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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6-04-29 18:30
칼빈의 목회론/직분론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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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창암
조회 : 287  

칼빈의 교회론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부분이 바로 목회 직분론 (Pastoral Offices) 이다. 왜냐하면 이 부분에서 로마 카톨릭 그리고 루터파 직분체계와는 사뭇 다른 독특한 개혁교회의 직분론을 발전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개혁파의 직분론은 로마 카톨릭에 비해서 매우 간명하고, 또한 루터란의 만인대제사장의 원리를 체계화하되 루터란 보다 훨씬 구조적으로 성직자와 평신도의 벽을 허무는 직분체계라 할 수 있다. 칼빈은 최대한 성경의 “규정적 원리”를 따르며, [기독교강요] 에서는 간명하게 자신이 생각하는 목회론과 직분론을 상술하고 있다. 과연 칼빈의 목회 직분론은 로마 카톨릭, 그리고 종교개혁의 선구 루터파 교회와는 어떻게 다른 특징이 있는가? 칼빈은 과연 목회자가 어떻게 세워져야 하며, 교회는 어떤 목회자를 청빙해야 하며 어떻게 선출해야 한다고 가르치는가?

II. 본론 ([기독교강요] IV권 3장을 중심으로)

“교회의 교사들과 목회자들: 그 선출과 직분 (The Doctors and Ministers of the Church, Their Election and Office)”

칼빈이 직접 붙인 이 제목에서 주의 할 것은, 그가 교회의 “교사들" 을 말할 때 그것은 “doctors” 즉 “박사들" 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현대 복음주의권 교회들에서 흔히 보는 주일학교 교사는 여기에 들지 않는다. 교회의 공식 직분자들로서 안수로 세워지는 직임들 - 목사, 박사, 장로, 집사 - 가운데 특별히 목회 (설교+교육) 를 시행하는 두 직분이 목사와 박사이다. 개혁교회는 이 둘의 직임을 한 사람이 감당하기도 하고 혹은 둘이 나누어 감당하기도 한다.

B. 목회의 필요성 (IV.3.1)

1)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사역을 필요로 하신다.

하나님만이 교회를 지배하시며, 교회 안에서 권위 또는 우월한 지위를 가지셔야 한다. 그리고 이 권위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만 행사된다. 그러나 그는 눈에 보이게 우리들 중에 계시는 것이 아니므로 (마 26 : 11) 그는 사람들의 봉사를 사용하셔서 자신의 뜻을 우리들에게 말로 분명하게 선포하신다 (1).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사역 없이도 얼마든지 당신의 능력으로 구원사역을 이루실 수 있으시다. 다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보이는 교회 안에 나타내기 위해서 인간의 입을 사용하기로 작정하신 것이다. 이를 위해 당신의 사역자를 세우시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게 하신다.

2) 인간 목회자는 우리의 겸손을 훈련하기 위한 방편이다.

또 이것은 겸손을 위한 가장 훌륭하고 유익한 훈련이 된다. 우리와 같거나, 때로는 우리보다 못한 사람들을 통해서 말씀이 선포될 때 우리가 말씀에 복종하는 습관을 가지도록 하신다... 흙에서 나온 보잘것없는 사람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할 때, 그가 우리보다 나은 점이 없을지라도 그를 하나님의 일꾼으로 여겨 배우는 태도를 보인다면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경건과 순종을 가장 잘 나타내게 된다 (1).

a. 칼빈은 여기서 인간 목회자가 성도들에 비해 부족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인 것을 인정하지만 도리어 그것이 하나님 앞에 겸손과 복종의 습관을 키우는 훈련의 도구가 될 것이라 말한다.

b. 칼빈이 말하는 목회자의 보잘 것 없음이란, 목회자의 자격이 없는 자들 - 구원에 관한 신학적 지식이 결여되어 있거나, 도덕적 성결을 갖추지 못하거나, 하나님의 소명을 따라 목회자가 되지 않고 세상 명예와 물질욕을 따라 목회자가 된 자들 - 을 의미함이 아니라, 인간적 조건의 부족함 - 바울처럼 말을 유창하게 못한다던지, 베드로 사도처럼 교육이 미천하다던지, 디모데처럼 연소하여 성도들을 아우르지 못하는 부족함 - 을 말할 것이다. 이런 부족함이 있다고 목회자를 업수히 여기고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어찌 기뻐하시겠는가? 분명 목회자의 부족함은 성도들을 하나님 앞에 겸손과 복종의 습관을 키우는 경건의 도구가 될 것이다.

