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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lom aleikhem !

שָׁלוֹם עֲלֵיכֶם


 auto
 
작성일 : 18-03-04 23:47
요가와 기독교인(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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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창암
조회 : 1,664  

"…침묵하라. 눈을 감아라…그대가 그대의 중심으로 깊이 움직여 들어가면, 그대는 거대한 정적과 미묘한 침묵, 커다란 평온을 느끼기 시작할 것이다. 그대가 중심에 도달하면…이 중심이 우주와 연결시켜 준다. 이 문을 통해서 그대는 우주로 들어갈 수 있고, 존재와 하나가 될 수 있다…."

마헤리쉬 요기 같은 구루는 만트라(mantra: 영적 스승이 신참자에게 은밀히 주기도 하는 외견상 무의미하게 보이는 산스크리트어)의 반복적 암송을 강조하기도 한다.
이 밖에도 만다라(mandala: 매우 정교하게 구성된, 종종 매혹적으로 장식된 아름다운 원형 모양으로서 실재의 완전성에 대한 상징)에 대한 묵상도 수련법의 하나로 권장된다.
요가 역시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힌두교도들이 깨달음의 길로 가기 위한 하나의 수련법이다.
특별히 요가는 참선이나 명상, 묵상과는 다르게 브라만과의 연합을 가능하도록 촉진시켜 주는 모든 신체적, 정신적, 영적 훈련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이교적인 종교적 수련법이 어떻게 현대인들에게, 특별히 세상문화를 분별해야 할 우리 기독교인들에게조차 아무런 거부감 없이 일상의 삶 속에서 행해지고 있는 것일까?
여기에는 각자의 입장에 따라서 여러 가지 이유야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현실적인 이유는 요가가 종교적 수련법이라는 실체를 감추고 현대인의 건강과 무병장수의 욕망을 충족시키며, 살을 빼거나 또는 정신적 스트레스를 해소시킬 수 있는 하나의 건강 프로그램으로 접근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사탄은 때론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여 접근해 와서는 결국 영혼을 병들게 한다(고후11:14).
따라서 이제 그 실체를 안 이상, 우리 기독교인은 건강을 이유로 다른 종교의 수련법에 참여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옳지 못한 일로 여겨야 한다.
특별히 요가 수련법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서가 아니라 인간 자신의 수련에 의해 구원의 길에 도달하고자 하는 반기독교적 구원론과 맞닿아 있다면 우리 기독교인은 더더욱 경계해야 될 일이다.
따라서 “건강을 위해서인데 그게 뭐 그리 대수냐”라는 주장은 위험한 육신 중심한 신앙관이다.
오히려 성경은 분명 (살전5:22)“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말씀하고 있다.

미국 남침례교신학교 알버트 모흘러 총장도 미국에서 불고 있는 요가 열풍에 대해 “요가는 기독교 신앙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모흘러 총장은 ‘미묘한 육체, 크리스천은 요가를 해야 하는가’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요가는 처음부터 끝까지 육체에 대한 이해로 일관한다. 믿는 자들은 육체에 대한 명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해야 한다”고 하고 있다.

그런데 만약 ‘크리스천 요가’란 것이 가능하다면, ‘크리스천 기운동’, ‘크리스천 타이치(太極)’, ‘크리스천 펑슈이(風水)’, ‘크리스천 최면술’, ‘크리스천 점성술’, ‘크리스천 초월명상(TM)’도 생겨날 수 있다.
심지어는 ‘크리스천 레이키(靈氣)’, ‘크리스천 염불’, ‘크리스천 강신술’도 받아들여지고 용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크리스천 요가’란 용어는 ‘그리스도+벨리알’이란 공식과도 같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벨리알은 조화를 이룰 수가 결코 없다.


오늘날 한국 사람들이 주로 배우고자 하는 요가는 「하타요가」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몸으로 만의 하타 요가를 배우고자 할 때에도 우리는 결코 거기에만 머무를 수 가 없다.
그 기본 및 궁극적인 정향성은 결국 영성(靈性) 혹은 종교성(宗敎性)이기 때문이다.

