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주님의 생애를 떠올릴 때, 보통은 그분의 설교와 종교적 위선자들과의 대립, 그리고 제자들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지만, 그분이 일상의 사람들과 환대와 교제를 나누며 친밀함과 위로를 누리셨던 우정은 종종 간과하기 쉽습니다.
사 복음서를 통해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두 친구인 마르다와 마리아를 계속해서 만나게 됩니다. 성경은 이 특별한 두 여인을 항상 함께 소개하고, 이 자매들의 성품을 뚜렷이 대비시켜 보여줍니다.
성경은 마르다와 마리아의 신상에 대해 많은 것을 전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남동생 나사로와 함께 작은 마을 베다니에 살고 있었습니다.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로, 성전 동문에서 남동쪽으로 약 2마일쯤 떨어져 있었으며(요한복음 11:18), 예루살렘 도심에서는 감람산을 조금 넘으면 닿을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누가와 요한은 모두 예수님께서 이 가정에서 따뜻한 환대를 받으신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중요한 순간마다 세 번 이상 이 집을 찾으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베다니는 예수님께서 유대 사역을 하실 때 늘 들르시던 곳이었고, 이 가정은 주님을 정성껏 맞아들이며 편히 쉬실 수 있는 안식처가 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한 가지 중요한 공통점
마르다와 마리아는 흥미로운 한 쌍입니다. 많은 면에서 서로 달랐지만, 한 가지 중요한 점에서는 같았습니다. 두 사람 모두 그리스도를 사랑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공생애 동안 소중한 개인적 친구가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께서는 그 가족을 깊이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누구를 사랑하셨는지 예리하게 관찰한 사도 요한은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라고 기록했습니다(요한 11:5).
이 가정이 어떻게 예수님과 그렇게 친밀한 관계를 맺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친족과 베다니 가정 사이에 혈연 관계가 전혀 언급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마르다와 마리아는 아마도 예수님의 초기 가르침을 듣고 그분을 집으로 초대해 환대를 베풀며 관계를 맺게 된 많은 사람들 중 두 명이었을 것입니다.
어떤 방식으로 시작되었든, 그 관계는 분명 따뜻하고 깊이 있는 개인적 교제로 발전했습니다. 누가의 묘사에 따르면, 예수님은 그들의 집에서 편히 머무셨던 것이 분명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적극적으로 우정을 맺으셨다는 사실은 그분이 어떤 분이셨는지를 보여 줍니다. 또한 예수님은 머무실 집 한 채 없으셨음에도(마태복음 8:20) 유대에서 떠돌며 사역하시면서도 노숙자가 되지 않으셨던 이유를 설명해 줍니다. 마르다와 마리아 같은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그분을 집과 가정으로 맞아들였고, 예수님은 여러 친구들 사이에서 편안하게 머무셨던 것이 분명합니다.
환대는 이 가정의 특별한 특징이었습니다. 특히 마르다는 어디서나 세심한 여주인으로 묘사됩니다. 심지어 그녀의 이름은 “주님”이라는 아람어 단어의 여성형입니다. 집을 주관하는 그녀의 모습에 딱 들어맞는 이름이었습니다. 누가복음 10:38은 이 가족의 집을 “마르다의 집”이라고 부릅니다. 또한 그녀가 나사로와 함께 언급될 때 언제나 첫 번째로 기록된 사실은 그녀가 언니였음을 강하게 시사합니다. 반대로 나사로는 요한복음 11:5에서 가족의 명단 중 마지막에 언급된 것으로 보아 막내였던 것 같고, 그의 이야기는 심지어 요한이 나사로의 부활을 기록할 때조차 중심인물로 부각되지 않습니다.