3) 목회자는 교회를 하나로 묶어주는 줄이다.

교회는 목사를 중심으로 한 끈으로 묶이도록 해야한다... 연합을 유지하는 가장 힘 있는 수단으로서... 사람의 목회는 신자들을 결속해서 한 몸을 이루게 하는 힘줄이다 (1).

a. 칼빈의 목회론은 사뭇 전통적이다. 교회가 목회자를 중심으로 결속하여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사상은 주후 2세기 영지주의 이단이 창궐하며 교회가 분열될 때, 이레니우스가 쓴 [이단에 대하여 (On Heresies)] 에서 교회는 목회자 (당시에는 감독) 을 중심으로 하나되어야 한다고 역설한 이래로 지난 2000년간 교회의 가르침이라 할 것이다. 로마 카톨릭의 교회 직제는 초기에 감독 (장로) - 집사 - 성도 였다가, 로마의 국교로 공인된 이후로 교황제도의 도입과 함께 점차 교황(pope)-추기경(cardinal)-주교(bishop, 감독)-사제(priest)-부제(deacon, 집사)-평신도로 구분되었다. 교황과 추기경 제도는 전제주의적 교직체계를 구축하기 위해서 고안된 직분이며, 한 교구 교회 내에서는 주교가 책임 성직자가 되고 그 아래 사제와 부제(집사)가 각각 성직의 직임을 감당하며 이들은 평신도들과 구분되어 성직그룹을 형성하였다.

b. 루터는 개혁 초기 로마 교회의 교황제도와 부패한 성직자들 문제 때문에,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분을 뒤 엎는 소위 “만인제사장설” (The priesthood of all believers) 을 주장하게 된다. [독일 귀족들에게 고함] 이라는 논설에서 그는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의 교회에 입문한 모든 신자는 “왕 같은 대제사장" 과 같다고 주장하며, 그후 루터란의 성직제도는 “모든 신자들이 말씀과 성례의 성직을 수행할 수 있다" 는 전제 하에 “만인 성직자 (전교인들) 중에서 선택 구별된 말씀과 성례의 수종자" 를 택하여 공식적인 성직을 수행케 하였다. 이로써, 평신도와 성직자의 구분은 근본적으로 없지만, 질서와 필요상 공무를 수행하는 대표 목회자를 교인들 가운데서 (“아래로 부터 - from below”) 택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평등한 사상에 크게 고무된 교인들이 나도 성직자라며 자의적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급진적이고 파괴적인 운동 - 비텐베르그 성상파괴 사건, 농민전쟁, 뮌스터 천년왕국주의 - 가 벌어지면서 수 없는 분파를 만들어지는 것을 보았다. 이에, 루터의 후기 성직개념은 만인대제사장설에 기초한 “아래로 부터" 의 성직개념을 유지하되, 목회자가 단순히 다수의 성도들을 따라가며 그들의 민의를 대표하는 자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친히 위임하신 - “위로부터 - from above" - 권위와 예언자적 권위로 말씀을 선포하고 잘못되어가는 교인들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성직” 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그의 후반부 개혁의 역사는 이러한 “위로부터" 의 권위와 예언자적 사역을 감당하는 - 그래서 성직자와 평신도가 명확히 구분되는 - 목회자들을 훈련하는 일에 힘을 썼던 것이다 (cf. Mark Ellingsen, “Luther’s Concept of the Ministry: The Creative Tension,” Word & World 1/4 (1981), 338-46).

c. “아래로 부터" 와 “위로 부터" 의 성직개념이 사뭇 긴장관계 속에서 제시되는 루터와는 달리, 칼빈은 처음부터 평신도와 목회자의 구분이 명확하다. 칼빈의 목회 직분론에는 소위 “만인 대제사장설" 에 근거한 평등한 직분개념으로 시작하지를 않는다. 오히려, 사뭇 “위계적”이며 목회자의 “권위” 에 대한 강조로 시작하고 있다. 이것은 후기 루터의 “위로부터" 의 직분론의 영향이라고 봐야 할지 모르겠다. 물론, 이어지는 칼빈의 직분론 - 특별히 장로 직분 - 에 있어서 어떻게 만인대제사장 체계가 반영이 되는지, 그리고 어떻게 평신도와 목회자가 함께 교회를 다스리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교회의 네 직분을 통해서 살펴보기로 하겠다.