“요가란 단순하게 몇 가지 동작만을 가르치거나 체형을 교정하는 기술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건강과 영혼을 맑게 만드는 영적(靈的)인 귀감이 되는 진정한 스승(구루)이 되시기를 권유하는 것입니다”(홍익요가연구원)

“요가는 모든 종교의 핵심인 명상을 수행의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붓다, 예수, 마호메트, 선승 등의 깨달음, 계시, 신통력 등이 모두 요가 즉 명상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요가 코리아)

“요가는 의타적 자세가 아니고 스스로 괴로움의 원인을 찾아내어 새롭게 배우고 깨치는 자기 믿음의 길이고 자신과 주변에 대한 이해의 길이다. 요가는 예속된 종의 길이 아니고 자유로운 주인의 길이며, 저 세상으로의 도피적 태도와 사후 지옥에 대한 공포의 태도가 아니고, 이 세상에 대한 탐구와 인간 스스로 해결을 짓는 창조적 성장의 길”이다.(요가라이프)

그런데 예수님을 요가 수행자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예수가 「성서」에 기록되지 않은 몇 년간을 하타 요가를 배우는 요기로서 인도의 카슈미르에서 지냈다고 하는 것이다.
인도 내에서 일부 힌두교도들, 특히 시바파 사두들은 예수가 환영으로부터 자유롭고 초능력을 사용한 것은 요기로서 훈련을 한 결과라고 말한다.
즉 바다 위를 걷고, 크고 작은 기행을 벌이며, 물을 포도주로 변하게 한 것 등이 그가 요가 수련을 통해 그 부수적 산물인 초능력을 갖게 된 증거라는 것이다.
게다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가 부활한 이야기는 예수가 요가 수행자였다는 전설을 더욱 부채질했다.
그리고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은 것이 아니라, 죽은 것처럼 호흡 조절법을 통해 심장박동을 멈추게 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또 하타 요가에서처럼 예수는 육신을 정신적인 성숙을 위한 도구로서 사용했다.
예수는 그를 따르는 신도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고행을 함으로써 그 모든 죄들을 태워버렸다.
이러한 주장들에 따르면 예수는 3일간의 깊은 수면 후에 제자들에게 잠깐 나타났다가 인도의 카슈미르로 가서 그곳에서 여생을 마쳤다는 왜곡된 주장을 하고 있기도 한다.

이상의 내용에서 우리는 예수를 다른 종교창시자처럼 요가 명상가로 보는 점, 인간의 죄성을 부인하는 점, 자력구원을 내세우며 하나님을 불필요한 존재로 만든다는 점 등이 그리스도교 신앙과 정면으로 대치되는 요소들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따라서 제대로 된 신앙인이라면 자신 안에 저런 사유방식들과 그리스도교 고유의 신앙이 조화를 이루며 공존할 수 있다고 여기고 통합을 도모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는 영적 만용이다. 그리고 반드시 차이점들이 따라와서 충돌하고 말썽을 부리게 되어있다.
그러므로 기독교에서 혼합주의(syncreticism)는 절대 금물인 것이다.

이 단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본다면 요가의 모체인 힌두교 신앙 안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다.
알려져 있듯이 힌두교는 기본적으로 3억 3천만여 신을 숭배하는 다신교를 배경으로 생겨났다.
힌두교는 승려를 정점으로한 엄격한 계급주의(카스트제도)와 나중에 불교의 기본개념이 된 업(業), 윤회(輪廻), 그리고 고행(苦行) 등을 핵심교리로 삼고 있는 종교이다.
따라서 기독교 신자가 자신 안에 왜곡된 신앙요소를 받아들이게 된다면 그 때는 문제가 안 될 수 없다.

육신의 건강을 추구하고 자신을 육성하는 것은 좋은 일이나 악한 영에 의해서 조정을 받는다는 것은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각자 마음속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이나, 자신의 능력을 일깨우는 것도 정상적인 방법을 찾아서 해결해야지 악한 영의 힘을 빌어서 일시적인 안정을 찾는다고 한다면 그것은 사상누각에 불과한 것이므로 피해야만 한다.

요가가 가진 운동으로서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이 요가를 무조건 받아들이기에는 위험한 요소가 많다. 따라서 요가가 가진 종교성을 인지하고 기독교 세계관에 배치되는 사상에 대해 주의해야 한다.

현대 교회는 예배 기능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와 함께 하기 위해서 교회건물을 문화센터공간으로서 제공하고 있는 교회들이 많아지고 있다. 즉 컴퓨터방, 도서관, 상담실, 취미교실 등으로 교회가 지역사회에 개방되어 지역주민들이 교회를 부담 없이 이용하므로 열린 교회로 나가고 있는 분위기다. 그러나 문제는 교회 안에서 이런 것들은 자신도 모르게 이방 신들과 접촉하는 통로를 열어 놓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염려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한국교회 곳곳에서는 새로운 지역선교의 수단으로 문화센터가 주목받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그러나 교회문화센터를 어떻게 복음과 연결지어야 할지도 고민해야지 악한 영에게 들어와 활동할 수 있는 멍석을 깔아준다는 것은 분명 잘못된 것임을 경계하고 막아내야 한다.

@ 강경호 목사(한국기독교이단목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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