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가톨릭교회의 구원론은 '예수 없이도 구원을 받는다'는 결론에 이른다. 예수를 믿지 않는 유태인과 무슬림도 구원받고, 미지의 신을 찾는 사람들, 양심에 따라 사는 사람들,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는 자들은 모두 하나님의 구원을 받는다고 한다. ‘만인보편구원주의’를 표방한다.
로마가톨릭교회와 역사적 개신교회의 으뜸가는 차이는 구원론이다. 로마가톨릭교회는 행위구원 교리로 유명하다. 오늘날에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표방한 만인보편구원주의가, 심각한 교리로 대두되어 있다. 역사적 기독교는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오직 예수’만이 구원의 길이라 고백한다. 하나님과 인간의 유일한 중보자이며 화해자라고 믿는다. ‘구원의 조건’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다. 개신교회는 다만 믿음으로 의롭게 여김받는다는 이신칭의(以信稱義) 교리를 중요하게 여겨왔다.
개신교회 안에도 만인보편구원주의 사상을 가진 교회들이 있다. 자유주의 신학에 개방적인 진보계 교회들이다. 세계교회협의회(WCC)는 이 사상을 “하나님의 구원하는 은총과 능력에 제한을 두지 않아야 한다”는 말로 표현한다. 로마가톨릭교회의 만인보편구원주의와 WCC의 종교다원주의는 동전의 양면이다. 이것들은 사도들이 전한 복음과 전혀 다르다. 예수를 믿어야 할 까닭, 당위성을 제시하지 못한다.
1. 구원의 길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는 현대 로마가톨릭교회의 교리를 확정지었다. 교황 요한 23세는 공의회를 소집하면서 “교회 생활의 모든 분야가 현대 세계에 ‘적응’하는 차원을 넘어 완전히 의식 변화를 해야 한다”고 천명했다. 이 공의회는 교회의 자각과 쇄신, 신앙의 자유, 종교와 정치의 제 역할 찾기, 개별 민족과 사회 존중, 세계 평화, 개신교를 포함한 그리스도 교회의 일치, 타종교와의 대화, 예전 개혁 등 로마가톨릭교회의 현대화를 촉구했다. 한국천주교회의 조상 제사 수용, 각국의 토착화된 성모상 등장, 미사 집전 때 라틴어가 아닌 모국어 사용, 평신도 역할 부상 등의 변화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일어났다. 만인보편구원주의는 이 같은 변화의 물결을 따라 로마가톨릭교회 안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연구·토론·결정한 4개의 헌장, 9개의 교령, 3개의 선언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에 담겨 있다. 한국어로 번역되었다. 바티칸이 제정한 <가톨릭교회교리서(1997)>도 중요한 문서이지만, 공의회 문헌은 가장 권위 있는 원 자료, 1차 자료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 ‘교회헌장’은 교황이 지배하는 로마가톨릭교회를 ‘구원의 조건’으로 제시한다. 하나님의 인간 구원과 로마가톨릭교회를 일치, 등식화한다. 로마가톨릭교회 신자라야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몸인 교회 곧 로마가톨릭교회 안에서 인간과 함께하기 때문이라고 한다(제14항).
‘교회헌장’은 자기 탓이 아닌 까닭으로 로마가톨릭교회의 구성원이 되지 못한 사람들도 영원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생명과 호흡과 모든 것을 주고, 구세주는 모든 사람이 다 구원받기를 바란다. “아직 하나님을 분명하게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은총으로 바른 생활을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구원에 필요한 도움을 거절하지 않는다”고 한다. 타종교인들이 “가진 좋은 것, 참된 것은 무엇이든지 다 복음의 준비로 여기며, 그것들은 모든 사람이 마침내 생명을 얻도록 빛을 비추시는 분께서 주신 것(제16항)”이라고 한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 ‘비그리스도교 선언’은 하나님이 모든 민족의 기원이며, 그 하나님의 섭리와 구원 계획은 모든 사람에게 미친다고 한다(제1항). 힌두교는 신에게 귀의하여 인생고에서 벗어나는 해탈을 추구한다. 불교는 자기 노력으로 궁극의 깨달음에 이를 수 있는 길을 가르친다. 그 밖의 전 세계 종교들도 교리와 생활 규범과 신성한 예식 등을 제시한다. 그러므로 “가톨릭교회는 이들 (타)종교에서 발견되는 옳고 거룩한 것은 아무 것도 배척하지 않는다. 그들의 생활 양식과 행동 방식 뿐 아니라 그 계율과 교리도 진심으로 존중한다. 그것이 비록 가톨릭교회가 주장하고 가르치는 것과는 여러 가지로 다르더라도, 모든 사람을 비추는 진리의 빛을 반영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제2항)고 한다.
로마가톨릭교회는 무슬림과 유태인들도 구원을 받는다고 선언한다. 예수 그리스도 없이도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로마가톨릭교회에 따르면 무슬림은 살아 계시고 영원하며 자비롭고 전능한 하나님, 하늘과 땅의 창조주, 사람들에게 말씀하는 유일신을 흠숭하며, 예수님을 예언자로 받아들이며, 또 마리아를 공경한다. 모든 사람을 부활시켜 공정하게 갚아 주실 하나님의 심판의 날을 기다린다(제3항). 유태인들은 하나님의 신비로운 구원 계획에 따라 구원을 받는다. “그들의 조상 덕택에 여전히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 하나님의 은사와 소명은 철회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롬 11:28-29)”이라고 한다(제4항).
