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추구하기는커녕 진리에 대해 관심조차 없습니다. ‘절대적인 진리’라는 것은 없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자신들에게 이롭다고 생각되면 거짓이라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회 전반에서 거짓이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온 세상은 악한 자의 지배 아래 있”고(요일 5:19, 우리말성경) “악한 자”, 곧 사탄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요 8:44)입니다. 따라서 사탄의 “지배 아래” 있는 세상에 거짓이 난무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닙니다.
참으로 개탄스러운 사실은 위와 같은 현상을 많은 교회 내에서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모든 사람을 품어야 한다는 미명 아래 또는 교회의 양적 성장을 위해 진리를 수호하는 대신 거짓을 용납하는 것, 성경적 진리만을 고집하는 사람을 편협한 사람으로 치부하는 것이 주된 이유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바울은 교회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했습니다(딤전 3:15). 그리스도인은 “진리의 하나님”(사 65:16; 시 31:5)께 속해 있고(요일 5:19), “진리”(요 14:6)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며,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진리의 성령”(요 15:26; 16:13)을 그 안에 모시고 있습니다. 그는 바울이 말한 대로 “진리를 거슬러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고후 13:8)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거짓과 진리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진리’란 영원불변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생각, 뜻, 성품, 속성과 부합되는 것을 가리킵니다. 또한 “진리”라고 번역되는 헬라어 명사 ‘aletheia’는 ‘실재’(實在)(영어의 ‘reality’)를 뜻하기도 합니다. 바울은 “보이는 것들은 잠깐이나 보이지 않는 것들은 영원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들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들”이라고 했습니다(고후 4:18, 우리말성경). 따라서 그리스도인이 갖춰야 할 분별력은 영적 분별력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재림과 세상 종말의 징조에 대해 여쭈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제일 먼저 누구에게도 속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경고하셨고(마 24:3-4), 바울은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사람들은 더욱 악해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딤후 3:13, 우리말성경). 우리가 사는 이 마지막 때는 무엇보다도 거짓에 속지 않고 진리를 굳게 붙들어야 하는 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속고 있습니다. 이 현상은 날이 갈수록 심화될 것입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마 16:1-3).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는 것은 일상적인 자연 현상을 보고 날이 좋을 것인지 궂을 것인지를 대충 예측해 보는 것일 뿐인데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날씨와 같은 물질계의 비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주먹구구식이지만 그 정도라도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과 같은 본질적인 영적 문제에 대해서는 그 정도만큼조차도 분별하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영적 분별력의 결여는 이 시대를 사는 많은 그리스도인의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경고했습니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딤후 4:3-4).
바울은 사람들이 바른 교훈을 받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욕심에 따라 귀를 즐겁게 하는 스승들을 두며 진리를 외면하고 꾸민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때가 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지금이 바로 그때인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듣기 싫어합니다. 귀를 즐겁게 하는 재미있는 설교와 부담을 주지 않는 편한 설교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딤전 4:1-2).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속이는 영과 귀신들의 가르침을 따르는 때가 올 텐데 그런 가르침은 양심이 마비된 위선적인 거짓 교사들로부터 올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지금 그때를 살고 있습니다.
“9 그 불법자는 사탄의 활동을 따라 나타나서 갖가지 능력과 거짓 표적들과 기적들과 10 모든 불의의 속임수와 함께 멸망받을 사람들에게 이를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이 구원을 얻기 위해 진리의 사랑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11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미혹의 영을 그들에게 보내셔서 그들로 거짓된 것을 믿게 하십니다. 12 이는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기뻐하는 모든 사람들이 심판을 받게 하시려는 것입니다”(살후 2:9-12, 우리말성경).
11절과 12절 말씀은 놀라운 사실을 가르쳐 줍니다. 즉, 진리를 사랑하도록 이끄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강력한 미혹을 보내셔서 그들로 하여금 거짓을 믿게 하심으로 그들이 심판을 받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딤전 2:4)지만 사람이 진리를 사랑하기는커녕 오히려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기뻐하”면 언젠가 돌아올 수 없는 선을 넘어 위와 같은 심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바울은 사탄을 가리켜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엡 2:2)이라고 했습니다. 사탄의 휘하에 있는 타락한 천사들도 사탄과 마찬가지로 영적 존재들입니다. 사탄은 주로 사람들을 자신의 일꾼으로 내세워 활동합니다. 이 사탄의 일꾼들은 “의의 일꾼들”인 양 가장하고 교회에 침투하는데 바울에 의하면 ‘사탄의 일꾼들이 의의 일꾼들인 양 가장하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닙니다”(고후 11:15, 우리말성경). 왜냐하면 “사탄도 자신을 빛의 천사로 가장하기 때문입니다”(고후 11:14, 우리말성경).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은 “의의 일꾼들”인 양 가장한 사탄의 일꾼들이지만 싸움의 실질적인 상대는 “혈과 육”인 그들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들입니다(엡 6:12). 그러므로 우리가 상대하는 영이 어떤 영인지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1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2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3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요일 4:1-3).
