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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lom aleikhem !

שָׁלוֹם עֲלֵיכֶ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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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1-18 23:15
은사주의 실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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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창암
조회 : 1,736  

(2) 지금도 초대교회 성령의 초자연적 기적들이 지속된다는 주장 오순절주의자들과 은사주의자들 사이에 ‘미스터 오순절’로 알려진 데 이비드 듀 플레시스(David du Plessis, 1905-1987)는 기적의 시대는 결코 끝 나지 않았다고 믿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초대교회는 성령의 작품이 었다. 성령은 변하시지 않았다. 성령은 초대교회에서 최초의 지도자들과 성도들을 통해 이루신 일을 모든 세대에 반복하기를 원하신다. ”성경에 비추어볼 때, 그의 잘못된 견해 는 오순절주의자와 은사주의자 대다수의 생각을 반영한다. 은사주의자들은 사도시대에 나타난 모든 초자연적인 기적들(예를 들어 표적, 이적, 병 고침, 예언, 귀신 쫓아냄 등)은 지금도 지속되어져야 한다. 20세기 후반에 왕성하게 활동한 은사주의 운동의 계열인 ‘빈야드 운동’의 창시자 존 윔버(John Richard Wimber, 1934–1997)는 기적, 환상, 방언, 예언, 신유 등은 복음의 본질적인 수단이라고 확신한다. 그는 이러한 것들이 없는 기독교는 서구적이고 물질주의적인 사고방식으로 더럽혀진 무기력한 기독교라고 하였다. 실제로 표적과 기적은 제3물결 은사운동의 전도방법의 핵심 골자이다. 이 운동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표적과 이적은 성령의 나타남의 자연스런 현상이기에 성도라면 반드시 경험해야 하는 것이라고까지 말한다. 그래서인지 은사주의자들이 주최하는 집회나 모임 에서는 언제나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슈가 된다. 많은 교회들에서 때로는  설교보다 기적 경험을 간증하는 순서를 더 중요하게 취급하기도 한다.

비평 / 성경에는 수많은 기적들에 관한 기사가 나온다. 하지만 은사 주의자들은 성경에서 언급된 기적과 자신들이 말하려는 기적과의 본질적인 차이점을 간과하고 있다. 성경에서 말하는 기적은 하나님의 특정한 계시를 선포하기 위한 수단으로 특별한 사람에게 허락하시는 일종의 계시의 방편이다. 흔히 사도들이 경험한 초자연적인 기적들은 그들에게 사도의 표로서 주신 것들이다.(고후 12:12) 이 기적들은 그야말로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과 관계된 것이며, 그것을 행하는 사람은 초인적인 힘과 결과를 경험하게 되었다. 그러나 은사주의자들이 집착하는 기적이란 대개 이상하고 단순한 해프닝이거나 우연의 일치거나 어디서나 경험할 수 있는 반복적인 사건일 때가 많다.