예수 그리스도를 죽인 유태인의 책임과 관련하여, 공의회는 당시의 모든 유태인 생존자와 그 후손에게 그 책임을 차별 없이 지울 수 없다고 한다. 예수를 죽인 책임은 그 사건에 가담한 유태인 당사자들에게만 있다. 그러므로 모든 유태인들이 하나님의 버림받고 저주받은 백성인 것처럼 표현함은 잘못이라고 한다(제4항).
2. 비그리스도인의 구원
로마가톨릭교회는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고 양심의 명령을 따라 알게 된 하나님의 뜻을 은총의 영향 아래서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누구나 구원을 받는다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자들이 영원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하나님의 은총의 힘이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단순한 무지, 불가피한 무지를 조건으로 하여 구원을 받는다고 한다.
바티칸은 로마가톨릭교회라고 하는 ‘구원의 조건’을 갖추지 못한 비로마가톨릭 신자들과 “타종교의 추종자들도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주님이신 예수님, 2000, 제22항)”고 선언한다.
개신교회 신자들, 비로마가톨릭교회 신자들(정교회, 성공회)도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그렇다. 그러나 조건이 있다. 교회 분열의 직접적인 책임을 가진 당사자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 당사자가 아닌 경우, 곧 개신교회나 정교회 가정에서 태어나 로마가톨릭교회가 무엇인지 배울 기회를 가지지 못한 사람들만 ‘불가피한 무지를 조건’으로 구원이 가능하다(교회헌장, 제14항-제16항).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들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고 양심의 명령을 따라 신의 뜻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수 있다. 하나님을 분명하게 알지 못하지만 바른 생활을 하려고 노력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구원에 필요한 도움을 거절하지 않으신다고 한다(제16항).
정리하자면, 예수 없이도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아래와 같다.
①유태인: 조상 덕택으로 구원을 받는다 ②창조주를 알아 모시는 모든 사람들: 신을 믿는 모든 종교인들 ③이슬람 신도들: 아브라함의 신앙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구원을 받는다 ④어둠과 그림자 속에서 미지의 신을 찾고 있는 사람들 ⑤진실한 믿음으로 신을 찾는 사람들 ⑥양심의 명령을 따라 신의 뜻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 ⑦바른 생활을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 등이다.
3.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사람
�로마가톨릭교회는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세 부류의 사람들을 언급한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지 않거나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거나 교회와 무관한 사람들이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하지 않는다.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사람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로마가톨릭교회라는 제도와 교회 조직 안에 있는 사람 곧 교황과 주교들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결합된 사람일지라도 “사랑 안에 머무르지 못하고 교회의 품 안에 ‘마음’이 아니라 ‘몸’만 남아 있는 사람”(교회헌장, 제14항)이다. 다시 말하면 온전한 마음을 다하지 않는 형식적인, 명목상 로마가톨릭교회 신자들은 구원을 받지 못한다.
둘째, 그리스도께서 로마가톨릭교회를 세우신 것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교회에 들어오기를 싫어하거나 그 안에 머물러 있기를 거부하는 사람”(제14항)이다. 종교개혁자들과 개신교 교의신학자나 역사신학자가 이 부류에 속한다.
셋째, 악마의 속임수에 넘어가 허황된 생각에 빠지거나, 진리를 거짓과 뒤바꾸고 피조물을 섬기는 자, 하나님 없이 살다 죽어가는 극도의 절망에 놓인 사람이다(제16항). 하나님과 무관한 삶을 살다가 사탄에 미혹당한 악인들이다.
로마가톨릭교회는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한 중보자라고 말하기도 한다. 교황청은 2000년에 이르러 예수 그리스도와 로마가톨릭교회가 구원의 유일한 길이라는 내용의 교서를 발표한 적이 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와 그 이후의 신학 선언들의 위험을 감지하고, 종교적 상대주의와 종교다원주의가 로마가톨릭교회의 신앙과 양립할 수 없다고 했다. 진보적 로마가톨릭 신학자들과 종교다원주의를 지지하는 주교들을 겨냥한 경고였다(주님이신 예수님, 제22항). 이 교서는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받게 되고 진리를 알게 되기를 바란다(딤전 2:4)”고 한다(제13항, 제22항). 만인보편구원주의 구원론과 예수 구원 유일성을 모호한 방식으로 결부시킨다(제13항).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로마가톨릭교회 밖에서 하나님을 찾고 양심대로 생활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총의 힘이 작용하기 때문에 영원한 구원을 얻게 된다고 명시한다. 그러나 위 교서는 “교회 밖에서 영위되는 종교적 믿음(belief)은 여전히 다만 절대적 진리를 찾고 있는 종교 경험”(제7항)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로마가톨릭교회의 구원관은 이처럼 야누스적이다.
발체: 최덕성 목사: 브니엘신학교 총장, 기독교사상연구원 원장, 전 고신대 교수