세 남매의 나이와 성격
일부 사람들은 집의 주인으로서, 또 가정의 주도적인 인물로서 마르다가 서술된 점을 들어 그녀가 과부였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물론 가능성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이 세 남매가 함께 살았다는 사실뿐이며, 그들 중 누군가가 결혼했었다는 말은 없습니다. 또한 그들의 나이에 대한 어떤 암시도 없습니다. 그러나 마리아가 등장할 때마다 늘 예수님의 발 앞에 있었던 것을 보면, 그들이 그리 나이 많은 사람들이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더욱이 마르다와 마리아의 뚜렷하게 대조되는 성격은 세월이 지나면서 완화된 흔적이 없어 보입니다. 따라서 세 남매는 아직 젊고 경험이 많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실제로 예수님과의 관계에서, 그분은 항상 마치 형이 동생들을 대하듯 그들을 대하셨으며, 그들에게 가르치신 많은 교훈은 성숙해 가는 젊은이들에게 매우 실제적인 교훈이었습니다. 그들의 기록된 만남 속에서 특별히 두드러지는 몇 가지 교훈이 있습니다.
자매들의 단편적인 모습
성경은 예수님과 이 가정의 세 가지 중요한 만남을 기록합니다.
첫째, 누가복음 10:38–42는 마르다와 마리아가 어떻게 그리스도께 헌신을 드려야 하는가를 두고 벌어진 작은 갈등을 묘사합니다. 이것이 신약에서 우리가 마르다와 마리아를 처음 만나는 장면입니다. 누가는 그들의 상반된 성격을 묘사하는데, 이는 요한복음에 기록된 두 차례의 사건에서도 일관되게 나타납니다. (다음에 우리는 누가복음 10장 후반부에 집중할 것입니다. 두 자매의 대조적 성격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요한복음 11장은 두 자매의 삶을 가까이서 보여 줍니다. 사실상 11장은 남동생 나사로가 죽고, 그리스도에 의해 다시 살아나는 장면을 묘사합니다. 이 장에서 예수님이 마르다와 마리아를 대하신 방식은 각자의 특징을 잘 드러냅니다. 나사로의 죽음과 부활은 두 자매 모두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지만, 그들의 성격 차이에 따라 각기 다르게 반응했습니다. 요한은 그들이 얼마나 깊이 슬퍼했는지, 예수님이 어떻게 그들의 슬픔 속에서 위로하셨는지, 그분께서 얼마나 개인적이고 깊이 애도하셨는지, 그리고 장례의 절정에서 어떻게 나사로를 영광스럽게 살리셨는지를 매우 자세하고 감동적으로 기록합니다.
예수님의 다른 어떤 사역보다도, 이 드라마틱하고 공개적인 기적은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죽이기로 최종 결심하게 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들은 만일 그분이 죽은 자를 살리실 수 있다면, 사람들이 반드시 그를 따르게 되고 자신들의 권세를 잃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요한복음 11:45–57). 그러나 그분의 생명을 주시는 능력이 바로 그분이 스스로 말씀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증명한다는 사실을 완고하게 거부했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동생의 생명을 되돌려 주시기 위해 자신을 위험에 내어놓으셨다는 것을 이해한 듯합니다. 실제로 마리아의 감사와 이해의 깊이는 두 자매가 다시 함께 등장하는 세 번째이자 마지막 사건에서 드러납니다. 요한복음 12장(마태복음 26:6–13, 마가복음 14:3–9 병행구)은 마리아가 값비싼 향유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신의 머리털로 닦은 일을 기록합니다. 마태와 마가도 이 사건을 기록했으나, 그 맥락에서 마리아의 이름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요한복음 12장에서 묘사된 동일한 사건인 것이 분명합니다.
마태복음 26:12와 요한복음 12:7 모두, 마리아가 어떤 의미에서는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하며 그분께 기름을 부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그녀는 동생의 부활 사건이 예수님의 원수들로 하여금 더욱 격렬한 증오심을 불러일으켜 반드시 그분을 죽이려 하리라는 것을 강하게 짐작했을 것입니다(요한복음 11:53–54). 실제로 나사로 부활 이후 예수님께서는 에브라임으로 몸을 피하셨다가, 유월절을 위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셨습니다(요한복음 11:55–56). 마리아(그리고 아마 마르다도)는 누구보다 예수님께 닥친 위험이 임박했음을 더 분명히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그것은 그분께 대한 빚진 마음과 감사의 감정을 더욱 깊게 했고, 마리아의 예배 행위 속에 잘 드러났습니다.
(고) 존 멕아더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