일례로 오늘날 기적적인 신유치료의 가능성을 주장하는 은사 주의자들은 많지만 대부분 그들이 말하는 신유에 대한 증거는 검증이 불 가능하다. 미국의 유명한 전문 마술사인 제임스 랜디(James Randi)는 수 십 명의 신유 치료자들과 그들이 제시한 사례들을 면밀하게 조사한 후, 한 권의 책을 발간했다. 그에 따르면 단 한 사람의 신유 치료자도 그에게 자연적인 건강회복이나 심신증적인 개선에 대해 의학적으로 확인된 신유를 한 건도 제시하지 못했다고 양심고백을 하였다. 신유 치료자들로부터 병을 고쳤다는 사람들은 대개 기능성 질환(두 통, 소화 불량, 가슴 통증 등 일시적으로 경험하는 병이나 심인성 질환 (심리적인 부담이나 스트레스로 겪는 마음의 병)과 관련된 것들이다. 즉 예수님 과 사도들이 행한 기적처럼 기질성질환(기관 자체가 병이 들거나 물리적으로 심각하게 손상되거나 기능이 상실되어 나타나는 병)이 정상인의 상태로 완전하게 치 료되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다는 말이다. 정말 완벽하게 병을 고칠 수 있는 신유의 은사가 확실하다면, 왜 신유 치료자들은 언제나 비공개적인 장소에서 일부 사람을 위해서만 그 일 을 행하는가? 사랑의 짐을 나누어져야 할 그리스도인으로서 육체의 고통 을 호소하는 이들을 위해 공개적인 장소에서 그 일을 나타내 보이지 않 는가? 오히려 초자연적인 은사의 가능성을 남발하는 자들은 자신들의 거 짓이 탄로 날 때에는 가차 없이 상대방의 믿음 부족으로 책임을 돌린다. 기독교 역사를 되돌아보더라도 초자연적 은사에 집착하는 이들은 신비주의 계열의 이단이나 불건전한 사이비기독교 단체들이었다. 지금까지 은사주의자들이 강조하는 초자연적인 은사와 관련해서 병 고침의 한 가 지 예를 들었는데, 이 말을 오해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지금은 이적을 행할 수 없으시다 거나 병을 고치시는데 관심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히브리서의 말씀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능력은 무한 하시고 또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시다. 그러므로 오늘날 에도 이적이 존재하는가의 문제는 하나님의 전능성과 불변성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선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의지의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사도들 이후로는 초대교회에 나타난 것과 동일한 이적 기사의 은사를 허락하지 않으셨다는 것이 개혁주의자들의 믿음이다. 어느 곳에서나 항상 같은 이적이 발생한다면 이적의 특이한 징조와 가치 는 상실하게 된다. 이것이 이적에 관한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이다. 신약 성경의 예수님과 사도들이 행한 기적을 살펴보라. 그 이적들은 오직 사람들에게 구원의 메시지의 유효성을 확신시키는 수단으로서만 사용되었다. 사도 바울의 경우 멜리데 섬에서 이적을 행하고서(행 27:8-10), 로마에 도착한 이후에는 이적을 나타내는 그의 능력이 확실하게 감소되었다. 그 실례로 에바브로디도가 빌립보에서 거의 죽게 되었으나 사도 바울은 그를 낫게 할 수 없었다.(빌 2:25-30) 뿐만 아니라 병든 드로미모의 병을 고치지 못한 채 그를 밀레도에 두고 와야만 했다.(딤후 4:20) 신약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모두 완성됨에 따라(계22:16-19), 하나님이 초대교회의 일부 사도들에게 주셨던 이적의 은사는 점차적으로 철폐되어진 것이 분명하다. 성도의 구원의 확실성의 여부는 더 이상 이 적을 나타내는 은사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의 수단으로서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확인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은사의 불필요함 때문이기 보다는 그 보다 더욱 확실하 게 복음을 증거 하는 은혜의 수단으로서 말씀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성 경에 충실하고 하나님의 경건을 추구하는 성도들은 결코 초자연적인 표 적과 기적에 집착하기 보다는 구원의 능력이 되는 성경 말씀을 읽는 것 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일에 착념해야 한다.(딤전 4:13) 

(3) 성도는 성령체험과 성령세례의 증거로 방언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 성경을 자기들의 생각에 좋은 대로 해석하는 은사주의자들은 구원 이후 체험으로서의 성령세례를 강조한다. 이들은 그리스도인들이 회심할 때는 오로지 제한된 의미에서만 성령을 받는다고 가르친다. 그래서 그들 은 그리스도인들이 초자연적으로 성령의 능력 속에 잠겨 더 높은 수준의 신앙생활로 나아가려하고 더 높이 도약하려 한다면 성령세례를 구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 체험에는 방언이 수반되고 그 결과 새로운 영적 동기 부여와 능력이 나타난다고 한다. 오순절 신학을 철저히 연구한 프레데릭 브루너(Frederick Dale Bruner)는 오순절주의자들의 성령세례에 대한 주장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1) 성령세례는 거듭남과는 ‘구별되고’ 거듭남에 ‘뒤이어 일어난다.’ 2) 성령세례는 맨 처음 방언의 표적에 의해 입증된다.   3) 성령세례는 ‘간절하게’ 구해야 얻을 수 있다. 이렇게 은사주의자들의 성령세례에 대한 주장은 구원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사역을 구별한다. 이처럼 대부분 은사주의자들은 ‘성령은 세례로 모든 신자를 예수 그리스도께 인도(회심)하시지만, 예수 그 리스도는 세례로 모든 신자를 성령께 인도(오순절 체험)하시지는 않는 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성령세례를 잘못 이해한 은사주의자들인 그들은 성령 체험, 즉 중생 후 성령세례의 체험을 강조한다.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은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환상, 꿈, 신유 등)을 경험하게 되는데, 그중에서도 방언 은 성령 체험의 시금석이다. 구원받은 이후에 성령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은사주의자들에게 있어서 방언을 하는 것은 진짜 성도임을 증 명하는 필수적이고 규범적인 종교적 경험인 것이다.

