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사도시대의 방언이 중단되었다는 증거가 무엇인가?
1) 사도시대의 방언은 다른 초자연적인 기적과 마찬가지로 그 시대의 교회와 성도를 구별 짓는 특별한 표징으로 한정되었기 때문이다. 신약 성경에서 방언은 오직 사도행전과 고린도전서에만 언급되어 있다. 신약 시대의 마지막 기적이 일어난 시점(대략 주후 58년경) 그 이후부터 사도 요한이 계시록을 기록한 시점(대략 주후 96년-98년)까지 방언에 관한 아무런 언급이 없다. 특히 방언에 관해서는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잠깐 언급한 것 외에는 나머지 열 두 편의 서신에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 았을 뿐 아니라 신약의 다른 저자들(베드로, 야고보, 요한 등) 역시 방언에 대해서는 시종일관 침묵하고 있다. 초대 기독교역사도 이 같은 사실을 반증한다. 사도시대 이후로 초대 교회시대(속사도와 교부시대, 1세기-4세기)에 작성된 정통교회의 기록물 중에 방언에 관한 구체적인 언급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다만 방언은 성령에 대한 잘못된 이단 사상을 가르친 몬타누스의 몬타니즘과 같은 신비주의 성령론을 강조하는 기독교 이단이나 사이비들의 전유물처럼 취급 되곤 하였다. 이후의 역사에서도 자칭 방언 현상에 몰입하는 사람들은 이단적이거나 광신적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비정통적인 집단에 속한 자들 이 되었다는 것이 교회사가 증거 한 가르침이다.
2) 성경은 방언의 은사보다 더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 권면한다. 은사주의자들은 방언의 은사를 최고로 여기지만, 사도 바울은 방언은 주의해야 할 은사로 여겼다. 사도시대 방언은사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그럼에도 방언에 대한 과도한 관심과 집착은 늘 교회에 문제를 일으켰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통해 그 심각성에 대한 실 제적인 교훈을 주고 있다. 고린도교회에서 문제가 된 방언은 무아지경의 황홀경에 빠져 자기가 누구인가를 잊어버리고, 또 방언을 하고 있는 자 기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정신 나간 사람의 헛소리처럼 횡설수설하는 뜻 없는 소리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방언은 분명 언어의 기본적 요소가 구비되어 의사가 전달되는 말 즉 외국어(foreign language)였다.(행 2:1-13) 그럼에도 오늘날 은사주의자들이 추구하는 방언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조잡하고(coarse) 이상한(strange) 말이다. 이들은 이 말을 천국의 언어(heavenly language)라고 부른다. 그러나 사도행전과 고린도전서에 기록된 방언이 사 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언어였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고, 사도 바울은 사람들이 알들을 수 없는 방언을 할 경우 반드시 방언 통역 은사 자를 세워 알아들을 수 있게 하라고 했다.
사도 바울은 방언의 은사가 교회 안에서 모든 성도에게 유익을 주려면 반드시 공적인 방언 통역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 다.(고전 14:26-28) 그럼에도 오늘날 은사주의자들의 방언은 통역을 하는 자가 없을 뿐 아니라, 그들의 방언이 성경대로 초대교회의 방언과 같다 는 것을 객관적으로 증명할 방법이 없다. 또 은사주의자들 중에는 방언의 은사를 훈련을 하거나 배워서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들 중에 방언하는 법을 가르치거나 훈련하는 것 을 흔히 볼 수 있다. 이것은 방언의 은사에 대한 인간적인 질투와 욕망에 서 비롯된 것이며, 설사 배워서 한다 하더라도 성경의 방언과는 상관없는 거짓된 방언이다. 입을 열어 말은 하는 데 말하고 있는 자신도 자기 입으 로 소리 내서 하는 말을 무슨 말인지 알지 못한다고 하면서 그것을 방언 이라고 하는 것이다. 성령이 주신 은사로서 방언이라고 하는데 이처럼 자 기가 자기 입술로 말한 말의 뜻을 자기도 전혀 알 수 없는 말은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와 다를 바 없는 헛된 소리일 뿐이다.(고전 13:1) 그리고 초대교회 때도 사도 바울은 방언의 은사를 누구나 다 해야 한 다고 권하지도 않았으며 그 반대이다.(고전 14:4,5) 그 이유는 방언의 은사 는 자기를 유익하게 하는 것이나 예언의 은사나 가르치는 은사나 남을 섬기는 은사나 사랑의 은사와 같은 은사들은 모든 사람을 유익하게 하며 한 마음으로 교회를 세우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사도 바울은 분명히 “방언도 그치고,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 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고 예고했다.(고전 13:8,10) 고로 사도행전이 나 고린도전서에 나오는 방언은 하나님의 특별계시가 완성되기 이전까지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은사로서 존재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적인 방언의 은사는 결코 모든 시대 모든 사람들에게 주시는 보편적인 은사가 아닌 일시적인 은사였다. 이 같은 일시적 방언은 오늘날 완전한 것 즉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치되었다. 그런데도 방언을 통해 지금도 하나님의 계시를 받는다는 주장은 성경의 충족성과 완전성 그리고 종결성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불신앙과 다를 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