C. 목회의 고귀성 (IV.3.2-3)

1) 칼빈은 바울이 성경에서 가르친 바와 같이 (엡 4:4-7, 8, 10-16), 목회는 모든 신자들을 하나로 묶어주며 성도들을 새롭게 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며 결국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이끌어주는 사역이기에 “태양의 빛과 열과 음식과 같이 필요”한 것이라고 말한다 (2).

2) 그러므로 목회자의 설교사역은 하나 님께서 “최고의 존경”을 받도록 승인하신 사역이며, 목회자는 하나님을 “대표" 하며, 바울이 말한대로 “가장 훌륭한 일” 이요 “특별한 은혜”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어느 누가 감히 하나님께서 이런 증거로 그 유용성을 증명하신 성직을 멸시하거나 또는 무용지물이라고 해서 폐지할 것인가?” (3).

3) 쯔빙글리와 루터의 가르침을 왜곡해서 받은 일단의 재세례파 급진주의자들이 성직개념의 파괴를 주장하며 성령을 빙자하여 사도, 예언자, 왕이라 잠칭하며 온갖 파괴적이고 극단적인 행태를 벌였던 역사 - 농민전쟁 및 뮌스터 점령 -가 눈 앞에 펼쳐졌던 바, 칼빈은 이렇게 성직의 유용성과 고귀성을 무시하는 자들이 벌이는 무질서하고 파괴적인 행위를 비난하고 거부한다.

D. 칼빈의 직분 구분 (IV.3.4-9)

1) 칼빈은 에베소서 4장을 근거로 몇 가지 종류의 직분을 구분한다 (4).

a. “임시직" (temporary): 교회가 그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직임을 세워야 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 특별히 “루터” 와 같이 하나님께서 교회사에 필요하다고 여기실 때 특별하게 세우시는 직임들이 있다: i. 사도, ii. 선지자, iii. 복음전도자 (사도 다음의 제자들) 등등이다.

b. “항존직" (permanent): 이는 교회가 존재하는 한 항상 있어야 하는 직임을 의미한다. 한 번 세워지면 영원히 그 직임을 수행한다는 의미에서 항존직이 아니라, 교회라면 그 직임이 항상 있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항존직이다: i. 교사들 (박사들) - 성경을 해석하는 일을 담당, ii. 목사들 - 성경을 해석하지만, 권징과 성례집행, 그리고 박사들에게 허락되지 않은 목회적 경고와 권면등을 시행한다.

2) 칼빈은 임시직의 “선지자” 그룹과 현재 교회의 “박사들” 을 상응하는 직임으로 본다. 또한 임시직인 “사도" 의 직임은 현재 교회의 “목사" 와 상응하는 직임이라 본다. 물론, 사도는 교회에 매이지 않고 복음사역을 섬겼으나 목사는 한 교회에 매인다는 다른점이 있어도 그 직임의 성격이 상응한다고 보았다 (5). 이런 점에서, 칼빈이 루터를 특별하게 세우신 이 시대의 “사도" 라 칭하고 개혁교회의 목회자들이 “사도" 의 직임을 감당하는 것이라 말하는 것의 연계점이 있다 하겠다. 칼빈은 교회의 항존직임인 목사들을 결코 “사도" 라 부르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루터나 개혁교회 목사들을 “사도" 의 사역과 같다고 공통점을 부각시키는 것에도 그리 큰 문제를 삼지는 않는다. 다만, 성경에서는 “사도" 를 예수님의 열 두 제자와 이후 바울을 비롯한 몇몇에게만 적용시키고 어느 지역교회에 매이지 않는다는 다른점이 있기에 칼빈은 목사들을 사도라 칭하지는 않는 것이다 (6).

