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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Shalom aleikhem !

שָׁלוֹם עֲלֵיכֶם


 auto
 
작성일 : 26-05-08 22:55
예배와 전도에 있어서 율동 및 드라마 사용 문제에 관하여..(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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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창암
조회 : 238  

5. 드라마 사용에 대한 성격적 증거

공 예배 시에 드라마 사용이 합당하다고 여겨진다면 그 근거 역시구약 성경에서 찾아질 것이다. 특별히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이 행동한 상징적인 행위들을 살펴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이사야 7:3, 8:1-4, 예레미야 13:1-11, 16:1-4, 19:1-2a,10-11a,32:7-15,에스겔 4:1-4등이 대표적인 구절들이다. 물론 다른 많은 사례들이 더 있다. 때때로 선지자들은 상징적인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 행동들을 하도록 특별한 명령을 주께로부터 받았다. 그러나 이것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특성이나 행동을 묘사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인 것이다. 선지자들이 독특한 행동을 했을 때 그들이 다른 사람의 역을 대행한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행동이요 그들의 행동이 담고 있는 상징적인 메시지를 예리하게 그리고 밝게 전달하는 행동들이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한 현대적인 모습을 중국인 설교자인 요한 성 목사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죄를 지적하며 설교했을 때 '죄를 가지치기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뿌리까지 송두리째 뽑아 버려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는 아주 즉흥적으로 설교 강단에 놓여 있는 여러 가지 화초들을 뿌리째 뽑아 들었던 것이다. 분명히 이와 비슷한 행동은 모든 설교자들이 하도륵 권장할 만한 것은 아니다. 그러한 행동은 꾸며진 것에 불과한 것이다. 성 목사의 경우 분명 그는 성실한 행동을 한 것이 명백한 것이지만 그 어느 누구도 그가 연극을 한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가 행한 모든 것은 그가 선포하고 있는 진리를 특별한 방법으로 설명하는 것이었다. 선지자들도 대부분 하나님의 직접적인 명령에 의하여 같은 행동을 한 것이지 연극을 사용한 것은 아니었다.

신약 성경에서도 연극을 행한 근거는 찾아 볼 수 없는 것이다. 사실 이 문제는 정말 근거가 없다.

'연출배우'에 해당되는 헬라 말에서부터 영어의 '위선자'라는 말이 나왔다. 그러므로 신약 성경 안에 탁월한 배우들과 뛰어난 연극 행위들이 있다. 바리새인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을 기만시키는 일에 뛰어난 기술을 지니고 경건의 모습을 연출한 배우들이었다. 유다는 사단의 종노릇하면서도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완벽한 행동을 연출하였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배우들이었다. 오직 베드로의 초자연적인 영적 통찰력에 의하여 그들의 위장을 들추어냈을 뿐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을 연극 배우로 만들고 싶은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사실은 이것인데 다른 무엇으로 가장하고 있는 위선적인 모습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싸움을 해야 할 우리들이 아닌가? 우리는 우리들의 진정한 모습을 추구하는 자들이어야 한다. 우리가 다른 사람인 것처럼 행동하는 것으로부터 우리는 벗어나야 한다. 다른 사람들을 연극하도록 하는 것은 성경이 우리를 인도하는 것하고는 정반대의 길을 가도록 유도하는 것과 같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모습이 아닌 다른 사람인 것처럼 위장한 적이 결코 없었다.

이 문제는 사람들이 악마적인 행동을 연출해 내도록 요구될 때 더 가속화되어 진다. 연극의 주인공들은 이 어려운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찬양을 할 때나 또는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릴 때나 또는 춤을 추면서 찬양을 하며 연극을 하게 되든지 우리는 여전히 "성령의 전"인 것이다. ' 이것은 우리가 가룟 유다나 창기 및 사단의 역을 연출할 때 문제를 야기시키는 것이다(적어도 신학적으로-역자 주, Praise Him in the Dance, Anne Long). 어떻게 경건한 성도가 불의한 자 또는 심지어 사단의 역할까지 연출할 수 있는가? 어찌 성도가 그 같은 역을 감당할 수 있으며 유다와 같은 사단의 특성을 습득하여 연출할 수 있다는 말인가? 과연 성도가 성도 아닌 행동을 연출하기 위하여 그 같은 역을 땀을 흘리며 소화해야 하는가?

이러한 문제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역이나 또는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에서 성부 하나님의 역할을 감당하도록 요청될 때 더 심각하게 대두된다. 드라마를 사용할 수 있다고 그 근거를 구약 성경에 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성품을 주지하지 못할 수 있는가? 그의 압도적이고 장엄한 영광스러움, 그의 거룩하심, 흠이 없는 깨끗함, 그의 전능한 공의로우심을 타락한 죄인들이 사람들 앞에서 형상화할 수 있는가? 호세아가 깨끗지 못한 아내를 취하는 문제를 드라마로 꾸밀 수 있을지 모른다. 호세아의 경험은 이스라엘의 불충성스러움을 가장 뼈아픈 방법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욥이나 다윗의 고난도 그리스도의 고난을 설명하는 그림자임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의 경험이 꾸며진 것이 아니라 사실이기 때문에 연출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호세아는 자신이 하나님인 것처럼 가장한 것이 아니었다. 비록 그의 삶이 하나님에 관한 특정한 진리를 묘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는 하나님처럼 행동한 것이 아니었다. 아벨의 피흘림으로부터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마 23:35) 인간의 고통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그려 주는 것들이다. 그러나 이들이 그리스도인 것처럼 행동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고난은 주님을 향한 헌신 때문에 실제 상황에서 실제로 경험한 것들이었다.

