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는 매우 심각한 신학적 혼란 속에 살아가고 있다. 특히 국가 간의 전쟁을 해석하는 방식에서, 교회 안에조차 성경을 왜곡하는 위험한 흐름이 점점 더 확산되고 있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하였다”는 성경의 선언이, 아무런 분별 없이 현대의 정치적·군사적 상황에 적용되며, 특정 국가의 전쟁을 하나님의 뜻으로 정당화하는 구호로 사용되고 있다.
최근 중동 지역에서 벌어지는 갈등, 곧 이란과 이스라엘, 그리고 미국이 얽혀 있는 복잡한 국제 정세 속에서도 이러한 해석은 쉽게 발견된다. 어떤 이들은 이 전쟁을 선과 악의 종말론적 대결로 단순화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성경의 본질을 오해한 결과이며, 무엇보다 하나님의 구원역사 즉 구속사의 흐름을 무너뜨리는 심각한 오류이다.
성경에서 “전쟁은 여호와께 속하였다”는 선언이 가장 대표적으로 나타나는 장면은 다윗과 골리앗의 사건이다. 그러나 이 사건을 단순히 약자가 강자를 이긴 이야기로 이해하거나, 개인의 믿음과 용기의 본보기로 해석하는 것은 본문의 핵심을 놓치는 것이다. 여전히 한국교회 강단에서는 성도 개인이 하나님을 의지하면 그 어떤 난관을 다 헤쳐 나갈 수 있다는 용기를 가져다주는 식의 설교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전쟁은 인간의 용기를 드러내는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행하신 구속사적 사건이다.
다윗은 단순한 목동이 아니었다. 그는 이미 하나님께 기름부음을 받은 자였으며,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존재였다. 그가 골리앗과 싸울 때, 이스라엘 백성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두려움 속에 서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다윗이 승리했을 때, 그 승리는 단지 개인의 승리가 아니라 온 이스라엘의 승리가 되었다. 이 구조는 매우 중요하다. 한 사람이 싸우고, 그 승리가 모든 사람에게 전가되는 이 구조는,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사역을 예표하는 것이다.
교부들이 우리들에게 가르쳐주는 교훈은 아주 선명하다. 오리겐은 구약의 전쟁을 문자적으로 오늘날에 적용하는 것을 강하게 경계하며, 그것을 영적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에게 있어서 가나안 전쟁은 단순한 정복 전쟁이 아니라 죄와의 싸움이었고, 골리앗은 단순한 거인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는 교만과 사탄의 권세를 상징하는 존재였다. 그는 분명히 말한다. 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칼로 싸우는 자들이 아니라, 영적인 싸움을 싸우는 자들이다.
또한 어거스틴은 신국론에서 인간의 역사를 ‘하나님의 도성’과 ‘세상의 도성’이라는 두 질서로 구분하였다. 세상의 도성은 자기 사랑과 욕망, 그리고 권력에 의해 움직이며, 그 결과로 전쟁이 일어난다. 반면 하나님의 도성은 하나님 사랑에 의해 형성되며, 그 나라는 결코 칼과 무력으로 확장되지 않는다. 어거스틴에게 있어서 어떤 국가의 전쟁도 곧바로 하나님의 전쟁으로 동일시될 수 없다. 이것은 오늘날 교회가 반드시 회복해야 할 중요한 통찰이다.
칼빈역시 이 문제에서 매우 분명한 입장을 취한다. 그는 구약의 전쟁을 하나님께서 특별한 목적을 위해 명령하신 단회적 사건으로 이해하였다. 이스라엘의 전쟁은 일반적인 정치적 전쟁이 아니라, 구속사의 진행 속에서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을 드러내기 위한 도구였다. 따라서 그것을 오늘날의 국가 전쟁과 동일선상에 놓는 것은 성경을 다르게 해석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고 말한다.
사실 “전쟁이 여호와께 속하였다”고하는 히브리어 원문을 보면 이 전쟁이 세상 나라의 모든 전쟁이 아니라 지금 다윗과 골리앗의 전쟁이 하나님께 속하였다고 하는 말씀이다. 모든 나라의 일반 전쟁이 아니라 언약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한 전쟁을 주권적으로 행해 나가신다고 하는 말씀인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어리석은 목사들은 이 말씀을 여전히 모든 나라의 전쟁명제로 삼고 있다.
더 나아가 칼빈은 신약 시대에 이르러 싸움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변화되었다고 강조한다. 교회는 더 이상 칼을 들고 싸우는 공동체가 아니라, 복음과 성령으로 싸우는 공동체이다.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라 영적 권세에 대한 것이다. 이 사실을 망각할 때, 교회는 세상의 논리를 그대로 따라가게 되고, 결국 복음을 왜곡하게 된다.
오늘날 이러한 왜곡은 단순한 무지의 문제가 아니라, 특정한 신학적 흐름과 결합되어 더욱 강화되고 있다. 특히 미국의 일부 정치 지도자들과 종교 진영에 깊이 자리 잡은 극단적 세대주의적 종말론은 이러한 문제를 심각하게 만든다. 세대주의는 이스라엘과 교회를 분리하고, 현대 이스라엘 국가를 구약의 언약 백성과 동일시하고 있다. 그 결과, 현대의 정치적 사건과 전쟁을 여전히 성경의 예언과 직접적으로 연결시키는 해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 속에서, 특정 국가의 전쟁은 하나님의 전쟁으로, 국제 분쟁은 성경 예언의 성취로 해석된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의 구속사적 통일성을 무너뜨리는 잘못된 해석이다.
이제는 에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은 더 이상 특정 민족이나 국가로 한정되지 않는다. 교회는 혈통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형성된 새로운 영적 이스라엘이다. 따라서 어떤 현대 국가도 스스로를 구약 이스라엘의 위치에 놓을 수 없다.
결국 “전쟁은 여호와께 속하였다”는 선언은 오늘날 국가 간 전쟁을 자신들의 종교로 정당화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친히 싸우신 구속사의 사건을 가리키며, 그 절정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이루어졌다. 그리스도께서는 죄와 사망과 사탄의 권세와 싸우셨고, 그 싸움에서 완전한 승리를 이루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싸우는 자가 아니라, 이미 이루어진 그 승리에 참여하는 자이다. 우리의 싸움은 더 이상 총과 무력의 싸움이 아니라, 믿음과 복음의 싸움이다. 이 사실을 망각하고 인간의 전쟁을 하나님의 전쟁으로 둔갑시키는 순간, 교회는 복음을 잃어버리게 된다.
오늘날 교회가 반드시 회복해야 할 것은 분명하다. 하나님은 모든 민족 가운데 자신의 백성을 부르시는 구원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나라는 무력으로 세워지지 않으며, 십자가를 통해 세워진다.
주님은 자신의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요18:36)라고 말씀하셨다. 만약 주님의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라고 하면 당신의 제자들을 통해 전쟁으로 정복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의 나라는 힘과 권력과 전쟁이 아닌 사랑과 진리와 섬김과 자기희생을 통해 이루어지는 나라인 것이다. 우리 눈에 보이는 전쟁은 결국 인간의 죄와 탐욕의 결과물인 것이다.
따라서 참된 신앙은 전쟁을 신성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전쟁 속에서도 인간의 죄를 보고, 그 죄로부터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본다. 그리고 고백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싸우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싸우셔서 이루신 그 승리 안에 살아가는 자들이다.
기고: 임진남 목사(한국개혁신학연구원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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