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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lom aleikhem !

שָׁלוֹם עֲלֵיכֶ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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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4-08 22:17
기독교 강요 요약시리즈(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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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창암
조회 : 1,414  

제16강 믿음

1. 믿음은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구원의 유일한 길은 그리스도다. “그리스도의 손을 잡지 않고 하나님의 도성에 이를 자 아무도 없다.”고 어거스틴이 말한 것 같이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며, 우리가 가려는 목적지며, 사람으로서 우리가 걸어가는 길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믿는다.(벧전 1:21) 하나님은 가까이 가지 못할 빛이시므로(딤전 6:16),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이 우리 마음에 비추어야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있다.(고후 4:6)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빛이시므로 오직 그 분을 따르는 자만이 어둠에 다니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는다.(요 8:12) 그러므로 생명의 원천이신 하나님께 가는 길은(시 36:9) 오직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 그 분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다.(요 14:6)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분의 본체의 형상이시므로(히 1:3), 오직 그 분 자신과 그 분께서 행하신 일을 알고자 힘써야 하며(고전 2:2), 그 분만을 증언해야 한다.(행 20:21) 왜냐하면 우리는 그 분을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聖徒)이기 때문이다.(행 26:17,18) 믿음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우리에게 알리심이며(눅 10:22) 그리하여 우리가 그 분을 아는 것이다.(기독교강요 제3권 2.1)

믿음이란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천주교처럼 교회를 높여 그 권위와 판단에 맹종하는 것이 믿음이 아니다.(기독교강요 제3권 2.3) 믿음의 근거는 무지가 아니라 지식이다. 이러한 지식은 하나님 자신과 그 분의 뜻을 아는 생명의 지식이다.

천주교가 주장하는 느낌에 따라 교회의 지시대로 이끌리기만 하면 아무 것도 알지 못해도 잘 믿을 수 있다는 맹목적 신앙개념은 허구다. 아는 것이 없이 믿는 것은 맹목적 인정(認定)이지 참 신앙이 아니다. 사도께서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10)라고 말씀 하셨을 때 이는 하나님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확실히 인정하여 아는 것을 의미한다.(기독교강요 제3권 2.2)

그러므로 아무 것도 모르는 가운데 믿는 맹목적 신앙이 먼저 있고 이후에 배워서 그리스도를 알게 되는 것이 아니다. 연약한 믿음도 참 믿음이다. 하나님은 각 사람이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기를 원하신다.(롬 12:3) 처음부터 무지하든지 알고 믿든지 하는 것이지 모르고 믿은 후 어느 순간 알게 되는 것이 아니다. 비록 구체적으로 어떤 사실을 다 알지는 못한다 해도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경건한 정서(情緖, pius affectus)에 감화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인정하는 사람이 참 믿음의 성도이다.(기독교강요 제3권 2.4,5)

그리스도를 아는 참 지식이 없이는 구원에 이를 자 아무도 없다. 복음은 믿음의 말씀에 대한 좋은 교훈 즉 믿음의 가르침으로서(딤전 4:6)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구원에 이르는 길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복음은 율법의 의를 성취하신(롬 10:4; 갈 3:25)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말씀이다. 복음 가운데 우리는 그리스도께 듣고 가르침을 받음으로써 그 분을 배우게 된다.(엡 4:20,21) 듣는 것이 믿는 것으로 표현된다. 들어서 배우는 것이 곧 믿는 것이다.(사 54:13; 요 6:45) 그리하여 선지자들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생명에 이를 것을 선포하였다.(사 55:3; 시 95:7) 이렇듯 말씀을 기록함은 듣게 함이요, 들어서 믿게 함이다.(요 20:31) 믿음과 말씀은 마치 태양과 그 빛이 분리될 수 없듯이 나눠질 수 없다.

“믿음을 떠받쳐 지탱하는 기초는 말씀이다. 말씀이 없다면 믿음은 쓰러진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에서 말씀을 제거한다면 믿음은 결단코 남을 수 없다.”

믿음은 복음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롬 1:5; 빌 1:3-5; 살전 2:13)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계신 것과 그 분의 어떠하심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어떤 분이 되고자 하시는지 즉 우리를 향한 그 분의 뜻을 깨닫게 된다. 믿음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에 대한 지식이다. 오직 이 지식은 그 분의 말씀에서만 얻게 된다. 모든 하나님의 말씀은 거역될 수 없는 진리를 계시한다.

믿음은 하나님의 어떠하심과 그 분의 말씀 곧 진리를 인정하고 확신함이다. 믿음은 진리에 대한 감화이다.(기독교강요 제3권 2.6) 하나님의 말씀은 그 분께서 진리이심과 사랑이심을 계시한다. 시편 기자는 누차 주님의 긍휼과 진리를 함께 노래했다.(시 25:10; 36:5; 40:40-41; 89:14, 24; 92:2; 98:3; 100:5; 108:4; 115:1; 117:2; 138:2) 이는 그리스도를 유일한 보증으로 바라봄에 있었다. 그러므로 믿음의 바른 정의를 다음과 같이 할 수 있다.