그러므로 사람들 앞에서 그리스도의 역을 담당하는 자들은 그리스도를 정확하게 묘사할 수 없는 것이다. 배우는 타락한 죄인이요 하나님을 형상화하는 우상 숭배 죄와 신성모독 죄를 범하는 것이다.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의 아들의 역을 연출하는 타락한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 무엇일까? 자신의 타락한 심성과 연약성 및 그리스도의 영광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 자로서 하나님의 모습을 죄성의 몸짓으로 표현한다는 것에 그리고 악역을 수행한다는 것에 어찌 두려움이 없을 수 있겠는가? 우리의 구세주께서 지금 영광스러운 자리에 계시고 천사들과 구속함을 받은 성도들의 경배를 받으시며 성령의 강하신 역사하심으로 영광스러운 임재하심이 온 회중가운데 있으심을 알면서 영광의 주님을 가장하고 있는 죄인의 연기를 감상하고 앉아 있을 수 있겠는가? 천사들이 주님을 예배한다. 주님 앞에서 그들의 얼굴을 가리고 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역을 연기하는 인간은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 그리스도께서 말씀으로 임재 하시는데 그리스도로 옷 입은 죄인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사도들이 하나님의 뜻을 실천할 때 그들은 성전에서 연기를 했는가? 사도 바울조차도 고린도에 드라마를 전문으로 하는 교회 공동체를 세우지 않았다. 그들의 주님께서 계시하여 준 말씀을 따라 그들은 복음을 선포하였고 예루살렘을 그들의 가르침으로 가득 채워 나갔다. 사람들이 예배와 전도 집회에 이러한 춤이나 드라마를 도입하기 시작하였을 때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뢰를 상실하였기 때문이다. 죄인들을 구원하시고 온전히 세우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방법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선포하는 일을 통해서이다. 이것이 본 논쟁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문제일 것이다.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가장 영광을 받으시는 하나님의 도구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죄인들에게 새 생명을 가져다주고 거룩케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 말씀으로 그리스도는 죄인들의 영혼 속에 강력하게 그리고 달콤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말씀으로 우리는 그의 임재하심을 알게 되는 것이다.

6. 맺는 말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무엇이 잘못인지를 살펴보는 것보다 남의 잘못이 무엇인지를 말하는 것이 훨씬 용이하다. 춤이나 드라마 사용이 교회 생활에 차지할 자리가 없다고 말하는 우리들은 우리 자신들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께서 영광 가운데 임하시고 예루살렘을 다시 세우실 때, 우리 교회가 성령의 임재하심에 대한 더 확실한 증거를 나타낼 때 사람들이 그 같은 활동에 관심을 기울이는 일이 적을 것이다. 만일 당신의 아내가 곁에 있는데도 아내의 모습을 정확하게 그리고 아내의 특성을 잘 묘사하지 못하는 사진을 가지고 좋아한다면 옆에 있는 아내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리스도가 우리와 함께 계시는데 우리는 우리와 같은 죄인 동료가 그리스도를 연기하기를 원치 않을 것이다. 우리가 성령으로 하나님을 예배할 때 감각적이고 흥미를 유발시키는 무대 배우같은 것을 거절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교회의 임무는 지옥에 갈 사람들을 즐겁게 한다거나 감각적인 흥미진진한 것을 주기 위함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을 통하여 그 죄인들을 구원하는데 있다. 가룟 유다나 천국에 들어가는 강도의 역이나 어떤 대역을 하기를·원하는 자들에게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이 되도록 쏟아야 하지 않겠는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모습을 가장하는 일에서 벗어나 자신의 모습을 더 온전하게 가꾸어 가는 일에 전력을 다해야 하지 않는가 라고 권면하자.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사단과 죄의 가장 강력한 원수였다. 하나님의 은혜로 새롭게 되고 보존되지 않으면 죄인들은 언제나 말씀의 강력한 증거를 피하기를 추구한다. 광야에서 방황했던 이스라엘의 자녀들처럼 그들의 필요를 놀라운 방법으로 채워 주신 하나님의 섭리에 대하여 만족하지 못하는 자들이 되는 것이다. 애굽의 맛을 사모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하게 되는 것이다. 애굽의 것을 갈망하면 발은 가나안으로 향하여 가더라도 마음은 여전히 애굽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사단은 하나님의 말씀이 거해야 할 곳에 거하지 못하도록 말씀을 제거하는 작업을 늘 궁리하고 실천한다. 자신의 왕국을 파괴하는 도구를 언제나 강력히 막아서는 것이 사단이 하는 일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온 땅에 충만해야 한다. 하나님의 영적인 역사하심이 늘 우리 곁에 있도록 기도하자. 이러한 문제들로 많은 사람들이 고민에 빠지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본 논고를 통하여 무척 당혹해 할 것이다. 필자는 이 글을 그들이 주께서 도우셔서 보다 더 명확한 조명 하에 본 논제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기술하였다.

Rev. John Marshall / 서창원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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