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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6-17 22:50
‘죽음’과 ‘죽어감’에 대한 칼빈의 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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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창암
조회 : 1,615  

칼빈은 “죽음에는 탈출구가 없으나, 죽음이 끝이 아니다. 그리고 우리가 죽음을 향해 갈 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들은 실상 참된 삶을 향해 가는 것이다”고 말하고 있다.

1. 서론

“나의 몸은 후패하고 날마다 나빠져 간다. 죽음을 생각하기 위해 먼 곳을 갈 필요가 전혀 없다”고 칼빈은 말하였다. 칼빈은 1554년에 했던 욥기 설교에서 자신은 죽음으로부터 10 시간 거리에 있다고 말하였다. 이 말은 죽음이 항상 그와 동행하였다는 것을 분명하게 해준다.

이 글에서 먼저 칼빈의 개인적인 사람에서 죽음이 어떻게 하나의 실재가 되었는지를 간단히 묘사해 볼 것이다. 그리고 그의 주석들과 설교들에 근거해서 기독교적인 방식으로 죽음을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그의 견해를 요약해 보도록 하겠다. 실제로 죽음이 실제 삶에 다가 올 때 이런 죽음관이 어떻게 기능하는 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칼빈의 삶에서 죽음에 대한 경험(Death in Calvin’s life)

칼빈도 죽음을 일상적이고 어디에서나 경험하는 실재로 경험하였고, 그가 이런 경험을 표현하는 것을 잘 보면 그것이 얼마나 실존적이었는지를 잘 알 수 있게 된다. 칼빈은 인생을 하나님께서 우리를 트랙에 놓으시고 작은 장애물 코스를 뛰어 넘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잘 조직해 놓으신 짧은 경주”(a short race organized by God)라고 말한다.

우리는 매순간 어디서나 수 없이 많은 죽음을 직면한다. 칼빈은 삶이란 아주 깨어지기 쉽고 죽음은 매순간 도처에서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잘 의식하고 있다.

3. 칼빈 사상에서의 죽음 이해

『기독교강요』에서 죽음이 따로 다루어지고 있는 유일한 곳은 미래의 삶에 대한 묵상(the meditatio future vitae)에 대한 부분인데, 이는 영생의 맥락과 직접 연결되어 제시되고 있다.

성경과 특히 사도 바울이 이 세상에서의 비참함과 죽음 이후의 삶의 영광에 대해서 말하는 바를 언급한 후에 “죽음의 날과 종국적 부활의 날을 기쁨을 가지고 기다리지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진보를 보이지 않는 것이다”는 것 이외의 다른 결론에 이르지 않는다.

죽음의 신학적 차원을 다루는 구절에서 칼빈은 경험적 차원도 표현해 내고 있다. 그는 『영혼 수면설에 대한 논박』(Psychopannychia)에서 죽음은 죄에 대한 형벌이며, 따라서 죽음은 온전한 절망을 가져 온다고 진술한다. 즉, 죽음은 진노하시고 형벌하시는 하나님께서 (죄인인) 우리에게 부가하신 것이다.

4. 칼빈의 편지들에 나타난 죽음

죽음 앞에서 감정을 전혀 드러내지 않고,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장사하며, 아버지 하나님의 손에서 오는 것은 다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는 칼빈주의자의 이미지와 연관해서 우리들은 그런 태도들 시발시키고 보급시킨 사람은 분명히 칼빈이 아니라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칼빈의 편지는 죽은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눈물로 가득 차 있다는 것도 보아야 한다.

칼빈의 편지들에서는 하나님의 전능한 힘에 뿌리를 내리고 전혀 요동하지도 감정적으로 흔들리지도 않으면서 그 어떤 것도 그저 스쳐 지나가게끔 하는 강한 칼빈과 같은 것은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들은 슬픔에 사로잡혀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칼빈을 보게 된다.

5. 칼빈의 죽음

칼빈은 지금부터 450여년전인 1564년 5월 27일 저녁에 죽게 된다. 그 다음 날인 1564년 5월 28일 주일 오후 2시에, 그가 요청한대로 늘 사용되던 나무 관에 실려서 일반 묘지(Plein Palais)에 안장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참석한 장례식은 그 관과 같이 깨끗하고 침착하게 치뤄졌다. 모든 것을 지나치게 하지 않는다는 그의 원칙은 이 장례식에서도 잘 지켜졌다. 그러나 장례식은 결국 몸을 무덤에 묻는 것이지, 그 인격 전부에 대한 것은 아니다.

칼빈은 사람들이 “하늘”(heaven)에서 서로 알아 볼 것이라고 하면서 루터에게 보낸 편지에서 칼빈은 그들이 “하늘”에서 함께 있으면서 조용히 논의를 계속할 수 있으리라고 쓴 바 있다. 같은 말을 멜랑흐톤에게 한 적도 있다. 그와 함께 하늘에서 잔치를 벌이기 원한다고 하였다.

칼빈은 “죽음에는 탈출구가 없으나, 죽음이 끝이 아니다. 그리고 우리가 죽음을 향해 갈 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들은 실상 참된 삶을 향해 가는 것이다”고 말하고 있다.

6. 요약과 결론

이로부터 결론은 다음 같은 것들이다:

1. 칼빈의 작품에는 예정과 선택의 주제가 죽음의 침상에서의 고뇌와 의심의 원인으로 나타난 적이 없다.

2. 칼빈은 죽음에 직면하여 슬픔의 감정을 가지는 것을 자연스럽고 성경적인 것으로 여겨 적법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죽음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었다.

3. 죽음에 대해 슬퍼하는 것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태도가 어떠해야 한다고 칼빈이 말한 것과 칼빈의 실제적 목회적 조언과 죽음과 죽어 감에 대한 그 자신의 실제 모습 사이에는 일종의 긴장이 있다.

4. “칼빈의 생애와 신학에서 죽음”이라는 주제는 그 동안 칼빈 연구에서 많이 간과해온 분야이다.

이런 네 가지 결론은 칼빈 자신의 말로 가장 잘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 “하나님께서 근자에 나의 아내를 고향으로 그에게 데리고 가셨기에 나는 반쪽 사람일뿐입니다”(CO 20.394).

헤르만 셀더하위스(Herman Selderhuis) / 이승구 교수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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