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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lom aleikhem !

שָׁלוֹם עֲלֵיכֶ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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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6-12 22:24
칼뱅주의에 대한 오늘날의 태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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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창암
조회 : 1,476  

(3) 칼뱅주의는 가장 순전하고도 확고하게 표현된 복음이다. 우리는 복음을 말할 때 죄와 구원도 말한다. 복음은 구원론적 개념이기에 죄와 죄로부터의 구원을 내포한다. 복음과 상관없는 경건이 있을지도 모른다. 더 나아가서 그 개념의 극치에 경건은 있지만 복음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죄인에게는 그렇지 않다. 복음은 죄인의 마음에서 형성되기 때문에 그 정점에는 경건이 있다. 복음주의는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 의존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복음은 구원이 필요함과 이 필요성을 깊이 인식하는 것, 이 필요와 관련하여 우리가 전적으로 무능력함을 깊이 인식하는 것, 이 필요를 채우기 위해 우리가 하나님께 철저히 의존해야 함을 인식하는 것을 암시한다. 우리는 자신의 가슴을 치며 하나님께 부르짖었던 세리에게서 그 전형을 발견한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우리는 여기서 그가 스스로 구원을 하는지, 하나님의 도움으로 구원을 얻는지, 하나님이 구원하시도록 뭔가를 시작하는지 물을 필요가 없다. "나는 죄인입니다. 나의 모든 소망은 구원자 하나님께 있습니다!"라는 고백이 중요할 뿐이다. 이것이 칼뱅주의다. 다시 한 번 언급하지만, 이것은 칼뱅주의와 유사한 것이나 칼뱅주의에 대한 접근법이 아니다. 이것은 칼뱅주의가 생명력 있게 표현된 것이다. 마음의 이러한 태도가 발견되고 직접적이고 명확한 용어로 표현되는 곳이라면 칼뱅주의는 어디든지 존재한다. 이러한 지성과 마음의 태도가 아주 조금이라도 멀어지게 된다면 그 지점에서 칼뱅주의는 불가능해진다.

칼뱅주의는 구원론적인 측면에서 볼 때 우리의 영혼이 구원을 얻기 위해 우리가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함을 인식하고 표현하고 옹호하는 것이다. 그와 관련한 (원죄에 관한 교리, 좀 더 명쾌하게 말하자면 전적 타락에 관한 교리와 선에 대한 전적 무능력에 관한 교리, 그리고 선택에 관한 교리, 좀 더 비판을 받는 말로 표현하면 예정과 유기에 관한 교리 등) 소위 난제들도 그저 이 사실을 의미할 뿐이다. 칼뱅주의는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를 아무렇게나 대하지 않는다. 칼뱅주의는 구원에 관한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오직 하나님께만 돌리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칼뱅주의자 말고도 이와 동일한 위대한 고백을 기꺼이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그들은 그 고백을 조건부로 하거나, 본성과 은혜를 혼동하는 빈약한 이론으로 아주 힘들게 그 고백을 한다. 그들은 여기저기에 논리적인 함정을 남겨둔다. 논리적 함정과 다른 평범한 함정 사이에는 차이점이 있다. 여행자들은 단지 평범한 웅덩이에 빠질 뿐이다. 하지만 단순한 사람은 그 단순한 지성으로 인해 논리적 함정에 빠질 수밖에 없다. 칼뱅주의는 논리적 함정의 여지를 남기지도 않고 어떤 조건을 내걸지도 않는다. 칼뱅주의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한 이론과 관련되지 않는다. 칼뱅주의는 마음을 다해 감사함으로 구원과 구원의 전 과정이 하나님께, 오직 하나님께 있다고 고백한다. 칼뱅주의는 구원을 완성시키는 분이 하나님, 오직 하나님이라고 고백한다. 이 장엄한 고백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칼뱅주의로부터 벗어난다. 하나님의 구원 과정에 (그것이 은혜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이나 은혜를 더하는 능력을 말하는 것이든, 은혜를 수용하기 위해 영혼을 일깨우거나 이미 받은 은혜를 사용하는 것이든) 인간의 공로나 행위, 성향, 능력을 기초나 원인, 근거로 집어넣는다면 칼뱅주의와 결별하는 셈이다.

