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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lom aleikhem !

שָׁלוֹם עֲלֵיכֶ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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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6-05-07 20:32
예배와 전도에 있어서 율동 및 드라마 사용 문제에 관하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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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창암
조회 : 206  

4. 춤을 추며 예배하는 것에 대한 성경적 증거

현 시점에서 우리가 두 가지 중요한 요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간단한 본 논고에서 성경적 증거를 세밀하게 취급한다는 것이 쉬운 작업이 아니라는 점이요, 또 하나는 우리의 주된 관심이 예배요 전도 집회에 있어서 춤과 드라마 사용에 관한 관심을 다룬다는 사실을 독자 제위께서 기억해야 한다는 점이다. 사실 사회 전반적으로 이 부분은 크게 이용되고 있지만 예배와 전도 집회에서 이 행위들의 사용 문제가 과연 타당한 것인지를 살펴보려는 것이다.

율동이나 드라마 사용과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현상이 구약 성경에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약과 신약 사이에 큰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설명하지 않을 수 없다. 구약 시대에는 예배에 있어서 외적이고 가시적인 요소들이 상당히 많이 사용되었다. 손으로 지은성전이 있었고, 그 성전에서 제사가 드려졌으며, 많은 회생 제물들이 있고, 화려한 성의를 착용하는 제사장들이 있었다. 구약의 제사 의식은 전부가 다 외형적인 특색을 지니고 있다. 성전에서 드려지는 제사의식은 가시적인 효과가 매우 컸으며, 깊은 인상을 남기는 것들이었다. 성전 자체도 황금과 은 및 백향목으로 꾸며진 화려한 건물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보다 나은 영적 예배를 위한 하나의 준비 단계일 뿐이다. 이 사실은 구약 성경에서도 명백히 발견된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을꼬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어서 다 이루었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나의 말을 인하여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권고하려니와'(사66:1-2). 또한 이 사실은 신약 성경에서 보다 명확하게 나타난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요4:21-24). 바울도 이 원리를 재차 말하고 있다: ' 성령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기뻐하는 자, 및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자가 할례당이라'(빌3:3).

구약 성경에서 제사의 합법적인 한 부분으로 하나의 특수한 행위가 허용되었다고 해서 신약 성경의 원리에서도 그대로 허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신약의 예배는 구약의 제사와 분명히 다르다. 그리고 그러한 행위들에 대한 언급은 상대적으로 극소수에 불과하다. 시149:3, 150:4, 출15:20,삼하6:16등의 말씀들은 육체적 행동으로 반영된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모습을 나타내 주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장 큰 결함 중 한 가지는 춤을 추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진에 가까이 이르러 송아지와 그 춤추는 것을 보고 대노하여 손에서 그 팔을 산 아래로 던져 깨뜨리니라'(출32:19). 이 말씀을 보면 금송아지 형상을 만들어 놓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광경이 진술되고 있는데 춤을 추며 예배하고 있다. 이 모습은 전적으로 타락한 춤 광경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예배'는 아주 대중적이요 이스라엘의 대다수가 받아 드렸다. 그러나 육적인 대다수의 군중을 대항하여 거의 홀로 서 있었던 모세에 의하여 그같은 예배는 격렬히 제지되 었다.

신약 성경 자체에서 춤을 추며 예배하는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신약에서 읽어볼 수 있는 유일한 춤추는 모습은 눅7:32로서 살로메의 춤추는 장면이다. 이 결과로 세례요한의 목이 잘려 나갔을 뿐이다. 세상에 취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춤추는 일이 대부분 타락한 현상과 연계되어 있음을 인정할 것이다. 춤을 춘다는 것은 타락과 죄악된 행위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다. 세례요한의 경우와 세상적인 그러한 특성과 더불어서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춤을 추는 행위를 도입하는 것은 대부분이 악마적인 의식과 관련된 것으로 엄중히 경고하지 않을 수 없다. 춤을 추며 예배하는 행위를 옹호하려는 자들은 몸을 사용하는 문제로 합리화시키려고 한다. 즉 ·하나님은 나와 많은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육체로(이 육체는 나 자신의 존재를 땅에서 유일하게 표현할 수 있는 수단임), 하나님을 위한 사랑을 표현하는 일에 바르게, 경외감을 가지고 즐거이 사용되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Praise Him in the Dance, Anne Long).