3) 칼빈은 성경을 따라 목사를 다양하게 부를 수 있다고 말한다: “감독” “장로” “목사" 그리고 “사역자" 등등이다 (딛 1:5, 7; 빌 1:1; 행 20:17, 28). 그런데, 칼빈은 이 부분에서 두 가지 장로 (presbyter, elder)를 구분한

a. 말씀을 가르치는 “장로" (presbyter) 는 “감독" (bishop) 이나 “목사" (pastor) 로 불리울 수 있다. 이들은 말씀을 전하며 성례를 집행하는 소위 공식적 사역자 그룹이다.

b. 교회를 다스리는 “장로" (elder) 는 “감독" (bishop) 과 함께 - 동등하게 - 성도들의 도덕적 권면과 징계를 담당하는데, 교회가 세워질 때부터 “당회" (senate) 를 조직하여 목사와 함께 권징에 관련한 제반 법을 시행한다.

c. 칼빈의 직분론에는이어 박사-목사-장로에 이어 “집사" (deacon) 의 직분이 있다. 이들은 특별히 교회의 구제사역 - 가난한 자들을 돌보는 사역 - 을 위해 세워진 직임으로서 헌금의 수집과 집행을 전담하게 된다. 칼빈은 여기서 두 가지 종류의 집사를 구분하는데, 교회의 헌금을 관리하여 구제하는 일에 분배하는 일을 담당하는 집사 (행정집사) 와 직접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는 일에 직접 사역자로 나서는 집사 (사역집사) 로 나뉜다 (9).

4) 여기서, 다스리는 장로 (governing elder) 제도야 말로 칼빈주의 개혁교회의 가장 독특한 특징이요 교회사의 기여라고 말할 수 있다. 칼빈의 직분론의 특징은 루터의 그것과 비교할 때 “위로부터" (from above) 의 성직개념이 두드러진다 하겠다. 교회의 항존직 네 직임 - 박사, 목사, 장로, 집사 - 중에서 두 가지 직분 (박사, 목사) 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특임을 맡게 된다. 이들의 직임은 하나님의 입을 대언하는 고귀한 목회 사역이다. 칼빈에게 있어서 기본적으로 목회 - 말씀을 전하고 성례를 집행하는 사역 - 은 보이는 교회 공동체의 중추가 되는 가장 중요한 직임이다. 그래서 이어서 살펴보겠지만 목회자는 특별한 소명과 교육, 그리고 자질을 요구한다. 그런데, 이 목회자 그룹과 동등한 위치에서 교회를 다스리며 섬기는 그룹이 있으니 바로 다스리는 장로 (elders) 이다. 이들은 감독이나 목사와 같은 사역자들이 아니지만 교회의 당회 안에서 목사와 동등하게 교회를 치리하는 평신도들의 대표인 것이다. 로마카톨릭이나 루터란에서 전혀 생각치 못했던 평신도 성직 (목회) 참여가 처음으로 시행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루터가 종교개혁 초기부터 주장했던 “만인대제사장" 원리 - “아래로부터" (from below) - 가 실현되는 것을 보게된다. 루터 조차도 시행하지 못했던 성직자/평신도 공동치리의 모습이 칼빈이 제시한 당회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칼빈신학을 이어받은 스코틀랜드의 좐 낙스가 자기들의 개혁교회 이름을 “장로교회" (Presbyterian) 라 한 것은 역사적, 신학적으로 의미가 크다 하겠다 (cf. 이 부분에 가장 탁월한 연구서적으로, Elsie McKee, Elders and the Plural Ministry (Geneva: Droz, 1988) 를 추천한다).

E. 목사의 소명, 선출과 안수 (10-16)

1) 칼빈은 목사의 소명에 대해서 자세히 기술하는데, 이는 목사에게 있어서 “소명" (calling) 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고전 14:40). 목사는 소명이 없이 스스로 목사가 될 수 없는데 이는 “소란스럽고 문제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교회에서 가르치거나 다스릴 수 없도록 하기 위함" 이다 (10).

