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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Shalom aleikhem !

שָׁלוֹם עֲלֵיכֶם


 auto
 
작성일 : 21-09-12 21:00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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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gopeace
조회 : 1,594  

질문 3.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답변 3.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란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하고자 합니다.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란 넓은 의미로 쓰일 경우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속을 위해 행하시고 고난 받으신 모든 것을 우리의 것으로 넘겨주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게 됨으로써 우리는 죄책에서 놓임받게 되고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사람으로 서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는 그리스도의 속죄와 순종을 모두 우리의 것으로 넘겨주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된다는 것은 다른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의 것으로 하나님 앞에 열납되고 우리 자신에게 있어야만 하는 완전한 내적 의로움으로 대신 인정받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됨으로써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완전한 순종은 우리의 것으로 간주되고, 그 결과 우리는 마치 우리 자신이 직접 완전한 순종을 이행한 것처럼 그에 따르는 혜택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생에 대한 권리가 이렇게 전가된 의에 대한 상으로 주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이 ‘전가하다’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그 의미는 어떤 사람에게 속한 것을 다른 사람에게 속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뜻입니다. 가령 사도 바울이 빌레몬서 18절에서 “저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빚)진 것이 있거든 이것을 내게로 회계하라”라고 말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가 율법의 형벌로부터 건짐 받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율법의 형벌을 감당하시는 일이 필요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상을 받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율법을 순종하시는 일이 똑같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이 두 가지 일이 꼭같이 필요합니다. 율법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율법을 순종하시는 일이 우리를 대신하여 율법의 형벌을 감당하시는 일과 똑같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것과 관련하여 틀림없는 사실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율법의 형벌을 감당하셔야만 했던 까닭은 다른 것 때문이 아니라 율법을 성취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의의 상급을 받기 위해서는 누군가 우리 대신 완전한 순종을 이루어야 할 필요가 똑같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형벌을 감당하신 것,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를 위해 속죄를 하신 것은 단지 우리의 죄책을 제거할 뿐이고, 그럼으로써 처음 창조된 처음 순간에 아담이 처해 있던 상태로 우리를 되돌려 놓는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대신 형벌을 감당하셨다는 사실만으로는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는 일이 타당성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마치 아담이 아무런 순종을 하지 못한 상태인데도 사람으로 존재하자마자 영원한 생명과 확고부동하게 행복한 상태를 그에게 상급으로 주는 것이 타당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 때 아담은 한 번도 죄를 범하지 않은 순진무구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단지 그것 때문에 상급을 받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적극적으로 순종을 해야만 상급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단순히 악한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뿐만 아니라 선한 일을 했다는 것이 있어야만 상급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순히 그리스도의 속죄로 인해 우리의 죄책이 제거되었다고 해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적극적으로 순종하시고 선한 일을 행하신 것도 반드시 우리에게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생명이라는 상급을 얻기 위해서는 죄의 형벌을 감당하는 것 외에도 무엇인가 더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바로 적극적인 순종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신 후에 곧바로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것보다는 먼저 검증해 보시는 좋겠다고 생각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의지와 행동으로 하나님의 권위에 전적으로 복종하고 하나님의 율법에 완전하게 순종하여 먼저 하나님의 권위를 영화롭게 해야 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리스도의 속죄로 죄인의 죄가 속해졌을지라도 적극적인 의로움이 죄인에게 없는 상황에서, 영원한 생명을 죄인에게 하사해 주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하나님의 율법의 영광은 결코 충분하게 옹호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반드시 있어야 하는 순종의 조건을 채우지도 않은 상황에서 죄인이 영원한 생명을 부여받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율법을 철회하셔야만 할 것이고, 약속된 상을 주셔야만 할 것이며,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의 율법에 존경과 영광을 돌리는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자신을 율법에 굴복시키시고 순종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율법과 율법의 수여자이신 하나님의 권위를 크게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비록 불완전할지라도 진실한 순종만 있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죄인을 의롭다 하신다고 말하는 것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재판장 앞에서 불완전한 의는 아무런 가치도 없기 때문입니다. 정해진 규범을 충족시키는 것 대신에 규범에 미달하는 것을 용납하는 것은 공정한 행위나 재판관다운 행위가 아닙니다.


재판관에게는 오직 법에 일치하는 것만이 의입니다. 법은 재판관의 규범입니다. 만일 재판관이 죄로 성립하는 것을 은폐하고 용서해 준다면, 그럼으로써 사실상 판결을 내리지 않는다면, 그 재판관은 역할을 하고 있지 않거나 잘못 재판하고 있는 것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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