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는 선교 초기부터 성경의 신적권위에 대한 신실한 믿음에 기초하여 성장하였다. 미신과 무지에서 헤어나지 못하였던 구한말 한국사회, 일제의 식민지배를 받아 주권을 잃고 참으로 암울했던 그 시대에 성경의 무오성에 대한 믿음은 한국교회의 열렬한 선교열정과 눈부신 성장의 밑거름이었다. 진리에 대한 확신은 그리스도인들이 가진 모든 열심의 원천이며 특히 한국교회가 선교 100년 동안 모진 세월을 헤치며 박해와 오해를 견디는 비결이기도 했다.
신사참배를 끝까지 반대하며 순교의 피를 뿌린 한국교회를 생각해보라. 그 저력은 성경이 진리임을 믿는 신앙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자식을 죽인 원수를 용서하고 도리어 양자로 삼아 한국의 성자로 불리는 손 양원 목사의 신앙과 불같은 삶도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신앙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것이었다.
한국교회가 지난 100년간 쌓아올린 성장은 인간의 기교로 된 것도 아니고 탁월한 방법론에 의한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전적으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가르치고 기도한 결과였던 것이다. 1934년 한국 선교 희년 기념식에서 찰스 알렌 클라크(Charles allen Clark)의 증언이 이 주장을 뒷받침한다. 그는 말하기를, “한국의 개신교 역사의 처음부터 성경은 복음화의 가장 지대한 요인이었고,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했다”는 것이다(박용규,「한국기독교교회사」(서울: 한국교회사연구소, 2002), 241.).
그러나 최근 “성공의 우상화”와 “교회성장운동”으로 인해서 각종 프로그램이 진지한 성경연구를 대신하고, 대형화와 대중성이 진리의 척도가 되고 말았다. 또한 성경의 가르침대로 생각하고 일하고 철저히 살아가는 개혁주의 신앙은 체험과 신비경험을 광적으로 추구하는 각종 은사운동에 떠밀려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근래에 들어 전에 없던 새로운 이단이 생겨나고 있고, 대중매체로부터 교회의 부정과 비리가 고발되고 사회로부터 비난받고 있는 상황은 심히 근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서구 유럽의 교회가 몰락한 근대교회사는 2,000년 교회사에서 어쩌면 가장 비극적인 시기라 아니할 수 없다. 혹자는 서구교회의 몰락을 두고 교회가 사회의 요구, 혹은 시대의 조류를 읽지 못하고 신학과 교리만 주장한 탓에 그리되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사회적인 호소력을 갖는 전도와 선교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매우 성급한 판단이며 뭘 모르는 소리다. 서구교회가 몰락한 이유를 신학과 교리를 강조한 것에서 찾는 것은 어쩌면 오늘날 널리 퍼져있는 무차별적인 신학무용론에 그들 자신들이 경도되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감히 주장하건데, 서구교회의 쇠퇴와 종교에 대해서 무관심하게 된 것은 교회 스스로 성경의 진리를 부정하고 현대주의와 타협하였기 때문이다. 즉 17세기 유럽의 계몽주의 이후 등장한 합리주의를 교회가 수용하면서 성경의 모순과 비과학성, 비역사성이 강조되었다. 성경은 다양한 고대 문서의 짜깁기로 간주되었다.
예를 들면 슐라이에어마흐(F. Schleiermacher)는 성경의 편집설을 주장했고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과 부활을 부정했고 성경의 초자연적인 기적을 믿지 않았다. 벨하우젠(J. Wellhausen)은 문서설을 주장하며 모세 오경이 전승 혹은 여러 자료들의 혼합물이라고 주장했다. 슈바이처(A. Schweitzer)는 신약 성경의 모든 이적을 부정했고, 성경의 본질을 윤리적인 가르침이라고 보았다. 이와 같이 합리성에 기반을 둔 자유주의 신학은 성경의 신적권위를 과감히 부정하고 합리주의적 관점에서 기독교 신앙을 재해석하였다.
서구교회의 쇠퇴는 자유주의신학을 수용한 결과이며, 자유주의신학 외에 다른 요소는 지엽적인 것일 뿐이다. 부활을 부정하고 하나님의 부성을 강조하면서도 심판을 부정하고 모든 초자연적인 기적을 부정하는 자유주의신학은 필연적으로 목회의 파탄에 이르고 말았던 것이다.
존 머레이(John Murray)가 말했듯이 신학적 자유주의는 분명히 모든 면에서 기독교와 다른 종교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바로 이 자유주의신학을 받아들인 탓에 서구교회가 몰락했다고 해야 옳다.
17세기의 개혁파 신학자 윌리엄 에임스(William Ames)가 「신학요강」의 서문에서 신학에 관해 정의를 다음과 같이 내린 적이 있다: “신학이란 하나님을 위해 살기 위한 교리이다.” 신학은 단순히 사변의 산물이 아니다. 신학은 우리들이 가진 신앙의 체계적인 진술이다. 따라서 어떤 신학이 문제가 있다면 언제나 병든 신앙에서 시작된 것이다. 신학은 언제나 신앙에서 나오는 것이고 그 신앙이란 성경에 근거하는 것이다. 신학에 대한 무관심은 언제나 성경의 바른 가르침이 무엇인지 엄정하게 묻지 않는 태도를 필연적으로 수반하게 된다.
박혜근 교수: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목회학 석사, 필라델피아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박사학위를 취득한 다음 2003년부터 칼빈대학교에서 12년간 조직신학을 가르쳐왔다. 미국에서는 필라델피아교회 담임목사를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