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질문이 생길 수 있다. ‘정통’은 절대적이라서 절대로 바꿀 수 없는 것인가?
목회자는 양복을 입어야 하고, 로고엔 십자가가 들어가야 하고, 새벽 예배와 구역은 반드시 있어야 하고, 성경 공부와 장로 등 직분의 구분이 명확해야만 교회가 교회로서 제 기능을 할 수 있는 것인가? 찬양 가사에는 무조건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 십자가, 죄, 구원이라는 기독교적 가사가 들어가야 하는가? 성경이 지금 정통 교회가 고수하고 있는 세부적인 모든 것을 절대로 바꾸지 말라고 규정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교회는 이미 1,500년 이상 고수해 온 ‘전통’을 완전히 개혁한 적이 있다. 그런데 중요한 건, 그 개혁이 “오직 성경으로” 되돌아가려는 방향과 목적을 취했다는 점에서 타당했다는 것이다. 황 대표가 제안하는 여러 실천적인 사항 중 많은 것들은 충분히 고려할 수 있고 지역교회의 결정에 따라 바꿀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방향성과 목적에 관하여 진지하게 고려해 볼 필요는 있다.
그는 교회가 복음을 바꾸지 않으면서도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확신한다. 그리고 지금 그렇게 하는 교회가 많은 이들의 호응을 받고 있다고 설득한다. 그러나, 보이는 현상과 그것에 관한 해석에 매료되기 전, 먼저 생각할 것이 있다. 전통이 오랜 세월 살아남고 보존된 것은 분명히 그 안에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 손으로 그것을 바꾸려 한다면, 그만한 이유와 목적이 있어야 한다. 종교 개혁자들에겐 그 이유가 있었다. 성경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전통을 뜯어고쳐야 했다. 우리가 “5無 교회”로 교회를 탈바꿈하려는 이유와 목적은 무엇인가? 성경으로 돌아가려는 것인가?
목사와 장로, 집사가 세속 권력자들과 같은 계층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왜? 성경이 목자장이신 그리스도를 닮은 섬김의 리더십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교회에 수직적인 구조가 아니라 수평적인 구조가(구조라기 보다는 복음의 문화라고 하는 것이 옳겠다) 발견되는 것이 옳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인도자에게 권위를 주셨지만, 우리는 세속적인 권위를 함께 교회 안으로 많이 들여온 것이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장로 직분이 (아직) 없는 교회’를 황 대표는 주창한 것인가? 아니다.
그가 제안하는 대부분의 개혁은 그 목적과 방향이 소비자에게 맞춰져 있다. 요즘 청년들은 온라인에 익숙하다. 요즘 청년들은 설교보다 끈끈한 정이 더 간절하다. 요즘 청년들은 맛과 향에 민감하다. 요즘 청년들은 성경 공부를 강조하지 않는 교회를 더 편하게 여긴다. 이런 이유로 교회를 개혁해야 한다는 것이다. 간혹 황 대표가 추구하는 방향과 목적이 성경이 오늘날 교회에게 요구하는 변화의 모습을 이끌어낼 수도 있다. 케케묵은 전통을 개혁한 교회가 젊은 세대에게 얼마나 세련되고 매력적으로 보이겠는가? 하지만, 전통은 트랜드에 따라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다. 전통은 오직 성경의 권위 아래 굴복하고 변화되어야 한다. 결국, 트랜드를 따라 교회를 개혁하려는 모든 시도의 가장 큰 문제가 여기에 있다. 교회를 말씀에 따라 세우는 것이 아니라 트랜드에 따라 세우려는 것이다.
교회의 전통은 언제든 변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변화는 언제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뜻을 따라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지침으로, 결국 전통을 검증하고 변화시키는 유일한 권위로 작용한다. 만일 우리가 성경으로 돌아가기 위하여 전통을 개혁하려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겠지만, 요즘 사람들의 기호와 입맛을 맞추기 위하여 바꾸려 한다면 그것은 사람들에게 좋게 하려는 일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자문해야 한다: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 1:10).
성경을 번역할 때도 유사한 문제가 발생한다. 예수님은 당신을 “목자”라고 하시고, 그분 안에 속한 신자를 “양”이라고 비유하셨다(요 10장). 한 선교사가 목자도 없고 양도 없는 나라에서 현지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성경을 번역하면서 “목자”를 “사장”으로, “양”을 “직원”으로 번역했다고 한다. 현지인이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목자와 양 대신, 그들에게 친숙한 사장과 직원으로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매우 그럴듯한 말이긴 하지만, 사실 잘못된 판단이다.
예수님이 “목자”와 “양”이라고 말씀하실 때, 당시 청자에게 그 용어들을 통하여 전달하고 싶은 본질적 의미가 있었다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는 그 의미를 오늘날 청중에게 잘 전달하기 위하여 그들에게 익숙한 용어로 뜯어고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그 용어를 사용하셨을 당시, 그러니까 성경에 기록된 말씀의 배경과 문화와 시대의 문맥 안에서 의미를 끌어내야 한다. 그래야 예수님이 전달하고 싶으셨던 본질적 의미가 제대로 전달될 수 있다.
한 마디로,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이다. 앞으로 5無가 아니라 10無가 될수도 있고, 간주가 아니라 반주 전체를 세속 음악과 믹스하려는 시도가 일어날 수 있다. 그래도 트랜드에 뒤처질까 염려하지 말라.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교회가 아니라 후퇴하는 교회로 남을까 두려워하지 말라. 중요한 건 목적과 방향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목적,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길, 성경으로 돌아가려는 방향성!
발췌: 조정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