“믿음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굳고 확실한 지식이다. 이 지식은 그리스도 안에서 거저주신 약속의 진리에 기초하는 것으로서 성령을 통해 우리 마음에 계시되고 우리 심장에 새겨진다.”(기독교강요 제3권 2.7)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에 기초하며 그 위에 지탱되며 유지된다. 이 약속은 그리스도의 순종 ‘예’로 성취되었다.(고후 1:20) 모든 약속은 하나님의 사랑을 증언한다. 그 사랑이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되었으며 완성되었다. 값없이 주신 은혜의 약속을 바라보지 않는 믿음은 견고하게 설 수 없다. 그 약속을 그리스도 안에서 붙들지 않는 믿음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전혀 인도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오직 ‘믿음의 말씀’으로(롬 10:8), 그 진리이자 성취이신 그리스도께 부착(附着) 되어야 한다.(기독교강요 제3권 2.29-32)

2. 믿음은 성령의 감화이다.

믿음은 지각적인 인식이 아니라 성령의 조명(照明)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확신하는 것이다. 믿음은 성령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롬 1:5) 그러므로 두뇌가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믿어서 의에 이르게 된다.(롬 10:10) 믿음은 그리스도를 생명의 원천으로(요 4:14; 7:38) 받아들이는 것이다.(요 6:29) 믿음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 기초하며 ‘그 분의 영’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어서 경건한 정서에 잠기는 것이다.(기독교강요 제3권 2.8,36)

“믿음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심을 아는 지식과 그 선하심이 실재함에 대한 확실한 감화이다.”(기독교강요 제3권 2.12)

오직 거듭나는 사람들은 ‘썩지 않는 씨’로 된 것이다.(벧전 1:23)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오직 선택된 사람들에게만 단번에 영원히 부여된다.(살전 1:4,5; 딛 1:1) 선택된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믿음이 아무리 연약하다고 하더라도 확고한 보증과 인침이 주어진다.(엡 1:14; 고후 1:22)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심지 않으신 믿음은 없으며(마 15:13), 참 믿음을 가지고 종국에 파선(破船)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딤전 1:19; 3:9) 오직 양자(養子)의 영을 받은 사람만이 주의 선하심을 맛보게 된다.(롬 8:15; 갈 4:6)

하나님의 선하심은 오직 아들의 사랑으로써 역사한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사랑의 영(靈)을 주심으로써 그 영(靈) 부음 받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게 하셨다.(롬 5:5) 그러므로 사랑과 함께하는 내실적(內實的) 신앙 외에 사랑에 이르지 못하는 형식적(形式的) 신앙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다.(갈 5:6) 믿음은 오직 사랑에서 나오는 거짓이 없는 믿음 한 가지 밖에 없다.(딤전 1:5) 로마 가톨릭은 사랑의 공로가 함께 역사하는 믿음 외에 사랑과는 무관한 초보적인 믿음이 따로 있다고 주장하나 이는 전혀 비성경적이다.(기독교강요 제3권 2.9-12)

믿음은 경건(敬虔)에 관한 순수한 가르침이다. 믿음은 그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는(골 2:3) 그리스도를 소유하는 것이다. 믿음은 성경의 전체 교훈을 아우른다. 오직 믿음에 의해서 기도가 드려지고, 구원의 전체 과정이 이루어지며, 영원한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게 된다.(기독교강요 제3권 2.13) 믿음을 지식이라고 할 때 이는 육체의 감각적인 지식을 초월한다.

마음이 믿음에 도달한 때에도 그 믿는 바를 감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감화되어 그 감화의 확실성에 이를 때 감각한 것보다 더 많이 이해하게 된다.(고후 5:7) 믿음의 지식은 이해가 아니라 확실성에 있다. 그러므로 믿음이 자주 지식 혹은 인식으로 불릴 때(엡 1:17; 4:13; 골 1:9; 3:10; 딤전 2:4; 딛 1:1; 몬 6: 벧후 2:21; 요일 3:2), 그 진리는 합리적인 논증이 아니라 성령의 감화로 확정된다.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다.”(고후 5:7)

그리스도를 모시고, 그 분의 사랑 안에서 터가 굳어지고, 그 분의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깨달아 충만한 은혜에 이름이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엡 3:17-19) 그러므로 믿음의 참 지식은 우리의 이해력이 아니라 우리가 성령의 감화력에 의지할 때에만 온전히 수납된다.(기독교강요 제3권 2.9-14) 믿음은 성령의 은밀한 사역을 통하여 이르는 확실하고 확고한 감화이다.

