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구미교회의 사상적 흐름
1. 신학적 사상의 영향
현대 구미교회의 신학적 사상은 정치, 경제, 교육 그리고 사회 전반에 걸쳐 큰 영향력을 끼쳐 왔다. 그 사상의 영향력이 미치는 근원을 찾기 위해 초대교회 이전으로 올라간다.
로마는 정치적으로 세계를 통일했지만 헬라문화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헬라 철학은 모든 분야에 있어서 사상적 배경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 사상적 배경은 종교적 이념, 합리적 이념, 그리고 윤리적 이념 모두를 포함하고 있었다. 거기에다 유대주의 민족종교는 타협 없는 종교적 독자노선을 걷고 있었다. 그런데 당시 예수님과 12제자가 나타나면서 많은 혁신이 일어났다. 이 혁신은 로마의 정치, 헬라의 철학, 그리고 유대 민족주의로부터 이단아의 취급을 받게 되었다. 이것으로 초대교회는 핍박을 받아야 할 하나님의 섭리적 조건이 형성된 것이다. 그러나 이 핍박은 신학적 사상의 기초를 형성하는 원인이 되었고 핍박으로 인해 복음은 불똥이 튀듯이 사방으로 퍼지게 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형성과정을 겪은 교회는 정치와 경제와 교육과 그리고 사회 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심점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드디어 4세기에 들어와 로마가 기독교를 인정함으로 이방신을 믿어오던 다종교 교회는 어거스틴 사상을 포함하여 스콜라주의를 동시에 소유하게 되었고 정치적으로 각 나라를 다스리는 교회 권력주의로 전환된 것이다.
특히 유럽이나 미국의 경우 철학, 정치, 윤리, 기타 학문에 이르기까지 교회의 사상과 관계를 가지고 역사를 발전시켜 왔다. 기독교를 배경으로 하지 아니하고 역사 선상을 걸어온 동양이나 기타의 국가들은 일반 문화는 물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모든 분야에 있어서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미개한 나라로 전락되었다. 반면, 기독교를 배경으로 역사를 지나온 국가들은 모든 분야에 있어서 선진국가로 발전되었다.
그러므로 비기독교 국가나 기독교 국가나 종교적 사상의 영향은 절대적이라 말할 수 있다. 이는 역설적으로 교회의 사상, 즉 신학이 타락할 경우 정치와 사회의 타락이 동반된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많은 부침을 거듭했던 구미의 역사가 단적으로 이를 말해준다. 물론 한국에서 교회의 신학적 변화는 사회의 사상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에는 약간 거리가 먼 것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또 그렇게 실행되어지고 있다.
2. 일반 사회의 사상적 흐름
2차 대전 후 세계는 허무주의로 물결치고 있었다. 인간이 기대했던 과학의 발달은 오히려 전쟁의 도구가 되어 수많은 인명을 살상하는 결과를 낳았고 이 처참한 전쟁의 폐해로 인해 19세기를 풍미했던 낭만주의는 뙤약볕 앞에 사라져 버린 안개와 같은 신세가 되었다.
젊은이들은 통키타와 생맥주를 들고, 장발을 하고, 도시를 떠나 산으로 바닷가로 나가 나체촌을 만들어 반문화 운동(Counter Cultural Movement)을 전개하였다. 이들을 Beatnik족이라 불렀다. 그들은 불협화음으로 비틀즈를 열창했다. 60년대 영국의 존 레논의 비틀즈를 기점으로 70년대 미국의 엘비스 프레슬리 등이 젊은이들을 열광시켰다. 이 음악은 Rock and Roll로 이어졌고, 80년대 들어와 Heavy Metal로 연결 되었으며 그 후에 Rap Song으로 이어졌다. Rock and Roll이후 가사 내용은 너무나 선정적이며 폭력적이며 과격한 표현을 쓰고 있었다. 살인, 피, 사탄 등의 단어들을 여과 없이 그대로 채용하였으며 상징적으로 그들은 사탄의 모습을 그려 모자나 옷에 새기고 다니기도 했다. 그들은 사탄성경(Satanic Bible)을 발행해 내기도 했는데 그 내용 중에 “예수는 사탄이다.” 라는 문구가 적나라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들은 전자 음악을 통해 Volume을 극도로 확대해 그것도 불협화음으로 사람들의 뇌를 폭력적으로 자극시켜 공연 중, 자신의 몸을 유리병으로 찔러 자살한 관중이 생기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운동은 오히려 허무주의를 소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더 격화시키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60년대를 기점으로 비틀즈 음악과 함께 결국 반 반문화 운동(Neo-Counter Cultural Movement)으로 전환되게 되었다. 이 반 반문화 운동은 그 사상이 반문화 운동을 도시로 이끌어 들이는 운동이다. 거리에는 장발에 청바지를 걸치고 맨발로 다니는 젊은이들이 맥주병을 들고 방황하고 있었다. 더욱이 60년대 케네디 대통령에 의해 공립학교에서의 기도회가 폐지됨에 따라 사회는 더욱 타락으로 치달았다.
