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요청
○ 음악은 시종이다.
우리는 교회의 삶에 터전을 잡고 횡포를 부리는 나쁜 습관들을 끊어 내야 한다. 분위기를 조상하려는 시도는 사실상 진정한 복음 설교를 방해한다. 음악은 시종의 자리에 두어야지, 어떤 의미에서든 모임을 다스리거나 통제하는 자리에 두어서는 안 된다.
○ 영접의 자리
1820년대 찰스 피니는 의지적으로 결단할 것을 촉구하였다. 이것이 구원의 초청이라는 관행의 기원이다.
○ 구원의 초청을 하지 않는 이유
첫째로 사람들의 의지에 직접적인 압력을 가하는 것은 확실히 잘못된 일이다. 사람은 지.정.의로 구성되어 있다. 일차적으로는 정신, 즉 지성에 접근해야 하며, 그 다음으로 감정에 접근하고, 마지막으로 의지에 접근해야 한다. 즉 의지는 지성과 감정의 영향을 받아 작동되어야 한다.
둘째로 의지에 지나치게 압력을 가하는 것은 위험하다.
세번째는 설교와 결단의 요청을 분리해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네번째는 이런 방법론에는 죄인이 스스로 회심하여 결단할 수 있는 능력을 원래부터 가지고 있다는 암시가 들어있다는 것이다.
다섯번째는 이 방법론에 전도자가 성령과 그의 역사를 조절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암시 또한 들어있다는 것이다.
○ 피상적 회개, 피상적 구원
여섯번째는 그것은 피상적인 회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즉각적인 결과가 아니라 중생케 하시는 성령의 역사였다.
일곱번째는 사람들이 스스로 앞으로 나아간 그 행위 때문에 어떻게든 구원을 받으리라는 생각을 하도록 부추기기게 된다는 것이다.
○ 오직 나의 영으로
성령이 역사하지 않으면 진정으로 죄를 깨닫고 중생하여 믿음의 은사와 새 생명을 얻는 일이 일어날 수가 없다. 성령은 항상 그렇게 일해 오셨다.
사도행전 2장 예루살렘 오순절 사건은 이 점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 결단하는 것이 아니라 주께로 피하는 것이다
어떤 죄인도 사실상 스스로 그리스도를 위한 결단을 내릴 수 없다는 것이다. 극도의 무력감과 절망속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하며 그리스도께로 피할수 있을 뿐이다. '더러운 나 생명 샘으로 피하니 씻어 주소서. 구주여, 이대로 죽지 않도록' 그리스도를 양심과 율법의 정죄에서 벗어날 유일한 탈출구요 피난처이자 소망으로 여겨서 그리로 피하지 않은 한 누구도 그리스도께 진정으로 나아갔다고 할 수 없다.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이 누군가 유일한 생명줄로 급히 던져 준 밧줄을 잡기로 결단할 수 없듯이 죄를 깨달은 죄인은 그리스도를 위해 결단할 수 없다. 결단한다는 말은 이런 상황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단기적인 결과와 장기적인 결과를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은 성령이 무슨 일을 하실지 예측할 수 없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초청은 진리 그 자체에 메시지안에 들어 있어야 한다. 설교하면서 계속 진리를 적용하되, 성령의 역사를 기다려야 한다. 초청은 메시지의 일부이며, 반드시 일부에만 머물러야 한다.
[출처]
설교와 설교자_(마틴 로이드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