물론 우리는 우리의 몸을 통해서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분명히 표현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우리의 몸으로 순종할 때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도 온전한 육체를 지니셨는데 몸 자체에 본능적으로 악마적인 요소가 있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몸은 이 세상에서 선한 일을 수행하는 도구가 된다. 우리는 우리의 몸을 가지고 환자를 방문하고, 도움이 필요한 자들을 섬기며, 기독교의 삶을 영위하는 중요한 일들에 종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신약 성경 어디에서 다음과 같은 주장을 뒷받침 할 만한 근거를 찾을 수 있는가? 즉, 춤과 드라마는 하나님의 진리를 보다 더 명확하게 제공해 주는 창문과 같다'(Ibid) , '노래하는 것은 음악으로 말씀으로 그리고 춤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백성들에 의해서 나타나는 반응의 일부분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이른바 바디 언어(Body languag)를 사용하여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것이다. ' 신약에서는 영적 예배를 강조하고 있는 사실과 관련하여 볼 때 앞의 주장은 전혀 근거 없는 것이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그와 같은 행위가 도입될 수 있다는 근거가 없는 것이다. 얼마나 쉽게 아가페 사랑이 에로스 사랑과 혼돈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심지어 춤을 추며 예배하는 행위를 추천한 자들조차도 춤 자체에 위험 요소가 있음을 인정한다. '춤과 드라마가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육체적인 것에 집중하도록 잘못 권장되는 것일까?' '어쩌면 예배당 안에서 춤을 추는 일이나 드라마를 구경함으로 인하여 일부 성도들은 잘못된 감각적인 느낌이 발동되는 것을 두려워할 것이다'(Ibid). Worship and Dance 라는 책에서도 같은 위험 요소를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그 어느 경우에도 그와 같은 분명하고도 심각한 위험 요소를 해결하는 시원한 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 위험 요소는 너무나도 선정적인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감각적이고 성적인 감흥을 자극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미 살펴본 것처럼, 초기 기독교 저술가들은 이 문제에 대하여 오늘날 보다 더 명확한 견해를 가졌던 것 같다. 비잔틴 제국의유명한 설교자인 크리쏘스톰은 마태복음에 나타나 있는 헤로디아의 딸의 춤을 이렇게 묘사하였다: '춤추는 곳이 있는 곳에 악마도 있다. 하나님께서 춤을 추라고 우리에게 발을 주신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춤을 추면 우리 자신의 품위를 상스러운 몰골로 전락시켜 버릴 것이다. 우리는 품위 있게 행동해야 한다. 낙타처럼 팔짝팔짝 뛰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천사들과 함께 높임을 받아야 한다. 만일 우리의 몸이 타락의 나래로 빠져 들어가면 우리의 영혼은 더할 것이다--- 춤을 추는 것은 악마의 발명품이다' (Discussions - Evangelical and Theological, R. L. Dabney). 주후 692년 Trullo에서 열린 8차 종교회의록에서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는 공개적으로 춤을 추는 모든 여성들의 춤을 금한다. 왜냐하면 이것이 많은 상처를 주며 사람을 타락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간단히 요약해 보면, 공 예배 시에 춤을 추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행위를 성경으로부터 정당화시키려는 노력들은 처절할 정도로 약하다. 그와 같은 행위에 자동적으로 따라오는 위험 요소들은 우리 시대정신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분명히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명확하게 드러난다. 필요한 것은 몸짓 언어가 아니라 성령의 정결케 하심과 영광스러운 임재의 역사이다. 여성들의 춤동작을 바라봄으로서 교회가 든든히 세워져 가는 것이 아니다. 오직 순결한 하나님의 말씀을 능력 있게 선포하는 사역을 통해서 교회는 강해지는 것이다. 우리는 신약 성경으로부터 배우는 일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그리고 성경에서 말하고 있지 않는 낯선 요소들을 단순히 사람들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해서 예배에 도입해서는 안 된다. 바울은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6:20)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므로써 그 일을 하는 것이지 예배 속에 우리 자신의 아이디어를 소개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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