이런 운동의 배후에는 허무주의를 바탕으로 형성된 실존주의 철학이 그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Heidegger나 Kierkegaar의 주관주의적 실존주의는 Barth의 주관주의적 초월주의의 기초를 제공했고 이 사상이 교회에 파급되어 70년대를 기점으로 기적을 만남의 매개로 하여 신비주의 운동이 구미교회에 파급되기 시작했다. 또한 당시 허무주의의 반동으로 일어난 가능성을 전제한 적극적 사고방식(Possibility Thinking 또는 Possible Thinking)이 복음을 등에 업고 등장했다. 이 운동의 주동자들은 기적을 매개로 한 Oral Roberts, Pop Psychology(대중 심리학)를 매개로 한 Robert Schuller와 Norman V. Peele, 믿음을 매개로 한 John Osteen 등이었다. 한 가지 첨가할 것은 조용기 목사의 경우엔, Oral Roberts의 입장과 John Osteen의 입장을 한국적 상황에 알맞게 조화하고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3. 구미 교회의 신학 사상의 흐름
60년대 들어와 유럽의 교회는 미국 교회와는 상대적으로 자유주의 사상이 침투하는 속도가 빠르지는 못했으나 화란의 Free University가 벌카우어에 의해 Barth의 사상을 약간 도입하기 시작하였고 영국은 정통주의적 개혁신학보다는 개인구원을 강조하는 복음적 신학으로 조금씩 기울어져 가고 있었다. 미국에서는 교회를 일반 단체에 팔아넘기는 횟수가 점차 많아지고 WCC 이념이 보편화 되어가고 있었으며, WARC는 좌경화되어 이미 유럽의 동구권으로 넘어가 그 존재 가치가 희미해져 버렸고, 사회적 타락은 점차 도를 더해가기 시작했다.
더욱이 미국교회는 Rock and Roll 형태의 음악을 하나의 방법론으로 도입하여, 즉 사람을 이끌어 들이는 수단으로 도입하여, 일부 교회가 Rock and Roll 형태의 음악을 아직까지도 도입하고 있다. 이에 편승하여 열린 예배가 갑자기 등장하여 성경에서 지시하는 예배의 형태를 벗어나 불협화음의 음악만 잔뜩 연주하다가 갑자기 설교로 들어가는 예배의 형태가 등장하였다. 이상한 것은 이런 종류의 예배 형태를 여과 없이 한국교회에서는 유행처럼 받아들이고 있는데 대해 심각한 우려감을 떨칠 수가 없다. 이런 이상한 종류의 예배의 형태를 통해 교회가 급성장하는 것 같았으나 수천 명 수백 명 모이던 교회가 갑자기 사라져 버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필자가 미국에서 목회 할 때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교회 부흥을 위해 모범적인 열린 예배 교회를 방문하고 싶다고 간절한 부탁을 해 와서 전화번호부를 찾아 문의하여 수요 집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당시 목사는 청바지에 터벅머리에 다양한 색깔의 짧은 T자 모양 겉옷을 입고 나왔다. 전혀 예배인지 Rock and Roll 전시회인지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1년이 지난 후 다시 방문했을 때는 수천 명 모이던 그 교회가 없어지고 난 뒤였다. 지난해 Pop Psychology 적극적 사고방식의 Robert Schuller목사가 시무하는 수십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Orange County 수정교회가 파산 선고를 한 것은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할 문제라고 여겨진다. 강해설교로 수만명의 성도들로 부흥시킨 John Mcarther목사는 80년대에 들어와 성경을 젖혀놓고 심리학적 접근 방식의 설교에 대해 심각한 개탄을 하면서 역사가 지나면 성경적 교회 이외는 교회의 의미가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4. 결론
지금 미국에서는 사회적으로나 교회적으로 자유주의 사상의 흐름이 주종을 이룬다. 그냥 보고 넘기기에는 그 한계가 극에 도달했다. 이런 점에서 구미교회의 갱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에 필자는 두 가지의 개혁 방향을 제시해 본다.