2) 한 사람의 목사를 교회에 세우고자 할 때에 고려되어야 할 네 가지 사항이 있다고 칼빈은 말한다 (11).

i. 어떤 종류의 사역자를 청할 것인가? ii. 어떤 방식으로 선출 할 것인가? iii. 누가 그를 선출할 것인가? iv. 어떤 의식으로 그를 목사로 세울 것인가?

3) 우선 칼빈은 목사의 직분을 감당하려는 사람이 가져야 할 두 가지 소명에 대해서 말한다 (11).

a. 내적소명 (Inner Calling): 사역자는 “하나님께서 비밀스럽게 부르신" 사람이다 (11). 교회는 한 사람이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았는지 받지 않았는지 알지 못한다. 이것은 전적으로 개인적으로 하나님께 받는 소명이다.

b. 외적소명 (Outer Calling): 목사는 “교회에 의해 공적으로 부르심" 을 받은 사람이다 (11). 칼빈은 이러한 외적소명이 반드시 한 사람의 내적소명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악한 양심을 가지고 교회의 소명을 받았더라도, 그 악함이 드러나지 않은 이상 교회 앞에 합당하게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11). 마찬가지로 아무리 내적소명을 강하게 받았더라도, 교회가 공적으로 그를 목사로 청하지 않는다면 그는 목회자가 될 수 없다.

c. 칼빈은 내적소명과 외적소명의 불일치를 다소나마 해소하기 위해 목사로 지원한 사람이 “경건을 동반한 학식" 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한다 (11). 즉, 일시적 감정에 기초하거나 잘못된 선택을 막기 위해, 목회후보자가 거룩한 말씀의 사역을 위해 학식이나 경건의 측면에서 충분히 준비된 사람임을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친히 부르신 사람을 무장시키시므로 목회후보자가 어떤 성령의 은사가 탁월한지를 살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하겠다 (고전 12:7-11).

4) 칼빈은 누가 과연 교회의 목사가 될 수 있는지 조금 더 상술한다 (12).

a. 우선 학식과 경건함, 그리고 탁월한 은사로서 준비된 사람어야 한다고 했다.

b. 그리고 “건전한 교리” 와 “허물없는 거룩함” 을 갖추어야 한다. 만약 목사가 불미스러운 삶과 행동으로 그의 거룩한 사역에 오점을 남기고 권위를 상실한다면 목회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c. 직분에 합당한 기술들을 익혀야 한다 - 목회에 필요한 모든 기술 (언어, 음악, 상담 등).

5) 목사는 어떻게 선출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칼빈은 몇 가지 지침을 제공한다.

a. “금식하며 기도로” 임하고 “성령의 지혜와 분별력" 을 구해야 한다 (12).

b. 성경에서는 사도를 택하실 때 주님께서 직접 임명하시지만, 교회가 감독 (목사) 를 선출할 때에는 교인들이 선택하는 것이다 (행 1:23, 13:2). 이런 점에서, 교회의 직분자 선출은 “외적소명" 과 일치한다 (13-14).

c. 감독 (목사)의 선출은 “한 사람의 권위" 로 해서는 안 되고, 교회의 대표들인 “사역자들이나 장로들” 이 선정해서도 안 되며, 가장 합당한 것은 “교회의 전 성도들" 이 거수를 통해 뽑는 것이다 (15).

키프리아누스가 말할 것처럼... 성직자를 임명할 때에는 반드시 일반 신도들이 보고 알아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야만 그 임명이 모든 사람의 증거로 검토되며 공정하고 합법적인 것이 될 수 있다. 또한 이 때에 다른 목사들이 선출 과정의 사회를 보도록 하여 대중들이 변덕이나 악한 의도 혹은 무질서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15).

