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따라 구하라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니라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안위하는 것이요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만일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통역하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바울은 여기서 방언이 무엇이며 예언이 무엇인가를 밝힌다.
1. 방언은 무엇인가?
"방언을 말하는 자는.....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한다"고 하였다(2절 하). "영으로 비밀을 말한다" 함은 무슨 뜻인가? 이에 대하여 두 가지 해석이 있다. (1) 영적 은혜로(기적적으로) 남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외국말을 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2) 듣는 자들이 깨달을 수 없는 영적 언사로서 일정한 내용이 있는 말이라고 한다.
위의 해석이 옳든지 간에 그것이 이적적으로 되어지는 말인 것만은 틀림없다. 22절에서도 그것을 가리켜 "표적"이라고 하였으니 '이적'이라는 뜻이다.
2. 교회시대에도 방언이 있는가?
교회시대란 계시시대(사도시대)와 구분된 명칭이다. 사도시대에는 사도의 증표인 이적과 계시가 있었다. 고후 12:12에 의하면, "사도의 표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 "고 한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시기 위하여 터를 닦는 의미에서 이적이 수반된 사도적 전도로 역사하셨다. 그 시대의 이적이나 계시는 실상 주 재림 때까지 장성할 교회의 뿌리와 터전을 이룬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바울은 사도의 사역을 가리켜 터 닦는 일로 비유하였다. 고전 3:11에 말하기를 "이 닦아 둔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라고 한다. 이 말씀의 뜻은 사도가 그리스도를 전파할 계시와 능력을 받아 그리스도 사건(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 곧 복음을 해명한 것을 의미한다. 교회는 이 터 위에 서게 되는 것이다(엡 2:20; 계 21:14).
이와 같이 생각할 때에 사도적 사역은 나무에 대하여 뿌리와 같은 것이다. 뿌리는 한 번만 일정한 곳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서 돋아 나온 나무는 그 목질(木質)에 있어서 뿌리와 같으나, 그 모습에 있어서는 뿌리와 다른 점이 많다. 하나님은 변치 않으시며 그 능력도 여전하시지만 그의 사역의 경륜과 방법은 사도시대에는 그러했고, 또 교회시대에는 이러하다. 그가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인도하실 때에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먹이셨으나,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온 다음에는 만나 내리시기를 그치셨다. 그렇게 되었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변하신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제 우리는 교회시대에 대하여 생각해 볼 때에 이는 마치 뿌리에서 돋아난 나무와 같으니, 그 자라나는 도중에 다시금 뿌리의 형태로 자체를 거듭 나타낼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와 같이 교회는 그 뿌리를 의미하는 사도적 사역을 거듭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이 점에 있어서 기억할 것은 교회시대에는 사도의 증표를 보여 주는 이적은 없다고 할지라도 특별 섭리 정도의 이적은 있다는 것이다.
특별 섭리라는 것이 계시 사건에 속한 것은 아니지만 역시 하나님의 특수 간섭이기 때문에 놀라운 일이다. 예를 들면 병자를 위하여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은혜로 고침이 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예수님과 사도들이 행한 이적과는 다르다. 가령 병고침 받은 예를 들어 말하면, 예수님과 사도들이 취급한 병자는 모두 치료되었다. 그러나 교회시대의 신유라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고, 위하여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은혜로 치료되는 자도 있거니와 치료되지 않는 자도 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과 사도들의 이적으로 고침을 받은 병은 재발하는 법이 없으나, 교회시대의 신유는 그 병이 재발되는 경우도 있다.
위의 두 가지 사실은 교회시대의 신유의 특징들을 보여 준다. 이러한 특징들이 있게 된 원인은 하나님의 능력이 교회시대에는 약하여졌다는 것이 이니다. 하나님의 권능은 역시 역사한다. 그러나 그 사역 경륜의 이와 같은 차이점은 특별히 교회의 터가 되는 계시시대(예수님과 사도들의 시대)의 표준성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우리의 신앙은 언제든지 예수 그리스도와 및 사도적 전도 내용(성경)을 표준으로 삼아야 한다. 만일 교회시대에 있어서 역시 어떤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표준적인 이적을 행한다면, 그들도 역시 성경 말씀과 같은 권위있는 계시도 받는다고 할 것이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예수님과 성경만 기초로 한 기독교의 성격이 무너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날의 방언을 사도시대 곧 계시시대에 나타났던 방언과 같은 수준의 것으로 생각할 수 없다. 현대의 방언운동에 많은 그릇된 것들이 드러난다. 그런 것들은 조작적이고 번쇠하고 심지어 기만적인 것이다. 이런 방언들은 금지되어야 한다.
다만 방언을 함이 자기 자신에게 유익한 줄 알고 방언하는 이가 있다면, 그는 고전 14장의 교훈을 지켜야 될 것이다. 그것은 공적인 자리에서는 방언을 사용하지 말 것이며(고전 14:19),
박윤선 박사의 '개혁주의 교리학'에서 발췌(357-360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