믿음으로 말씀의 객관적 확실함에 대한 주관적 확신에 이른다. 성경에 대한 이러한 확신은 항상 믿음으로부터 기인한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수납하고(시 12:6; 18:30; 잠 30:5), 그 분의 선하심을 의심치 않고 신뢰하게 된다.(골 2:2; 살전 1:5; 히 6:11; 10:22) 그러므로 믿음에서 확신이 생기고, 확신에서 담대함이 생긴다고(엡 3:12) 사도는 말한다.(기독교강요 제3권 2.15)

성령님은 믿음의 저자이며 원인이다. 성령의 조명이 없으면 아무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에 이를 수 없다. 성령은 우리를 정결케 하며 동시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채운다. 그리고 아는 바대로 지키며 살게 하신다.(딤후 1:14) 성경은 우리가 믿음으로써 성령을 받는다고 한다.(갈 3:2) 이는 성령과 함께, 성령으로성령의 조명이 없으면 아무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에 이를 수 없다. 성령은 우리를 정결케 하며 동시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채운다. 그리고 아는 바대로 지키며 살게 하신다.(딤후 1:14) 써, 믿음을 하나님의 고유한 선물로서 받게 된다는 뜻이다.(기독교강요 제3권 2.33) 그리고 우리는 오직 성령으로써만 하나님의 깊은 것을 통찰할 수 있다.(고전 2:10-16)

성령이 우리의 내적 교사로서 우리의 마음을 비추지 않으면 아무도 하늘의 비밀을 알만한 날카로운 시력을 얻을 수 없다.(기독교강요 제3권 2.34) 믿음은 사람의 지혜가 아니라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는 것이다.(고전 2:4,5) 믿음의 역사는(살후 1:11) 하나님의 역사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자신의 아들을 주심으로써 그 아들의 영을 받은 자마다 모든 좋은 것들에 참여하게 하심에 있다.(기독교강요 제3권 2.35)

우리가 받은 영(靈)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영으로(고전 2:12) 우리가 그 분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신다.(롬 8:16)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도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의 사역을 다 이루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보좌 우편에서 부어주시는(행 2:33) 보혜사 성령 곧 그리스도의 영을 받는다. 오직 그리스도의 영을 받은 사람만이 그리스도의 사람으로서(롬 8:9) 자신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며(요 14:17), 그리스도께서 자신 안에 사심을 안다.(요일 3:24; 4:13) 그 사심은 영원하다.(기독교강요 제3권 2.39)

3. 믿음은 삶이다.

진정한 성도는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은 견고한 감화로 흔들림 없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깨닫고 그 분의 사랑과 관용을 확신한다. 그리고 이러한 확신 가운데 하나님과 화평을 누린다.(롬 5:1) 믿음의 최고 요체는 하나님 앞에서 화평을 누리고 그 분의 약속을 신뢰하는데 있다.(기독교강요 제3권 2.16) 믿음은 여호와를 온전히 바라며(시 27:14) 그 분의 말씀 가운데 요동치 않는 것이다. 우리는 아직 희미하게 본다.(고전 13:12) 그러나 믿음으로써 확실하게 하나님을 본다. 작은 창을 통해서 들어온 빛이 넓은 집을 비추듯이 성령 가운데 복음을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본다. 그리하여서 우리가 주의 형상으로 변해간다.(고전 3:18)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 5:4)

믿음의 빛은 결코 꺼지지 아니하니 재(灰) 아래서도 명멸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이 마르거나 죽지 않듯이 사탄도 믿음이 거하는 속마음의 자리에 까지는 내려오지 못한다.(기독교강요 제3권 2.17-21). 하나님 앞에서의 두려움과 떨림이 있다고 하나 그것이 믿음의 화평을 해치지는 못한다. 오히려 성도는 경건한 두려움으로 구원을 이룬다.(빌 2:12) 경건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敬畏)와 함께 그 분의 은혜에 대한 감미로움과 달콤함을 누리는 것이다.(기독교강요 제3권 2.22,23,26-28)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그리스도 자신께 속한 모든 선한 것들에 뿐만 아니라 그 분 자신께 동참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안에 계신다. 그리하여 우리가 그 분과 함께 연합체가 된다.(기독교강요 제3권 2.24)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한 자녀는 그 분 안에서 그 분과 함께 소망하며, 사랑한다. 소망은 바라는 것들 곧 믿음의 실체(實體)이다.

그러므로 소망이 없으면 믿음은 무너진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소망하니(롬 8:24), 이는 믿음 자체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히 11:1) 믿음과 소망은 같이 있으되(벧전 1:21) 오직 사랑과 함께 역사한다.(기독교강요 제3권 2.41-43)

Dr. 문병호 목사:

고려대 법학과와 총신대 M.Div. 美 홀랜드 웨스턴신학교 Th.M. 英 에든버러대학교에서 '칼빈의 기독론적 율법 이해'로 신학박사(Ph.D.) 유학 중에 미국 칼빈신학교와 스위스 제네바대학교 종교개혁 센터에서 연구. 현재는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조직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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