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직자 중심에서 회중 중심으로
종교개혁으로 인해 예배에 있어서 새롭게 나타난 또 하나의 현상은 회중 중심의 예배이다. 이 점에 있어서 웨스트민스터 예배모범이 가장 처음에 예배에 임하는 회중의 태도를 강조하고 있는 것은 눈여겨 볼만하다.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예배는 철저하게 성직자들의 예배였다고 할 수 있다. 예배에 참석한 평신도들은 그야말로 구경꾼이었다. 그들은 성직자가 제단에서 하는 성례전적 행위들을 하는 것을 구경하고, 이따금 묻는 질문에 기계적으로 짧은 말로 “아멘”이라고 할 뿐이다. 더 큰 문제는 모든 예배 의식이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라틴어로 진행이 되었다는 것이다. 기도할 때도 찬송을 할 때도 라틴어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무지한 성도들은 그냥 지켜 볼 뿐이었다.
찬송은 회중들의 찬송이 아니라 성가대의 찬송이었다.
언어가 라틴어로 되어 있을 뿐 아니라 곡조도 대단히 어려워서 훈련된 성악가들만이 부를 수 있었다. 따라서 찬송 시간은 예배 시간이 아니라 음악 공연을 듣는 시간이나 다를 바가 전혀 없었다. 종교개혁은 이 점에서 찬송의 혁명을 이루었다. 가사도 모국어로 번역하였을 뿐만 아니라 곡조도 회중들이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곡조로 바꾸었다. 그 결과 예배 시간에 남녀노소 차별없이 모든 회중들이 함께 자신들의 마음을 담아서 진심으로 찬송을 부를 수 있게 되었다.
중세 시대의 예배에서 회중들이 소외된 것은 성찬식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로마교회에서 공식적으로 받아들여진 화체설로 인해 포도주는 예수님의 실제 피로 간주되었고, 실수로 쏟아질 가능성 때문에 포도주 잔은 회중들에게 분배되지 않았다. 회중들은 떡은 받아먹을 수 있었지만, 포도주는 성직자가 자신들을 대신해서 마시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이것은 명백히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님이 보여주신 실례와 상충되었지만 로마교회는 떡과 포도주의 차이점을 부정함으로 떡만 받아도 충분하다고 주장하면서 자신들의 전통을 변명하였다. 이것은 잘못된 신학이 어떻게 잘못된 예배로 이어질 수 있는 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각 나라의 언어로 예배를 드리도록 허락한 동방교회에 비해서 라틴어 예배만을 고집한 로마교회는 겉으로 보기에 교회의 가시적 일치를 이룰 수 있었으나, 그것을 위한 성도들의 희생은 너무나 큰 것이었다. 분명한 이해가 없는 예배 속에서 로마 교회의 성도들은 서로 간의 내적인/실제적인 연합은 거의 없었다고 보는 것이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종교개혁은 예배에 있어서 내적이고 실질적 연합이 없을 때 외적인 연합이 사상누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이 모든 비성경적 전통에 대해서 종교개혁가들은 예배가 일부회원만이 아닌 모든 회원들의 예배가 되어야 한다고 확신하였다. 이 점을 확실히 하기 위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21장 3절은 예배에 있어서 모국어의 필수성을 강조하고 있다. 더 나아가 모국어 예배가 실제적으로 가능하기 위해서 개혁가들은 성경을 번역하였다. 이 성경 번역은 종교개혁이 이룬 가장 위대한 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 성경은 이제 일부 성직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국어를 읽을 수 있으면 누구나 어디에서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글을 읽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모국어로 진행되는 예배를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예배는 교회에서만 드리는 것이 아니라 가정에서도 드릴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웨스트민스터에 모인 교회 지도자들은 가정예배를 성도들에게 격려하기 위해서 [가정예배를 위한 예배모범(The Directory for Family-Worship)]도 따로 작성하였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 갈 것이 있다. 설교 중심의 예배가 성찬을 없앤 것이 아니듯이 회중 중심의 예배가 성직자의 중요성을 없앤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종교개혁은 만인 제사장 교리를 주장하였지만 이것을 극단적으로 발전시켜서 제세례파와 같이 만인 목사설로 발전시키지는 않았다. 누구나 성경을 읽을 수 있지만, 개혁교회는 공예배에서 성경을 봉독하는 사람을 목사로 제한시켰다. 설교는 목사의 고유한 직분으로 규정하여 아무나 설교를 할 수 없도록 하였다. 찬송 역시 모두가 부를 수 있도록 하였지만 목사의 지도를 받게 하였다. 그리하여 종교개혁은 모든 예배가 말씀이 지배하는 예배가 되도록 하였다.
고려신학대학원 교수진이 공동집필한 [개혁주의를 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