1절에서 “분별하라”로 번역된 헬라어 동사는 ‘dokimazo’로서 앞서 본 마태복음 16장 3절에서 “분별할”로 번역된 헬라어 동사 ‘diakrino’와는 다릅니다. 후자 ‘diakrino’는 ‘분별하다’를 뜻하는 반면, 전자 ‘dokimazo’의 주된 의미는 ‘테스트(시험)하다’입니다(NKJV 영어 성경과 NIV 영어 성경은 위 1절의 ‘dokimazo’를 ‘test’로 번역했습니다). 우리는 영이라고 다 믿지 말고 그 영이 하나님께 속한 영인지 테스트해야 합니다.
사도 요한은 1절에서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테스트하라고 하고 이어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다고 했습니다. “영”들에 대해 얘기하다가 “거짓 선지자”들을 언급한 것입니다. 이는 이 거짓 선지자들이 사탄의 일꾼들임을 말합니다.
어떤 영이 하나님께 속한 영인지 아닌지를 테스트하는 방법은 그 영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가 아닌가입니다. 시인하면 하나님께 속한 영이고 시인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속한 영이 아닙니다. 2절에서 “시인하는”으로 번역된 헬라어 동사 ‘homologeo’는 ‘고백하는”(영어의 ‘confess’)으로 번역될 수 있고 현재 시제로서 동작이 계속됨을 뜻합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한다는 것은 예수님이 육체로 오신 그리스도, 즉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보내신 분이시며 주(Lord)이심을 계속 고백한다는 것입니다. 이 계속적인 고백은 입으로만 하는 고백이 아닙니다. 그 고백에 합당한 삶, 즉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순종과 헌신이 따르는 고백입니다.
“21 모든 것을 분별하고 선한 것을 취하십시오. 22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피하십시오”(살전 5:21-22, 우리말성경).
21절의 “분별하고”는 앞서 본 ‘dokimazo’의 번역이므로 21절 전반부는 ‘모든 것을 테스트하고’라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이 테스트해야 할 대상은 “모든 것”입니다.
진리는 “선한 것”이고 거짓은 “악”입니다. “진리의 하나님”은 선하신 유일한 분(마 19:17)이시며 “진리의 말씀”(고전 6:7)인 복음의 가르침은 “선한 가르침”(딤전 4:6, 우리말성경)입니다. 반면에, 앞서 본 대로,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인 “악한 자” 사탄은 “처음부터 살인자였”고 “그 안에 진리가 없기 때문에 진리 안에 서지 못”하며 “거짓말을 할 때마다 자기 본성을 드러”냅니다(요 8:44, 우리말성경). 우리는 모든 것을 테스트해서 선한 것과 악한 것을 구별해야 하고 구별한 다음에는 선한 것만 취하고 악한 것은 피해야 합니다.
어떻게 영적 분별력을 가질 수 있을까요?
“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15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16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고전 2:14-16).
14절의 “육에 속한 사람”은 타고난 존재 그대로인 사람, 즉 거듭나지 않은 사람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14절이 말하고 있는 것은 거듭나지 않은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 등)이 어리석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그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영이 죽은 상태에 있고 그 사람 안에 성령이 계시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유 19).
사람이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영적으로 분별할 수 있기 위해서는 먼저 거듭나고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사람이 거듭나고 성령을 받으면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게 되어 영적으로 판단하고 분별하는 것이 비로소 가능하게 됩니다(어떤 성도들은 “영을 분별하는 은사”(고전 12:10, 새번역)를 추가로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나 수준의 영적 판단력과 분별력을 갖는가는 그가 “신령한” 신자, 즉 내주하시는 성령을 따라 행함으로 성령의 열매를 맺어가는 신자인지, 아니면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고전 3:1) 같은 신자, 즉 거듭나기는 했으나 성령을 따라 행하지 않고 육신을 따라 행하는 신자인지에 따라 다릅니다. “신령한” 신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육신에 속한” 신자는 그러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육신에 속한” 신자는 성령을 따라 행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바울은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라고 했습니다(갈 5:16). 그리고 “육신에 속한” 신자는 영적 판단력과 분별력을 간절히 원하고 구해야 합니다. 야고보는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라고 했습니다(약 1:5).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히 5:12-14).
하나님의 말씀에 익숙한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훈련으로 연단된 영적 지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선과 악을 분별할 줄 알지만 영적으로 젖먹이와 같은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말씀에 미숙하기 때문에 그러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미숙한 그리스도인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처럼 진리와 거짓, 선과 악을 분별하는 영적 분별력을 갖기 위해서는 “갓난 아기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벧전 2:2)해야 하며(“순전하고 신령한 젖”은 하나님의 말씀을 뜻합니다) 섭취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영적 지각을 계속 사용함으로 영적 지각을 연단해야 합니다.
거듭난 신자 안에는 진리의 영이신 성령이 계십니다. 바울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고 했습니다(딤후 3:16).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벧후 1:21)에 의해 쓰인 것이라는 뜻입니다. 우리에게 성경을 가장 잘 가르쳐 줄 수 있는 분은 성령이십니다(요일 2:27). “진리의 성령”께서는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기를 원하십니다(요 16:13). 우리는 그분의 가르치심과 인도하심을 구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