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파 예배는 단순하지만 질서 있고, 하나님 중심적 예배이다. 개혁파 예배는 하늘에서 어느 날 갑자기 떨어진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오랜 과정을 통해서 형성되었다는 점이 강조되어야 한다. 이 말은 개혁파만의 고유한 어떤 특정 예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활절을 예를 들어 보자. 서방교회와 동방교회는 서로 다른 날을 부활절로 지킨다. 그런데 개혁교회는 일반적으로 서방교회가 오랫동안 정하여 지켜왔던 날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이 점에서 우리 개혁교회는 동방교회가 아니라 서방교회에 이미 속해 있다. 종교개혁은 ‘오직 성경’이라는 이름으로 이런 세세한 부분까지 동방교회가 옳은 지 서방교회가 옳은 지에 대해서 신학적 논쟁을 하지는 않았다. 즉, 개혁교회는 상당부분 서방교회의 전통을 그대로 따르면서 그 교회가 성경의 가르침에서 벗어난 부분만을 개혁하려고 하였을 뿐이다. 따라서 예배에 있어서 개혁교회는 공교회성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개혁교회는 ‘오직 성경’뿐만 아니라 ‘규범적 원칙’도 받아들였기 때문에 무엇보다 성경의 가르침에 충실한 예배를 추구하였다. 어떻게 보면 모든 교회는 자신들의 예배야말로 가장 성경적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심지어 이단들도 똑같이 말한다. 결국 이들과 개혁교회를 구분하는 결정적인 요소는 개혁교회가 성경의 모든 핵심 가르침을 요약 정리한 신앙고백서이다. 개혁파 교회는 바로 이 신앙고백서에 근거하여 성경적 예배의 이상을 실천하고자 하였고, 그 결과 몇 가지 개혁파 예배의 특징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성례전 중심에서 설교 중심으로
중세 로마 카톨릭 교회의 예배는 기본적으로 성례전 중심의 예배이다. 세례와 성찬만을 성례로 인정한 개신교와는 달리 로마교회는 견진, 혼례, 고백, 서품, 종부 성사와 같은 비성경적인 예식도 성례로 인정하였다. 예배는 특별히 미사로 불리는 성찬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예배당 안에는 성경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수많은 그림이나 조각들로 가득 차 있었다. 반면에 설교는 거의 행해지지 않았는데 설교에 대한 강조도 없었을 뿐 아니라 설교를 할 수 있는 성직자도 거의 없었다. 따라서 그 당시의 예배는 기본적으로 ‘보는 예배’였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될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 중세 사회는 교육이 부재한 시대였기 때문에 일반 성도들이 글을 읽을 수 없었고, 성경의 교리에 대해서도 설교를 듣는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종교개혁은 본질적으로 복음의 회복이었다. 1517년 마르틴 루터가 95개조 명제문을 발표했을 때, 그 첫째 명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처음으로 외쳤던 ‘회개’에 관한 것이었다.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이 복음은 성례전을 통해서 가장 잘 전달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지만 종교개혁은 이 기존관념에 도전하여 설교야 말로 복음을 가장 효과적이고 확실하게 전달할 수 있는 외적 수단이라고 주장하였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는 사도 바울의 선언은 복음에 관하여 종교개혁이 굳게 붙든 진리였다.
복음에 대한 새로운 이해는 예배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거의 없어지다 시피하거나 성찬에 보조적인 역할을 하였던 설교가 이제는 예배에 있어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를 위해서 개혁교회는 제대로 된 설교를 할 수 있는 목사 양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어떻게 보면 칼빈 선생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성경의 가르침을 체계적으로 요약하여 정리한 기독교 강요가 아니라 그 가르침을 실제적으로 교회에 전파할 수 있도록 수많은 설교자를 양성하기 위하여 설립한 제네바 아카데미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설교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그 설교를 전파할 설교자가 없다면 설교의 중요성은 하나의 구호에 그치고 말았을 것이다.
종교개혁을 통해서 설교가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자 기존의 보는 예배는 듣는 예배로 전환하게 되었다. 그 점에서 종교개혁은 무엇보다 믿음에 있어서 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는 사실이 지적되어야 한다. 로마 교회는 맹목적인 믿음(implicit faith)도 믿음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참된 이해가 없더라도 교회의 가르침을 무조건 받아들이기만 해도 그것을 효과적인 믿음이라고 보았으나, 종교개혁은 그와 같은 믿음은 믿음이 아니라고 못을 박았다. 그렇기 때문에 개혁교회는 성도들로 하여금 예배 시간에 설교를 통하여 복음을 이해시켜서 확신시키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말씀에 대한 이해는 성찬에 대한 올바른 이해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전까지만 하더라도 성찬은 화체설로 인하여 미신적인 우상숭배나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종교개혁으로 인하여 성도들은 분명한 말씀에 대한 이해 속에서 주님의 살과 피를 받게 되었고 이것은 믿음의 강화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 점에서 우리는 종교개혁이 추구한 예배를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종교개혁의 설교중심의 예배는 성찬을 배제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여야 한다. 개혁가들이 원한 것은 주변부에 자리잡고 있던 설교를 중심에 위치시키고자 하였을 뿐이다. 그리하여 성찬을 올바르게 자리매김하여 설교와 더불어 온전한 예배를 이루기를 원하였다. 실제로 칼빈의 경우 이 이유 때문에 성찬을 매주 실시하기를 간절히 원하였다. 결국 성찬을 자주 시행하는 것은 종교개혁의 정신뿐만이 아니라 초대교회의 예배 전통을 현재에 실현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고려신학대학원 교수진이 공동집필한 [개혁주의를 말하다]에 실린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