비평 / 은사주의자들의 중생 이후의 성령세례 교리는 성경에 대한 심각한 해석적 오류로부터 기인된 것이다. (이는 그들이 성경대로 성령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 스스로가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은사 주의자들이 차후 세례 교리를 뒷받침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는 유일한 본 문은 사도행전에 국한되어 있다. 사도행전을 제외한 어떤 성경에서도 이 교리를 증명할 수 있는 성경적 근거를 찾을 수 없다. 그렇다면 사도행전 은 이 교리를 뒷받침해주는 근거가 되는가? 그렇지 않다. 사도행전은 교회가 창설되던 초창기만의 기록을 담고 있다. 이 시기에 나타난 예외적인 기적과 은사는 특별한 계시 전달의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이것은 특별한 시대의 특성이지 결코 모든 시대에 나타나야 할 전형이 아니다. 이처럼 은사주의자들은 사도행전에서 성령을 받는 어떤 일관된 패턴 을 찾아 그것을 모든 시대에 적용 가능한 규범으로 삼으려 하지만 교회 의 성령사역에 대한 올바른 기준을 가르치고 있는 사도행전은 오히려 변 화무쌍한 성령의 주도적인 사역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따라서 성경이 가르치지 않는 것을 자기들의 생각대로 주장하고 가 르치는 은사주의자들이 성령을 받은 이후에 또 다른 성령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규범화 하는 것은 너무나 일방적이고 단편적인 주장이다. 사도행전에 나온 오순절 성령강림은 유일하면서도 독특한 하나님의 구원 사적 섭리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성령의 강림과 더불어 나타나는 외적 표징들은 그리 본질적인 것이 아니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표적과 이적들은 오순절 성령강림시의 초반에만 강하게 나타난다. 앞서 언급한 예처럼 사도행전의 후반으로 갈수록 발생 빈도가 점점 줄어들다가 각 지역 교회시대에는 은사주의자들이 강조하여 주장하는 성령의 표적과 기사가 차츰 사라져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성령세례는 성경대로 성령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인된 성도의 구속과 구원에 있어 모든 그리스도인의 필수적이고 단회적인 구 원의 체험이다.(고전 12:13) 왜냐하면 성령세례는 모든 성도가 중생할 때 반드시 체험하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영원한 생명과 연합시키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은사주의자들은 성경의 가르침과 달리 자기들 의 잘못된 생각대로 성령세례가 중생 이후의 구원의 특별한 체험이라는 주장은 비성경적이다. 더구나 은사주의자들이 성령세례를 오직 성령이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이며, 또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요 1:33) 성령체험 으로 인도하시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성령세례를 받은 증거로서 사도시대와 같은 방언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성경을 잘못 해석 하는 것이다.

또한 주로 인간적인 소원만을 담아 감정에 호소하여 강조 하는 은사주의자들의 이 같은 주장은 삼위일체 하나님과 성경에 대한 무 지와 억지가 낳은 최악의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성경 어디에도 ‘성령세례’라는 단독적인 표현이 없고, 성령을 세례 주시는 분으로 언급한 성경 구절이 없다. 성경에는 오직 ‘성령으로 세례를 주신다.’는 말만 있다.(요 1:33) 이 표현의 원어의 정확한 의미는 ‘성령에 의해’ 혹은 ‘성령과 함께’ 받는 세례라는 뜻이다. 즉 처음 성도가 성경대로 성령에 의해(또는 성령과 함께) 회심 할 때에 죄에 대하여는 죽고 생명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사는 세례를 받는 다는 것이다. 성경대로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는 이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요 1:33)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보내어진 성령에 의해, 혹은 성 령과 함께 세례를 받을 때에 비로소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된다. 그 러므로 성령세례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 생명을 성령의 역사로 받는 하나님의 구원에 관한 영적 개념을 좀 더 분명하고 포괄적으로 전 달하는 개념이지, 결코 육체의 바램과 관련된 종교적 체험의 성격이라고 말할 수 없다. 따라서 창세 전에 예정하신 성부 하나님의 뜻대로 성경대로 성령 안 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회심을 한 성도에게 아직도 성령세례를 받지 못했다는 은사주의자들의 주장은 성경대로 성령을 받은 성도와 성령이 함께 하시지 않는다는 해괴한 논리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대로 중생한 사람은 누구나 이미 성령세례를 받은 것이다. 왜냐하면 성령으로 세례를 받지 못한 사람은 결단코 진정한 중생에 이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이라는 성경적인 확실한 증거는 누구든지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고전12:3)

은사주의자들의 차후 성령세례 교리의 심각한 오류를 한 가지 더 지적한다면, 이 교리는 무엇보다 오직 믿음으로(Sola Fide) 얻는 구원을 부정한다. 이들은 시종일관 더 나은 구원의 조건으로서 성령세례를 받기 위해 인간적인 열심과 공로를 촉구한다. 이는 구원을 이룰 수 있는 근거가 사람 편에 있다는 펠라기우스주의나 알미니안주의와 다를 바 없는 주장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만이 구원을 이룬다는(Sola Gratia)의 종교개 혁의 교리에 전적으로 배치되는 비성경적 견해이다. 성령세례에 관한 은사주의자들의 맹점을 인정한다면 그들이 한사코 강조하는 방언 은사의 유효성과 지속성에 대해서도 의문을 가질 필요가 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오순절 강림 사건과 같이 초대교회 시대의 방 언의 은사와 꼭 같은 은사는 성경기록의 완성과 더불어 종결되었다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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