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שָׁלוֹם עֲלֵיכֶ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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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9-06 18:32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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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gopeace
조회 : 1,733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


조나단 에드워드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롬 4:5).


구원을 받기 위해서 우리가 절대적으로 믿고 알아야 하는 분량의 성경적 칭의 체계는 어쩌면 매우 단순하여 가장 연약한 그리스도인들이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성경이 칭의와 관련하여 그 이상으로 가르쳐 주지 않는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칭의 교리는 인간의 타고난 이성을 빛을 초월하는 순전한 계시이며 또한 칭의교리야말로 복음 안에 계시된 하나님의 무한한 지혜가 가장 분명하게 입증되는 곳임을 모두 인정합니다. 또 우리는 천사들도 사람들도 도무지 생각해 낼 수 없었던 놀라운 화해의 방법을 하나님께서 친히 생각해 내셨음을 모두 인정합니다.  


1. 로마서 4장 5절의 본문관찰과 교리도출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롬 4:5).

이 구절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요점들을 주목해 볼 수 있습니다.


관찰 1. 칭의는 사람을 ‘경건치 아니한 자’로 간주합니다.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 말씀은 곧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의미합니다. 어떤 사람을 의롭다 칭하시는 행위에서 하나님께서는 의롭다함을 얻게 될 사람 안에 있는 것을 일절 고려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가령 그 사람 안에 있는 경건함이나 작은 선함도 일절 고려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 사람을 의롭다 칭하시기 전에는 단순히 그 사람을 경건하지 않은 피조물로만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롭다함을 얻게 되는 사람 안에 있는 경건함은 칭의의 근거가 되어 그 사람의 칭의에 선행(先行)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소경의 눈을 뜨게 하셨다는 성경의 기록을 보면서, 시력의 회복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긍휼의 행위보다 먼저 있었고 또 그것이 긍휼을 받게 된 이유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어리석듯이 말입니다.


또는 어떤 부자가 관대한 마음으로 가난한 사람을 부유하게 만들어 주었다는 기록을 보면서, 가난한 그 사람에게 그와같은 관대함이 베풀어진 이유와 가난한 그 사람이 그와같은 관대함을 얻게 된 자격은 그 사람의 재산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매하듯 말입니다.


관찰 2. 이 구절에서 ‘일을 아니할지라도’라는 표현은 의식법(儀式法)을 순종하지 않는 사람만 가리키는 것이 분명 아닙니다.

‘일을 아니한 자’와 ‘경건치 않은 자’는 분명 동의어 표현임이 명확합니다. 칭의에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있는 그 어떤 경건함도 일절 고려하지 않으신다는 사실! 바로 이 사실을 말해주고 싶어서 ‘경건치 아니한 자’라는 표현을 ‘일을 아니할지라도’라는 표현 바로 다음에 덧붙여 쓴 것입니다.

본문 바로 앞에 나오는 4절 말씀,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라는 말씀에 드러난 요점은 무엇입니까? 경건치 않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함을 얻는 것이 바로 복음의 은혜라는 사실입니다.


관찰 3. 본문에서 분명하게 나타나 있는 것은 의롭다함을 얻는 수단으로 여기에 언급되고 있는 믿음이 일련의 순종이나 의로움 같은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 믿음을 해석하되, 율법에 대한 일련의 순종을 이행하는 것, 율법을 범하는 일을 피하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믿음을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과연 성경의 가장 명확한 의미를 살려 충실하게 해석하는 것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되 의롭다 하시는 이로서 하나님을 믿는 것과 율법 수여자로서의 하나님 앞에 복종하는 것은 분명하게 다릅니다.


관찰 4. “그것을 의로 여기시나니”라는 본문의 표현을 볼 때 명백히 드러나 있는 요점은, 칭의의 대상이 되는 사람은 그 안에 의로움이 전무(全無)한 사람으로 고려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의로 여기신다”라는 표현이 명백하게 시사하는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원대로 은혜를 베푸실 수 있는 전적인 주권을 가지신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다루심에 있어서 아무런 의도 없는 그 사람을, 결과적으로는 마치 그 사람이 실제로 의를 소유하고 있는 것처럼 고려하기를 기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까닭은, 실제로 의를 가지고 있는 어떤 것과 죄인이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앞서 나오는 “의로 여기신다”라는 표현의 취지입니다.

그러므로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이라는 표현이 무엇을 의미할 수 있겠습니까? 자기 스스로 일을 전혀 하지 않은 사람을 하나님께서 의롭다 여기신다는 것 외에 달리 무엇을 의미할 수 있겠느냐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본문 말씀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교리를 추론할 수 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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