6) 목사 선출과 청빙의 마지막은 안수 (임명) 식 (Ordination) 이 된다. 칼빈은 안수식의 몇 가지 지침을 설명한다 (16).

a. 신약성경에서 사도를 세우거나 파송할 때 손을 올려 안수를 했다. 이 의식은 구약의 관습을 따르는 것으로 하나님께 새로운 사역자를 올려드리는 (offering) 의미를 가진다.

b. 안수는 또한 “성령의 은사들을 부여하는데 (confer)” 사용되었다.

c. 안수식은 “목사" (“장로") “박사" 그리고 “집사" 를 세우는 의식에 사용되었다.

d. 안수식에 관한 성경의 규정과 법이 없지만, 초대교회로부터 이어진 의식이므로 조심스럽게 준수해야 할 것이다.

e. 안수식은 목사로 하여금 더이상 자기 맘대로 살지 못한다는 경고가 되는데, 이를 위해 전 성도가 안수하지 않고 다만 목사들만이 안수를 행할 것이다.

f. 몇 명의 목사가 함께 안수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기준이 없다.

III. 나가는 말

칼빈에게 있어서 목회는 교회를 교회답게 세워가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그래서 칼빈은 성경의 규정적 원리와 종교개혁의 원리를 따라 심혈을 기울인 목회 직분 체계를 확립한다. 칼빈의 목회/직분론은 로마 카톨릭과 심지어 루터란 교회와도 구분되는 가장 종교개혁적인 직분 시스템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특별히 칼빈파 개혁파 교회에서 시작한 소위 “평신도 장로제도" 는 종교개혁이 발견한 만인대제사장의 원리를 체계화하되 성직자와 평신도의 벽을 허물고 성직자/평신도 공동목회 체계를 구축한 교회사의 일대 혁신의 시스템이라 할 것이다. 또한, 목회는 아무나 할 수 없는 거룩하고 엄위한 직분이기에 하나님 앞에서 받은 비밀스러운 소명과 성령의 능력, 그리고 사람 앞에 인정받을 수 있는 학식과 경건을 갖춘 사람을 청빙하고 선출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칼빈파 개혁주의 교회에서 로마 카톨릭 교회와 같은 독재적 군주형의 목회리더쉽을 구조적으로 행사할 수 없게 되었는데 이는 평신도 장로들이 함께 당회를 통해 다스리기 때문이다.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기 루터란이나 재세례파처럼 성직의 구분이 모호하여 말씀이 혼돈되고 교회가 무질서하게 되는 것도 막았는데,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목회자를 가장 존엄하고 겸손히 순종해야 할 고귀한 직분으로 정하였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칼빈의 목회 직분론이야 말로, 가장 “위로부터” 와 “아래로부터” 가 균형과 종합을 이루는 종교개혁 교회론의 백미라 할 것이다.

[출처] 칼빈의 목회론/직분론 (기독교강요를 중심으로)|작성자 패인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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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62 젊은 남성 종교성 반등’… 25년 만에 여성 추월 창암 05-04 230
7861 우리가 상대하는 영이 어떤 영인지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창암 05-03 249
7860 어린이날 104주년을 맞아, 어린이들을 성경과 기독교 세계관으로 양육해야 … 창암 05-01 303
7859 사람의 눈에 작게 보이는 교회라 하더라도 지켜나가야 한다. 창암 04-30 209
7858 칼빈의 목회론/직분론에 대하여... 창암 04-29 288
7857 설교는 설교자의 눈물로 쓰여진다. 창암 04-28 240
7856 우리가 진정 자랑할 것도 하나님을 온전히 아는 것이라고 하였다. 창암 04-27 242
7855 신학은 우리 영혼의 양식을 제공한다. 창암 04-26 255
7854 예배당 안에서의 “아멘!”이 일상생활의 현장에서의 “아멘!”으로 연결… 창암 04-24 244
7853 개혁주의 세계관 운동의 흐름 창암 04-23 255
7852 그냥 보고 넘기기에는 그 한계가 극에 도달했다.. 창암 04-22 290
7851 19세기 독일의 신학자들이 이루어낸 기독교... 창암 04-21 248
7850 당당한 칼빈주의... 창암 04-20 242
7849 그리스도인을 시험하는 시금석.. 창암 04-19 223
7848 전쟁을 바라보는 성도의 바른 이해... 창암 04-17 236
7847 어느 청교도인의 아침 기도... 창암 04-16 228
7846 설교 들을때 “그것이 과연 그러한가 하여” 성경을 상고하는 태도를 촉구… 창암 04-15 236
7845 목회자의 AI 사용 실태... 창암 04-14 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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