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모어 경(卿), 제 말을 믿으십시오. 교리문답(catechism) 없이는 주님의 교회는 보존될 수 없습니다. 교리문답은 마치 좋은 씨앗이 시들지 않고 세대와 세대를 이어 번성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1
– 존 칼빈
당신은 ‘교리(敎理)’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제가 예전에 다녔던 교회의 청년들은, 교리에 대해 ‘법률과 같은 것’, ‘보수적이고 구시대적인 것’, ‘딱딱하고 재미없는 것’과 같은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들은 왜 이와 같은 반응을 보였을까요? 이는 교회가 교리보다는 삶에 초점을 맞추고 성도를 양육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한때 교회의 정체성이며 보물과 같았던 교리(신앙고백 및 각종 신조, 교리문답 등이 포함됨)는 어렵고 고루하며 무가치한 것으로 전락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교리(敎理)의 정의를 명확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교리는 본래 ‘종교적인 원리나 이치, 진리라고 규정한 신앙의 체계’를 이르는 말로써, 간단히 말해 ‘하나님의 말씀(성경)이 가르치는 내용’을 뜻합니다. 이를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에서는 “성경은 첫째로 사람이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그리고 둘째로 사람이 무엇을 행하여야 하는지를 중요하게 가르친다”2고 좀 더 자세히 진술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교리는 우리가 믿고 행하는 바가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는지 아닌지 분별하게 하는 기준입니다. 교리는 진리의 성전인 교회를 지탱하고 있는 중요한 기둥으로서, 교회는 교리 없이 자기 정체성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옛 이스라엘 백성을 보시고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호 4:6).”라고 탄식하셨으며, “이러므로 나의 백성이 무지함을 인하여 사로잡힐 것이요 그 귀한 자는 주릴 것이요 목마를 것이며(사 5:13)”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또 내 마음에 합하는 목자를 너희에게 주리니”라고 약속해 주시면서, “그들이 ‘지식’과 명철로 너희를 양육하리라(렘 3:15).”라고 하셨습니다. 이렇듯,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계시해주시며, 그 계시를 가르치고 배우는 지식, 즉 교리로써 당신의 백성을 양육하십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교리적일 때, 가장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런 교리적인 기독교야말로 사람을 가장 많이 변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영적 생활의 원동력은 감정적인 충동이나 고양으로 말미암지 않고, 진리에 의해 무엇이 올바른지 깨닫고 이해하는 것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3
교리 없는 삶은 뿌리 없는 나무와 같습니다
교리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면, “그리스도를 향한 진정한 사랑만 있으면 된다.”거나, “중요한 것은 교리가 아닌 삶이다.”라고 하는 사람들이 꼭 있습니다. 하지만 교리 없는 사랑은 있을 수 없으며, 교리 없는 삶은 무가치합니다. 이에 대해 칼빈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사랑은 믿음과 소망보다 먼저 있다고 하는 스콜라 철학자들의 가르침은 미친 말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 속에서 처음으로 사랑을 일으키는 것은 오직 믿음이기 때문이다.4
믿음의 근거는 무지가 아니라 지식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것은 하나님뿐만 아니라 신적인 뜻에 관한 지식이다. ……(중략)…… 우리가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은, 그리스도를 통해 화목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의 자비로우신 하나님이시라는 것과 또한 그가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의와 성결, 생명으로 주셨다는 것을 알게 될 때다.”5
우리는 알지 못하는 존재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대상이 어떠한가를 알지 못하는 사랑, 즉 지식 없는 사랑은 결국 맹목적인 사랑이 되고 맙니다. 그런 사랑은 자기중심적이기에 자기만족을 무엇보다 우선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그런 자신을 여전히 위로하고 합리화하기 바쁩니다. 한 마디로 위선과 거짓 사랑으로 변하고 마는 것입니다.
교리 없는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삶을 나무로 치면, 교리는 나무를 지탱해주는 뿌리에 해당합니다. 뿌리 없이 열매가 맺히기를 바랄 수 없는 것처럼, 교리 없는 삶은 결국 그리스도가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한 삶으로 바뀌고 맙니다. 그럼에도 오늘날의 교회는 이런 지식 없는 사랑과 삶을 추구하다가, 결국 하루에 열두 번도 넘게 변하는 인간적인 감정에 중심을 둔 신앙이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교리가 없는 삶의 문제에 대해, 구(舊) 프린스턴 신학교의 교수였던 메이첸은 이미 다음과 같이 경고했습니다.
“나의 친구들이여, 속지 말라. 사람이 무엇을 믿는가 하는 것은 크게 중요치 않다는 이러한 생각, 교리는 중요치 않고 생활이 우선이라는 이러한 생각은 사단의 병기 창고 전체에서 발견될 수 있는 가장 악마적인 오류들 중의 한 가지이다.”6
교리와 사랑과 삶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교리는 우리 삶의 기초이며, 사랑의 근거입니다. 종교개혁 당시 칼빈은 종교개혁의 성공 여부가 전적으로 교리 교육에 달려 있다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교회가 교리에 의해서 권위를 얻게 된다고 역설했습니다. 교리의 궁극적인 목적은 교회를 세우는 것이며, 신자들의 신앙은 교리에 의해 장성한 분량에 이르게 된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칼빈은 교리의 존재가 곧 교회의 존재며, 교회의 존재는 교리의 존재라고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나 말씀에 근거하지 않은 교리는 그 어떤 것도 자체적인 권위나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그에게 교리는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 항상 존재하는 것이었습니다.7
이처럼 교리가 없는 교회는 존재할 수 없으며, 바른 교리를 모르는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교리는 그만큼 교회와 우리의 신앙생활에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합니다.
발췌: Reformed Guardi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