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책이 서재를 채우고 수많은 스승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아도, 강단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것은 오롯이 한 사람이 성령의 숨결에 의지하여 영혼들 앞에 홀로 서는 사건이다. 설교는 정보의 전달이 아니라 존재의 떨림이며, 지식의 요약이 아니라 영혼의 고백이다. 그런데 이 시대에 새로운 빛이 설교자의 서재 안으로 들어왔다. AI라는 이름의 그 빛은 눈부시고 빠르며, 광대하고 성실하다. 수천 권의 주석을 순식간에 열람하고, 원어의 어근을 해부하며, 설교 개요를 몇 초만에 제시한다. 설교자는 이 앞에서 두 가지 감정을 마주한다. 하나는 “이것이 나를 더 깊은 설교자로 만들어줄 것”이라는 기대이고, 다른 하나는 “이것이 나의 자리를 빼앗을 것”이라는 불안이다. 진실은 이 두 극단 사이 어딘가에 있다. AI는 성령도 아니지만 사탄도 아닌 기술이다.
설교 준비는 고독한 씨름이다. 원어 사전을 뒤적이며 밤을 새우고, 거인들의 주석을 몇 번이고 다시 읽으며 한 단어의 무게를 가늠하고, 회중의 얼굴들을 마음속에 하나씩 떠올리며 어떤 말이 그들의 눈물과 상처에 닿을 수 있는지를 기도하는 시간이다. 그 씨름의 시간 자체가 설교자를 형성한다. AI는 그 씨름을 제거하지 않고 오히려 더 깊은 층위로 안내한다. 원어 분석에 소비하던 시간을 절약하여 기도와 회중을 향한 더 깊은 목양적 성찰에 소비한다. 보다 방대한 자료를 더 빠르게 조망하여 신학적 방향의 정확성을 제고한다.
설교는 설교자의 눈물로 쓰여진다. 그러나 AI는 슬픔에 대한 정보를 주지만 슬픔 자체에는 무지하다. 위대한 설교에는 말과 말 사이에 숨을 멈추는 시간,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침묵의 언어로 가장 큰 말을 하는 신비의 순간이 들어간다. AI는 이런 침묵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설교자의 가장 깊은 언어는 삶에서 빚어진다. 광야를 걸어본 자만이 이스라엘 백성의 고단한 광야를 설교하고, 상실을 경험한 자만이 욥의 지독한 애통을 그 깊이에서 증거한다. 그러나 AI에게 삶은 희귀한 낱말이다. AI를 조력자로 쓰더라도, 설교의 꽃은 온전히 설교자의 존재에서 피어난다.
설교를 준비하며, 나는 하나님께 기도한다. 지금 주님께서 이 회중에게 전하기 원하시는 말씀은 무엇인가? 목양 현장에서 마음에 눌린 것, 시대의 고통 속에서 교회가 들어야 할 음성은 무엇인가? 기도하며 마음이 기우는 주제를 붙잡으면 AI활용을 시작한다.
설교준비와 AI 활용의 실제
1) 그 주제를 둘러싼 다양한 각도의 논지들을 제안해 보라고 AI에게 명령한다.
2) 그 주제를 가장 강력하게 설파하는 성경 텍스트를 문의하되 회중의 환경과 상황에 맞추어진 여러 본문들을 제시해 보라고 지시한다. 제시된 연관 본문들 중에서 나에게 말을 거는 텍스트, 그리고 영적 울림이 가장 큰 텍스트를 선택한다.
3) 본문에 등장하는 핵심 단어들의 어근, 사전적 의미, 문법적 형태, 성경적 용례들의 분석을 지시한다. 이때 AI의 그럴듯한 오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원전 자료들(BDAG, BDB, NA28, BHS)과 대조하는 검증의 습관이 필요하다. 그런 이후에 의역이나 문학적 윤색 없이 원문이 가진 거친 날것의 맛을 그대로 살려서 한글로 직역한다.
4) 이 직역의 문법적 정확성을 권위 있는 문법 서적들에 근거하여 검토해 보라고 지시한다.
5) 이 텍스트가 1차 독자들의 귀에 어떻게 들렸을 것인지에 대해 당시의 역사적, 문화적, 종교적, 정치적 상황에 근거하여 설명해 보라고 지시한다.
6) 히브리 시의 대칭 구조, 바울 서신의 교차 대구, 요한의 반복과 확장 구조 같은 문학적 장치들 안에 숨겨진 신학적 의도 분석을 지시한다.
7) 성경의 자증성 관점에서 절이나 장이나 권이라는 다양한 문맥의 범위를 지정해 주며 텍스트의 문맥적 의미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차원에서 읽어내야 하는 의미 분석을 지시한다.
8) 개혁주의 교리와 2000년의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가장 충실한 거인들의 주석들 분석을 지시한다.
9) 이 본문의 핵심 메시지를 오늘 한국교회 상황에 적용할 때 고려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삶의 정황들을 제시해 보라고 지시한다.
10) 설교 원고를 완성한 후, 사실과 다른 내용이나 보강해야 할 부분들을 검토해 보라고 지시한다.
그리고 1차 자료들로 원고를 검토한다. AI의 활용 이후에, 나는 원고를 읽으며 “이 문장이 내 영혼에서 나왔는지, 이 비유는 내가 살아낸 삶에서 나왔는지, 이 호소는 내가 진심으로 드리는 기도에서 나왔는지” 등을 검토한다. 이 모든 질문에 긍정할 때 비로소 설교문은 완성된다. 성령이 주시는 말씀의 불꽃은 영혼의 그릇에만 담겨지고, 영혼은 정보가 아니라 영혼을 통해서만 만져지고 치유된다. 설교 준비에 있어서 AI는 자료들과 조교들을 합친 도구로만 제격이다.
출처 : 기독교개혁신보 한병수 교수(전주대 선교신학대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