첫째, 사회적으로 도덕주의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대가 왔다. 예를 들어 70년대 후반기에 J. Fallwell목사가 Moral Majority 운동을 일으키게 되었다. 즉 도덕 우선주의 운동이다. 이 운동은 1백만 시민을 모아 청소년들뿐 아니라 타락해 가는 미국의 도덕을 바로 가르치고 세우자는 운동이었다. 기대이상으로 호응이 일어나 최고 1천만 이상의 회원으로 배가되었다. 타락이 극에 달하자 약간만 건드려도 터질 것 같은 포화상태의 풍선처럼 사회의 범죄가 포화상태로 변한 것이다. Moral Majority 영향으로 제정된 Three Strike 법률은 청소년들이 작은 법을 어겨도 3번 이상인 경우 성인 법정에 세워 중범죄로 다스리는 제도이다. 이 제도로 말미암아 90년대 들어와 매년 청소년들의 범죄가 급격히 줄어들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밤 10시 이후 청소년들의 통행금지를 법으로 정해진 후 역시 범죄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지나 20여 년간 미국의 경제적 불황은 우리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미국의 실업자가 늘어감에도 불구하고 범죄자가 줄어간다는 사실이다. 이 모두 도덕운동의 긍정적인 결과로 평가되고 있다. 미국의 사회와 교회는 지금도 하나님 중심의 나라로 변해가고 있지만 앞으로 더욱 하나님 중심주의의 나라로 변해갈 것이다.
둘째, 교회의 교리 설교와 강해 설교의 운동을 펼쳐야 할 때이다. 60년대 미국의 신학교들은 자유주의의 영향으로 신학생들이 줄어들어 문을 닫는 학교도 생기고 10명 이내의 학생들이 신학공부를 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러나 80년대 이후 신학교, 교회 그리고 사회의 도덕 분야에 까지 복고주의(Restorationism)운동이 일어나 신학은 보수주의로 회귀하게 되었고, 심지어는 Princeton 대학 신학부에 보수주의 교수가 다시 들어오기도 하였고, 자유주의 운동에 상관없이 보수주의 신학교들은 학생들이 밀려 왔고 80년대 이후 더욱 학생들이 밀려오게 되었다. 영국에서도 80년대를 기점으로 강해 설교가 힘을 얻기 시작했고 화란에서는 왕권주의적 개혁신학이 전통을 이어 오면서 Free University를 중심으로 일어난 Barth사상을 일부 도입한 교단이 연합을 시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정통신학을 고수하고 있다. 미국 교회는 이제 교리에 기초한 강해설교가 주류를 이루어가고 있고 설교 시간이 보통 45분에서 1시간을 점하고 있다. 70년대까지 성령운동이 기적운동으로 연결되어 방영하던 TV선교운동은 이제 강해설교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심지어 어떤 프로그램은 평신도 헬라어를 가르치는데도 있다.
역사교회는 엄청난 굴곡을 겪으면서도 오직 말씀을 지키기 위해 순교의 피를 바칠 때 가장 영광된 교회로 승화되었다. 그 순교의 피 값으로 오늘 우리가 신앙 고백을 손에 쥐고 있다. 개혁자들은 교회를 죄악의 늪에서 건져내는 일뿐 아니라 그 교회에 연결된 사회와 문화 분야까지도 타락에서 건져냈다. 이제 한국교회는 다시 종교개혁의 정신으로 돌아가 우리의 신앙의 선조들이 전수해준 교리를 가르치며 성경을 강해하는 설교가 강단에서 폭포수처럼 흘러나오기를 기도한다. ♣
[출처] 현대 구미교회의 사상적 흐름
- 김향주 (Ph.D./조직신학/대한신학대학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