칼뱅주의는 모든 구원을 소유하신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에만 영혼을 맡긴다. 그리고 칼뱅주의는 그러한 특성을 지니기 때문에 칼뱅주의가 왜 어떤 시대에는 번영하고 왜 우리 시대에는 침체를 경험하는지 조사할 필요가 거의 없어 보인다. 칼뱅주의는 이 땅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죄 인식이 죄인 된 인간의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는 것과 같다. 그것은 하나님 인식이 하나님께 의존하는 피조물의 지성에서 사라지지 않는 것과 같다. 그것은 하나님이 하늘에서 사라지지 않는 것과 같다. 칼뱅주의의 번영은 유신론과 경건, 개신교의 번영에 묶여 있다. 왜냐하면 칼뱅주의는 유신론과 경건, 개신교가 순전하게 이해되고 표현되는 것은 어렵다. 일반적으로 그 순전함을 얻기가 어렵지만 그것을 완벽하게 유지하는 일은 훨씬 더 어렵다. 그렇다면 이것들은 어떻게 순전하고 정확하게 유지될 수 있을까? 이 세상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사상의 흐름을 생각해보라. 그것들은 우리가 사건의 결과나 사물의 발생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손길을 이해하는 일을 둔하게 하거나 흐리게 한다. 나는 무신론적 자연주의나 유물론적 진화론, 범신론적 진화론처럼 하나님 인식을 완전히 없애는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오만하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라. 자신의 자유를 높이고, 자신의 힘을 자랑하고, 다른 사람의 뜻에 지배 받기를 거부하는 일을 생각해보라. 죄인이 자신의 본성을 근본적으로 선하다고 생각하고 자신에게 정당하게 요구되는 것을 모두 행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뿌리 깊은 자만을 보라.

그런데 우리가 이 세상에서, 특히 이 시대에 다음과 같은 것을 입증하는 것이 이상한가? 곧 우리가 하나님의 결정적인 손길을 수용하고 그분에 대한 절대 의존을 인식하고 우리 자신을 죄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우리가 최소한의 것도 할 수 없음을 확신하는 일을 활발하게 유지하는 것뿐만 아니라 생생하고 지배적인 상태로 유지하는 것도 어렵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이런 모든 것은 다음과 같은 것을 나타내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곧 칼뱅주의가 오늘날 이 세상에서 겪는 모든 어려움을 설명하고, 우리가 모든 일에서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손길을 완전하게 인식하는 것을 지속하기가 어렵고 우리가 더 높은 힘에 의존한다는 우리의 인식을 강하게 유지하기가 어렵고 죄와 무가치함, 무능함을 깊이 느끼는 것을 보존하기가 어렵고, 본성의 능력에 반하여 성공과 물질적인 번영이라는 자긍심으로 가득한 죄의 새롭게 인식된 힘을 인정하는 물질적인 시대를 나타내는 것 말이다. 만일 칼뱅주의의 침체가 시실이라면, 그것은 다음과 같은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곧 우리 시대에 물질적인 업적이 증가하는 가운데 하나님에 대한 통찰이 흐려지고, 경건한 정서가 어느 정도는 더 이상 우리의 삶에서 결정적인 요인이 되지 못하고, 자신의 능력으로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데 익숙한 사람들과 자신이 왜 폭풍에 휩쓸려 하늘로 올라가지 않는지에 대한 이유를 알려는 것을 포기한 사람들에게는 구원을 얻기 위해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는 복음적 태도가 익숙하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어떤 사람들에게 이러한 추측은 분명하지는 않아도 일반적인 사실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이러한 추측은 오늘날 칼뱅주의가 겪을지도 모르는 침체가 어떠한 성격의 것인지를 전체적이고도 바르게 설명해 주는 것 같다. 일원론적 진화론이든 다원론적 실용주의든 오늘날 철학에서 유신론은 그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물질적인 삶의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질 때 경건한 삶은 그 순전함을 주장할 수 있는 기회를 거의 지니지 못한다. 개인의 능력과 가치를 끊임없이 주장하는 곳에서 개신교는 너무도 쉽게 뒤안길로 밀려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칼뱅주의가 어떻게 융성할 수 있을까?

물론 우리는 칼뱅주의의 침체에 관하여 좀 더 자세한 설명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려 할 때 우리는 그저 전체적인 상황에서 특정 측면들을 꼬집어내는 것 말고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실제로 이 특정 측면들 중에서 하나를 꼬집어냄으로써 전체적인 상황을 분명하고도 핵심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 그러므로 이 특정 측면들 중에서 한 가지를 잠시 살펴보는 것은 가치가 있다.

벤자민 B. 워필드의 '칼뱅'에서 발췌(395-409p)

벤저민 B. 워필드(Benjamin Breckinridge Warfield) : 네덜란드의 아브라함 카이퍼와 헤르만 바빙크와 함께 세계 3대 칼빈주의 신학자 중 한 사람으로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1887년부터 1921년까지 교수로 재직한 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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