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많은 개혁파 목사들은 복음주의 협의회(NAE)나 복음주의 신학회(ETS)나 세계복음주의연맹(WEA) 등 복음주의에 관계하고 있습니다. 복음주의는 종교개혁 이후 로마 천주교회와 구별하여 개신교회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어 왔으나, 20세기 중반 미국에서 신복음주의 운동이 일어난 후 오늘날 복음주의는, 조지 말스던의 말과 같이, 신복음주의적 의미를 가지고 사용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복음주의의 특징은 교제와 활동에 있어서 자유주의를 배제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을 처음으로 대변했던 인물은 미국의 풀러신학교 초대 교장이었던 해롤드 오켕가이었습니다. 그는 풀러신학교 교장 취임시 성경적 분리를 주장하는 근본주의자들을 비난하면서 자기 신학교는 대교단들의 목회자들을 훈련시킬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는 1948년 풀러신학교 강연에서 ‘신복음주의’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하였습니다. 그는 1957년의 한 소식지에서 “신복음주의는 그 전략을 분리에서 침투로 바꾸었다”고 말했고, 또 후에 그는 “신복음주의는 분리를 거절함에 있어서 근본주의와 달랐다”고 회고하였습니다.
1942년 미국복음주의자협회(NAE)가 조직되었고, 1947년 미국의 풀러(Fuller)신학교가 설립되었습니다. 1951년 20개국의 복음주의자협회들이 모여서 세계복음주의협의회(WEF)를 만들었습니다(2001년 세계복음주의연맹[WEA]로 개명함). 1956년 크리스챠니티 투데이(Christianity Today)지가 창간되었습니다. 이것들은 모두 신복음주의의 대표적 기관들이 되었습니다.
자유주의의 포용
오늘날 복음주의 교회들의 자유주의 포용의 대표적 예는 빌리 그레이엄의 전도 활동입니다. 빌리 그레이엄은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지만, 그의 전도 집회들에서 자유주의적 교회협의회의 후원을 공공연히 받았습니다. 그는 로스앤젤레스 전도집회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명확히 부정한 제랄드 케네디 감독을 명예대회장으로 임명했습니다. 데이빗 클라우드는 빌리 그레이엄의 문제점에 대해, 성경이 무오(無誤)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변호하지 않는 점,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이 기독교 신앙의 필수적 부분이 아니라고 말하는 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는 구원을 강조하지 않는 점, 지옥이 불붙는 고통의 장소라고 믿지 않는 점, 구원받지 못한 이방인들이 지옥에 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점, 신학이 더 이상 자기에게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다고 말한 점, 이단적인 로버트 슐러의 복음에 대한 잘못된 개념들에 동의한 점, 그리스도를 부정하는 자유주의자들을 칭송한 점, 수천명의 회심자들을 배교적 자유주의 교회들에 넘겨준 점 등을 열거했습니다. 컬럼비아 국제대학교 명예총장 로벗슨 맥퀼킨은 빌리 그레이엄이 근본주의자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 즉 천주교인, 헬라정교인, 자유주의자에게 따뜻한 에큐메니칼 포용주의적 신념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신복음주의 기관인 미국복음주의자협회(NAE)는 처음부터 자유주의적 대교단들의 지교회를 회원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성경의 무오와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 교리를 포함한 역사적 기독교 신앙을 부정하는 마틴 마티는 1992년 미국복음주의자협회에서 강연하였고 또 1998년 그 협회 회장 돈 아규는 그 협회가 창설된 이래 최초로 자유주의적 미국교회협의회(NCC) 총회에서 연설하였습니다. 세계복음주의협의회(WEF) 회장 데오도르 윌리암스는 WEF 뉴스레터 1993년 8월호에서 “세계교회협의회(WCC) 소속 교단 내의 복음주의자들은 그대로 머물러 복음주의 입장을 취하고 그 교회 안에서 복음주의적 영향을 끼치려고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개혁을 포기하고 권징을 포기하는 포용주의적 정신입니다.
신복음주의 대변지인 크리스챠니티 투데이지 1998년 9월 7일자는 레이몬드 브라운의 신약개론을 높이 추천하였습니다. 그러나 브라운은 예수께서 전지(全知)하신 하나님이 아니고 오류를 범하였다고 말한 자유주의적 천주교 신부입니다. 그는 WCC에서 활동적이고 1971년 미국 뉴욕의 자유주의적 유니온 신학교에서 처음으로 종신직 천주교 교수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