 교회가 축복받은 교회요, 하나님이 함께 하는 교회다. 돈은 세상을 지배하는 통치자일 뿐만 아니라, 거룩한 교회까지도 마음대로 지배하는 통치자가 되었다. 이제 기독교인들에게 ‘믿음으로 인한 의인’ 이라는 것은 표어에 지나지 않고 ‘돈으로 인한 의인’ 이 교리로 자리 잡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돈이 실질적으로 어떤 유용성과 구체적 사용 가치를 가졌느냐는 것은 별 의미가 없게 되었다. 돈은 자율성을 가지고 스스로 모든 것을 정당화하는 최고의 가치가 되었다. 돈과 하나님이 한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다.
실제로 Richard Foster가 주장한대로, 돈은 성도들을 유혹하고 마음을 지배하려고 도전하는 하나의 힘(power)이요, 하나님과 경쟁적인 위치에 있는 하나의 인격체(a rival god)가 되어 버렸다. 물론 성경은 물질의 복이나 부 자체를 잘못이나 죄로 정죄하지 않는다. 또한 가난한 삶 자체를 그리스도인이 추구해야 할 모범적인 삶의 형태로 강조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위에서 언급한대로, 성도가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고, 돈은 일만 악의 뿌리가 될 수 있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는 또한 그것을 매일 매일 실제로 경험하며 살고 있다.
이렇게 돈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잘못된 상황에서 헌금의 매개가 되는 돈에 대해 그리스도인들에게 바른 가치관을 정립시켜주는 것은 설교자(목회자)의 중요한 임무이다. 특별히 성도들에게 필요한 것은 물질에 대한 ‘청지기적 태도’ 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우리는 단지 관리자이고, 또한 관리자로서 우리는 위임받은 것을 주인의 뜻대로 잘 활용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성도들이 이러한 청지기적 태도로 탐심과 끝없는 욕심을 버리고(엡 5:5), 자족하는 삶을 살게 해야 할 책임이 설교자(목회자)들에게 있다(빌 4:12-13; 딤전 6:6). 한 걸음 더 나아가 설교자들은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을 하나님께서 관심을 가지고 계시고 특별한 사랑을 베푸시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배려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물질에 대한 바른 가치관 즉 청지기적 태도를 가질 때 바르고 온전한 헌금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3.2.2. 헌금을 드리는 과정과 자세
성경은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헌금이 되기 위해 헌금을 드리는 과정과 자세가 중요함을 말씀한다. 무엇보다도 성경은 온전한 헌금이 되기 위해서는 헌금이 정당하게 번 소득이어야 함을 말씀한다. 신명기 23:18은 “창기가 번 돈과 개 같은 자의 소득은 어떤 서원하는 일로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가져오지 말라 이 둘은 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것임이니라”고 말씀한다. 또한 성경은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헌금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합당한 삶의 열매가 동반되어야 함을 말씀한다. 이사야1장에서 하나님은 당시 이스라엘이 제멋대로 살면서 하나님께 예물과 예배를 드리고 기도할 때 다음과 같이 단호하게 말씀한다.
“그러한 것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내 마당만 밟을 뿐이라.… 내가 싫어한다.… 내가 곤비하였다.…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하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사 1:11-15)
하나님께 정성을 다하여 헌금을 드리면서 예배하고 기도하는 것 참으로 귀하지만, 그러한 것들이 삶의 열매가 동반되지 않는 단순한 종교적행위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의 열매와 함께한 예물과 예배를 원하신다. 뿐만 아니라 성경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헌금이 되기 위해서는 마음(중심)이 동반되어야 함을 말씀한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의 가식적인 모습을 보시면서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마 23:23)”라고 책망을 하셨고, 호세아 6:6에서 하나님은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고 말씀하신다.
이상과 같이 성경은 헌금(제물) 자체보다는 헌금하는 과정이나 자세가 중요함을 말씀하지만, 오늘날 한국 교회의 많은 설교자들이 헌금을 드리는 과정이나 자세에 대해 크게 강조하지 않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 성도들은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기는커녕 거짓과 탈세와 불법을 행해서 손가락질을 받는 삶을 살면서도, 선지자 시대의 이스라엘이나 예수님 시대의 바리새인들처럼, 단지 종교적인 의식을 행하고 물질을 드리는 것으로 신앙의 의무를 다했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헌금의 과정과 자세를 강조하는 메시지는 바른 헌금 생활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3.3.3. 성경적 헌금관 정립
설교자는 성경에 명확하게 언급되지 않지만 오늘날 교회마다 다양하게 실행되어 오는 여러 가지 헌금 제도와 관련하여 성경적 원리를 설명해 주어야 한다. 예를 들어, 십일조는 오늘날도 유효한가? 십일조를 반드시 출석하는 교회에 드려야 되는가? 십일조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세전, 세후, 또는 생활비에서)? 들어오면서 헌금함에 헌금을 해야 하는가? 아니면 예배 시간에 헌금 바구니를 돌려야 하는가? 헌금자 명단을 주보에 기록해야 하는가? 아니면 기록하지 말아야 하는가? On-Line헌금은 어떤가? 헌금의 종류는 조정될 필요가 있는가? 등에 대한 성경적 원리를 설명해야 한다. 물론 교회마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여러 가지형태를 취할 수는 있겠지만, 설교자(목회자)는 교회의 헌금 제도를 통해 헌금의 본질이 드러나도록 해야 하며, 기회가 되는대로 왜 그렇게 하는지에 대해 성경적 관점에서 설명해야 한다.
이상과 같이 온전한 헌금 설교를 위해서 설교자는 물질관의 정립, 헌금관의 정립 그리고 헌금을 드리는 과정과 자세에 대한 바른 교훈들과 지침들을 필수적으로 헌금 설교에 포함시켜야 하고, 자주 반복적으로 그러한 메시지들을 통해 바르고 온전하게 헌금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전하고 자극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