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의 성격
회중석과 강단의 관계, 청중과 설교자의 관계는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 회중석을 주의깊게 살펴보라
설교자는 회중석에 앉아있는 사람들의 상태를 평가하여 설교를 준비할때나 전달할 때 참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청중이 설교자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설교자가 청중의 상태와 입장을 평가하는 것이다. 어떤 영역에서는 교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청중이나 제자나 학생들의 능력을 평가하는 것이다. 젊은 설교자는 청중을 있는 그대로 보기보다 자신이 원하는 수준으로 보고 설교하는 잘못을 흔히 저지른다. 어린아이에게는 단단단 음식이 아닌 젖을 주어야 한다.
○ 정확한 평가의 필요성
회중을 평가하는 것은 설교자의 의무이자 본분이다. 그러나 충실하고 정확한 평가를 내리도록 주의해야 한다. 이 문제에서 강단이 주로 부닥치게 되는 위험은, 현재 교회에 다니면서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할 뿐 아니라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을 전부 그리스도인으로 가정해 버리는 것이다.
○ 속지 말라
청중도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지 않다는 가정하에 전하는 설교를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참된 신자는 언제나 말씀의 능력을 느끼며, 그 능력으로 자기 죄를 깨닫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믿음은 단번에 얻는 것이지만 또 믿음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단번에 얻는 것이 아니다.
○ 한번의 예배로는 부족하다.
예배에 참석하는 모든 사람이 복음의 능력에 사로잡힐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바이다. 복음은 단지 지적인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진짜 그리스도인이 맞는지 확인시켜 줄 설교를 듣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성경적인 의미에서 분명히 전도예배라고 할 만한 예배를 일주일에 한번씩은 반드시 드려야 한다.
○ 들을 마음이 없는 사람들
청중들이 설교는 반드시 아주 짧게하기 등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연극이나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는 사람들은 오히려 너무 빨리 끝나는 것을 문제 삼습니다. 설교 시간에 제한을 두는 사람은 스스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사실과 자신에게 영적인 생명이 없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자백하는 것이다. 예배실 뒤쪽에 앉은 많은 이들은 잠시 스스로 만족을 한 뒤 집에 가려고 예배에 참석하는 것 같다.
○ 하나님은 인원수도 사용하신다.
교회의 모든 예배에 참석해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다면 인원수를 채우는 것만으로도 큰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라. 성령 하나님께서 다수가 모였다는 사실 자체를 사용하여 사람들의 죄를 깨우치시며 회심케 하시는 역사가 종종 있다. 많은 이들이 의무감으로 예배에 참석하고 그 의무를 마치면 안도감을 느낀다.
○ 권위의 회복
이 모든 것의 결론은 강단에 권위가 있어야 한다는 것, 그것도 큰 권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19세기 옥스포드 운동은 완전히 잘못되었다. 설교자나 목회자를 사람들에게서 멀리 떨어뜨려 놓음으로써 권위를 되찾고자 한 것이다. 19세기 비감독교회들 역시 잘못된 방향으로, 그들은 강단의 권위를 세우는 열쇠가 학식에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강단위 가장 크고 주된 필요는 영적인 권위이다. 설교자가 권위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성령으로 충만해지는 것뿐이다. 설교자가 강단에 선 것은 남들보다 재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주지 않은 특별한 은사를 주셨기 때문이다.
○ 건물의 중요성
회중은 어떤 건물안에 앉아 설교자의 말을 듣는다는 점에서 건물은 중요하다. 건물은 회중이 모인 목적을 성취하도록 도와주기도 하고 방해하기도 한다. 이처럼 건물은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과도하게 중시해서는 안 된다.
바람직한 건물이란? 1) 소리가 잘 전달되어야 한다. 2) 강단은 중앙에 있어야 한다. 3) 강단의 높이는 설교자가 항상 회중을 내려다보면서 설교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강단은 언제나 적절한 높이에 설치되어야 한다.
[출처]
설교와 설교자_(마틴 로이드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